삼보일배 염원 무시하고 새만금 공사 강행한 정부…시민사회의 투쟁은 다시 시작된다
6월9일 오후 2시. 서울시내 시민환경단체들 사무실에 긴급상황이 발생했다. 일반전화는 물론이고 활동가들의 휴대전화에도 불이 났다. 새만금간척사업 4공구의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4공구는 갯벌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기로에 선 핵심공구였다. 활동가들은 곧바로 청와대 앞으로 모였다. ‘정부가 우릴 배신했다’거나 ‘참여정부 역시 말로는 개혁이지만 과거 권력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격한 반응은 “4공구 물막이 공사를 앞당겨 하지 않겠다”는, 정부 고위관료와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공언이 거짓으로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노 정부에 대한 ‘마음’이 떠나간다
사진/ 6월15일 새만금 공사 현장 가운데 정부가 일정을 앞당겨 물막이 공사를 끝내 논란을 빚고 있는 제4공구 출입구에서 환경단체 활동가와 시민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민사회의 분노는, 지금이 성직자들의 삼보일배로 새만금사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가 새로운 차원에서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시민단체들은 삼보일배가 끝나면서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조계사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방조제 공사를 일단 중단하고 신구상기획단을 구성하자’는 게 주된 요구였다. 그러나 정부의 반응은 ‘방조제 공사 강행과 정치권이 주도하는 신구상기획단의 구성’이라는 강공책이었다. 이런 가운데 드러난 ‘무리한 4공구 추진’은 참여정부에 대한 시민단체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대화나 합리적인 토론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시민사회의 분위기다.
이날 환경단체 활동가 등 100여명은 투쟁단을 조직해 전북 군산시 비응도의 4공구 현장으로 내려갔다. 배를 타고 들어가 물막이 공사를 거의 끝낸 방조제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지만, 새만금추진협의회 소속 주민들의 폭력 행사로 다음날 방조제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6월12일 다시 방조제로 들어가 곡괭이와 삽으로 방조제를 걷어내며 저항했지만, 주민들의 폭력 앞에 현장에서 또다시 밀려났다.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삼보일배 이후 전개된 격렬한 투쟁을 거치면서 내부적으로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 있다. ‘참여정부가 전두환, 노태우식으로 풀어가는데 어떻게 이 정부를 상대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한 것이다. 상당수 활동가들은 “새만금 강행으로 환경정책 실종이 최종적으로 확인되었으니 남은 것은 참여정부와의 정치적 대립각을 분명히 하는 투쟁”이라고 보고 있다. 이같은 강경론 속에서도 일부 시민단체들 상층부에서는 지금 참여정부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은 다소 성급하다는 회의론도 남아 있다. 그러나 노 정부에 대한 ‘마음’이 떠나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사진/ 만경강과 동진강의 수질오염은 지금도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계속해서 썩어가고 있는 만경강 하류의 오염현장.
새만금사업에 관한 정부의 기본방침은 농지로 쓰지는 않겠다는 것과 전북도의 요구를 기본으로 새로운 활용방안을 찾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농지로서의 효용성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됐지만, 새 활용방안 역시 추가예산부터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까지 쉽지 않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질이다. 농지의 목적 상실과 수질 악화, 애초 목적에서 벗어난 변형된 개발 등 새만금은 시화호와 붕어빵처럼 닮아 있다. 새만금 갯벌이 껴안고 있는 만경강과 동진강은 국내 하천 가운데 가장 오염이 심한 곳으로 분류된다. 특히 만경강은 공업용수로도 쓰지 못하는 5급수 이하로 지금도 계속 썩고 있다. 4공구 방조제 공사가 끝나 갯벌이 급격하게 파괴되면 만경경은 돌이킬수 없는 오염의 나락으로 빠진다. 더욱이 6월13일 건설교통부는 만경강 상류인 전주권을 그린벨트 지역에서 해제했다. 이는 정부가 2001년 5월 새만금 수질 개선과 관련된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법적 대응도 시작돼
사진/ 새만금 사업을 끝내려면 서울의 남산만한 산을 수십개 더 송두리째 파헤쳐야 한다. 사진은 항공 촬영한 해창석산의 훼손 현장.
매립과 용수확보 문제도 심각하다. 갯벌을 농지가 아닌 다른 용도로 쓰려면 땅다지기를 제대로 해야 한다. 토목전문가들은 돌과 흙을 3~4m 정도 메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까지 방조제 공사를 위해서 전북 부안군 일대의 국립공원인 해창석산을 송두리째 들어냈다. 새만금 근처 변산반도국립공원을 파헤치는 훼손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석산을 위해 전북지역의 다른 산림이나 녹지를 찾아야 한다. 서울의 남산 수십개에 달하는 산이 사라져야 가능한 일이다. 20조원 이상이 들어가는 사업이지만, 이에 대해 언급하는 이는 없다.
또 전북은 이미 생활용수가 부족한 지역이다. 금강 상류에 있는 물을 끌어와 조성한 용담댐으로 인해 충청도와 물 분쟁을 치르고 있다. 더욱이 만경강과 동진강은 점점 상류까지 썩어가고 있기 때문에 산업단지나 복합물류단지를 건설할 경우 용수 확보에 답이 없다.
시민단체들은 법적인 대응에도 들어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2일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사업시행인가처분의 효력을 중단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새만금갯벌생명평화연대는 13일 해양수산부장관을 상대로 매립면허의 취소·변경을 요구하는 청원을 냈다. 한국법제연구원 전재경 박사는 “새만금 간척지의 용도를 농지에서 산업단지로 변경할 경우 공유수면매립법에 따라 매립 목적 변경 절차를 밟아야 하고 환경영향 평가를 새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는 현실 투쟁의 패배를 딛고 보다 높은 차원의 역사적 투쟁의 발걸음을 이미 시작했다.
글·사진 서재철 |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새만금사업의 ‘정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