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5월22일 제460호 

“안상태 지병 재발위험 없더라”

권력의 심장부를 강타한 나라종금 재수사, 예상을 깨고 성공 궤도에 진입하기까지

“당신들의 두 어깨에 검찰의 명운이 달렸다.”

일순 긴장이 흘렀다. 말을 하는 쪽도, 그 말을 듣는 쪽도 표정은 자못 엄숙했다. 대검찰청이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의 ‘재수사’를 선언하고 하루 뒤인 4월5일. 안대희(사시 17회) 중수부장은 수사팀인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반장 김수남 중수3과장, 주임검사 조은석)이 있는 서울지검 서부지청 3층을 찾았다. 간결한 한마디였지만, 그의 당부엔 비장감마저 묻어났다.

‘도박에 가까운 재수사’ 40여일


사진/ ‘검찰의 개가.’ 1억원 수수 혐의로 구속된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왼쪽)과 연루의혹이 드러난 김홍일 의원.(이용호 기자)


‘노무현 시대’ 새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의 첫 시험대. 대통령의 최측근(안희정·39·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이 의혹의 ‘몸통’으로 떠오른 사건. 게다가 지난해 이미 한번 수사가 이뤄진 정치권 관련 로비의혹 사건의 재수사. 중수부장의 비장한 당부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사실 재수사는 어떤 검사에게도 달갑지 않은 아이템이다. ‘손’을 탈 만큼 타 ‘승산’이 극히 낮다는 이유도 있지만, 툭 하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특검제가 시행된 이후 “재수사마저 잘못되면 무조건 특검으로 간다”는 분위기가 검찰 안에 팽배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김대중 정부 이후 특별검사(3차례)까지 동원된 재수사 사건들(표 참조)이 있었지만, 이용호 게이트에 대한 특별검사팀의 수사(현직 검찰총장의 동생 구속)와 이를 이어받은 검찰의 2차 수사결과(현직 대통령의 아들 구속) 정도를 빼고나면 사건 전말이 속시원히 나온 재수사는 별로 없었다.

검찰 관계자 표현대로 ‘도박에 가까운’ 재수사가 시작되고 40여일이 지났다. 수사의 중간쯤, 안희정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됨으로써 ‘부실수사’ 시비에 휘말렸던 검찰은 연일 보란 듯이 ‘개가’를 올리고 있다. 이용근(60)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1번 타자’로 검찰에 불려왔다. 그 뒤를 이어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60) 민주당 최고위원이 1억원 넘는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김 전 대통령의 큰아들이자 동교동계 구파의 상징적 구심인 김홍일(55) 의원마저 연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면면 자체가 중량급이지만, 검찰은 로비의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실제로 나라종금의 대주주였던 김호준(44) 전 보성그룹 회장과 안상태(59) 전 나라종금 사장이 이들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인 때는 나라종금이 심각한 자금난으로 퇴출 위기에 몰린 1999년 하반기~2000년 초반이었다.

당시 나라종금은 1999년 4월 대한종금이 영업정지를 당한 여파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를 맞았다. 2000억원대의 콜 자금으로 뒤를 받쳐주던 대우그룹마저 같은 해 8월 몰락하게 되자 나라종금은 생사의 기로에 몰리게 된다. 이 시기를 전후해 ‘김호준-안상태’ 두 사람은 당시 정권의 실세들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학연(중동고)과 지연(호남)이 바탕이 됐다. 검찰은 2000년 1월22일 제2차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진 뒤에도 이들의 로비가 이어졌다고 보고, 보강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실은 주임검사가 따로 있다. 바로 중수부장이 주임검사”라는 핀잔 아닌 핀잔까지 들어가며 이번 수사에 전력을 투구했던 안 중수부장은,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최근 “나라종금의 로비는 ‘실패한 로비’가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나섰다.

안상태씨 주치의를 압박하다


사진/ 재수사 사건 가운데 그나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혔다고 평가되는 사건은 이용호게이트였다. 특검에 이어 2차수사에까지 이르는 동안 김홍업씨(오른쪽)와 현직이었던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 등이 구속됐다.(한겨레 김정효)

검찰수사가 성과를 내게 된 요인을, 검찰 내부에선 두 가지로 짚고 있다. 첫째는 수사팀의 수사력을 꼽는다. 다른 하나는 안 전 사장의 ‘입’이다. 수사 초기, ‘의리파’인 김 전 회장의 ‘모르쇠 작전’에 진을 빼던 검찰은 애초 안 전 사장을 ‘약한 고리’로 지목했다. 그러나 안 전 사장이 지난해 11월부터 지병을 이유로 ‘(무기한) 구속집행정지’ 상태에 있던 터라 강제조사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검찰은 ‘작전’을 짜게 된다. 4월16일 항소심 첫 공판을 앞두고 검찰은 안 전 사장의 주치의(신촌세브란스 병원)를 은밀히 소환했다. 그로부터 “(안 전 사장의) ‘십이지장암의증’은 재발할 위험이 없다”는 내용의 진술조서를 받아낸 검찰은 재판 당일 오전에 이를 재판부에 냈다. 구속집행정지를 취소해 구치소에 재수감하도록 해달라는 검찰의 요청은 이날 오후 공판에서 그대로 관철됐다.

안 전 사장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이틀 뒤인 18일 밤 또 한 차례의 승부수를 띄웠다. 그와 그의 친·인척 관련계좌 900여개에 대한 ‘포괄영장’을 발부받은 것이다. “무차별 계좌추적의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뒤로 하고, 검찰은 그의 재산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은닉재산을 지렛대로 삼겠다는 검찰의 ‘압박전술’은 머잖아 약발을 나타냈다. 안 전 사장이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4월말께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이용근, 한광옥, 박주선(민주당 의원), 정학모(전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그리고 김홍일 민주당 의원 등에게 돈을 건넸다는 안 전 사장의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 고위관계자가 “내사재개 선언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잘 안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겁이 더럭 나더라”고 말할 정도였던 이번 수사가, 예상을 깨고 성공 궤도에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강희철 기자/ 한겨레 사회부 hckang@hani.co.kr

  • 그들의 어깨에 ‘나라’의 미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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