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이슈추적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3년01월23일 제444호
차별아, 이제 좀 떠나다오

비정규직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논란…사회적 합의 통해 풀어야

극심한 차별과 설움.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장과 그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풍경은 이미 많이 알려졌다. 이제는 차분하게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시장 시스템을 짚어봐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를 반영하듯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비정규직 차별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둘러싼 논란이다.

어떤 노동이 동일한 가치가 있는가


△ 노무현 당선자쪽은 비정규직 차별해소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의 장면.

노 당선자쪽은 학벌·여성·장애인·비정규직·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사회적 차별금지와 적극 시정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내걸었다. 차별이 사회적 통합을 해치고 갈등을 낳는다는 판단에서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시정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방침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처럼 비정규직은 정규 노동자와 입사연도가 같고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극심한 임금차별을 당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착취당하는 사회적 신분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임금과 고용 유연화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유연화는 여전히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를 내걸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차별받고 있지만 비정규직은 더 이상 소수가 아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통계청의 ‘근로형태관련 부가조사’(2002년 8월)를 분석한 결과 전체 임금노동자(1360만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56.6%(770만8천명)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96만원으로 정규직(182만원)의 52.9%에 지나지 않는다. 생산성에 따른 임금격차라기보다는 고용형태의 차이에서 비롯한 임금‘차별’이다. 반면 노동시간은 정규직(주 44시간)보다 비정규직(45.5시간)이 오히려 더 길다.

직접적인 임금뿐 아니라 노동조건과 사회보험 적용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정규직과 비교한 비정규직의 퇴직금·상여금·시간외수당 적용률은 10∼13%,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적용률은 21∼24%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노총 오건호 정책부장은 “비정규직 차별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차이가 아니라 단지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비노동적 요소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다. 학력수당·가족수당 등은 차이가 나더라도 기본급에서 동일한 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5조(균등처우)는 남녀의 차별적 대우와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적 처우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여기에 △‘근로형태’의 차이에 따른 차별 금지를 포함시키고 △동일 사업(장) 내의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지급’을 명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또 올해부터 사업장별로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 금지조항을 단체협약에 보장하는 싸움을 전개해갈 예정이다.

생산성 차이가 아닌, 단지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른 부당한 차별은 어떤 형태로든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두꺼운 벽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먼저, 과연 어떠한 노동이 동일한 가치가 있는 노동인가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은 동일가치 노동의 구체적 범주까지 세세하게 규정해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동일가치 노동은 ‘노동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과 작업조건 등의 기준에서 볼 때 동일하거나 거의 같은 성질의 노동’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노동시간 외에 다른 잣대로 노동가치를 측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서울산업대 정이환 교수(사회학)는 “무엇이 동일가치 노동인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판례해석 등을 통해 구체적인 자료를 많이 축적해야 한다. 당장 근로기준법에 동일임금 지급을 꼭 명시하기 어렵더라도 균등대우, 부당한 차별 금지 등은 넣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경총 “정규직 임금 지나치게 높다”


△ 노동계는 현장에서부터 비정규직 임금차별 해소에 나서기로 했다. 민주노총에 나붙은 비정규직 포스터.(사진/ 김종수 기자)

1997년 이후 유럽연합(EU)은 비정규직 고용지침을 마련해 차별금지를 명문화했다. 그런데 유럽 각국에서 이 지침을 따르는 과정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대목이 동일가치 노동이다. 결국 논란 끝에 “객관적이고 정당한 사유로 입증되지 않는 한 ‘비교가능한 정규직’보다 임금, 각종 수당, 휴일·휴가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이를 위반하면 프랑스의 경우 3750유로(약 450만원)의 벌금이나 징역에 처한다. ‘비교가능한 정규직’은 △동일한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동일한 업무 또는 거의 비슷한 업무에 종사하면서 비슷한 수준의 기술과 숙련을 보유한 노동자다. 같은 사업장에 비교가능한 정규직이 없으면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를 비교대상으로 삼고, 이마저 없으면 법원에서 가상의 정규직을 상정해 판단한다.

노사정위원회 이호근 전문위원(비정규직특위)은 “유럽은 노동유연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비정규직 임금 차별을 금지하는 보호정책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는 이제 하나의 추세다. 우리도 소극적 의미의 차별금지로 갈 것인지, 적극적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까지 갈 것인지 따져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노동부쪽은 “근로기준법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을 넣으면 지키지 않았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이런 처벌규정을 두고 획일적으로 강제하기는 어렵다. 처음에 제도부터 강하게 만들어나가면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정부와 사용자쪽은 한국 임금체계의 특성 탓에 동일가치 노동을 판단하기 더욱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임금체계는 대체로 근속연수가 많을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급형이다. 어깨 맞대고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단지 10년 차라는 이유로 1년차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 구조다 보니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하기 힘들다는 논리다. 또 계약제라서 10년 동안 일해도 근속연수가 늘 1∼2년에 불과한 비정규직은 임금 차별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잘게 쪼갠 직무유형별로 노동가치를 재는 서구의 직무급형과 다르다는 것인데, 이는 연공급 구조를 뜯어고치기 전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은 무리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박영삼 국장은 “사업(장) 단위 동일가치 노동은 동일한 사용자란 개념이 강하다. 따라서 복잡한 직무분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기 회사 노동자를 비교대상으로 하면 되고, 없으면 다른 회사를 참고하는 식으로 얼마든지 유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도 ‘노동의 성격’에 따른 기본급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하고, ‘인적 속성’에 따른 수당(근속수당· 부양가족수당 등)은 별도의 규정에 따라 지급하면 연공급이 문제될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차별의 기원은 무엇인가 사용자들은 사실상 별다른 업무 차이가 없는데도 해고가 쉽고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쪽은 “정규직 임금을 빼놓고서 비정규직 보호만 주장하는 건 안 된다. 정규직 임금이 점점 고평가되고 기업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차별의 근원은 지나치게 높은 정규직의 고용보호와 임금이다”고 주장했다. 정규직의 양보가 전제된다면 사용자들도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는 사회적 합의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더 많은 이윤실현을 위해 정규직한테는 고임금·고용보장을 약속하고, 대신 비정규직을 의도적으로 차별하는 분할 통제전략을 구사해왔다. 비정규직 차별을 개선하라는 사회적 압박이 제기되자 이제 와서 갑자기 엉뚱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유럽 ‘고용과 보수의 공동행동’ 마련

물론 비정규직 차별의 한복판에 고임금 정규직이 가로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 당선자는 “해고가 까다롭기 때문에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있고, 어려운 해고제도는 강력한 노동조합에만 유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손낙구 실장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은 접어두고 임금만이라도 비정규직 것까지 챙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가진 정규직도 이제 사회적·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임금 분위기를 확산시켜가겠다는 것이다.

이미 명문화된 남녀고용평등법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조항이 선언적 의미에 지나지 않는 현실이 보여주듯, 논란의 핵심은 동일임금 규정을 도입하느냐 여부를 넘어 그 실효성에 있다. 결국 차별을 없애자는 대의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한다. 유럽의 사회적 동반자들(노·사·정)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바닥을 향한 경주’를 낳았다는 성찰 위에서 “비정규직을 폭력적인 시장에 맡길 수만은 없다”며 ‘고용과 보수의 공동행동’을 마련했다. “모든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에 충분하고 공정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