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이슈추적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3년01월02일 제441호
노동자 제물로 하늘에 영광?

성모병원 파업 217일, 그 기나긴 시련의 의미… 가톨릭의 이중적 노동관을 다시 생각한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노동자의 피눈물’.

강남·여의도·의정부 성모 등 3개 병원으로 구성된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장기파업이 217일 만인 2002년 12월25일 마무리됐다. 12월24일 밤 성탄대축일 전야 미사를 불과 1시간 앞두고 한용문 파업대책본부장이 ‘파업중단 선언’을 하는 순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노숙 철야농성을 하던 400여 조합원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지나온 217일의 긴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성모병원 노동자의 장기파업은 무엇을 남겼나. 12월24일 밤에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의 철야 농성은 지속되고 있었다.(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해결책 없이 현장 복귀

화창한 봄날인 5월23일, ‘주5일제,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적정인력 확보, 의료의 공공성 강화, 산별교섭 쟁취’ 등 4대 산별 요구를 내걸고 파업돌입, 신부와 대화를 요구하는 두번의 집단단식, 그리고 두번의 집단삭발,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9·11 농성장 경찰병력 투입과 전원연행, 9·21 추석맞이 명동성당 합동 차례, 전국의 병원 노동자가 함께한 장기파업 해결을 위한 10·16 산별총파업, 10월21부터 15일 동안 로마 교황청 해외원정 투쟁, 그리고 계절이 세번 바뀌는 동안 쉼없이 계속된 명동성당 출정식, 가톨릭의 자성을 촉구하는 십자가 시위, 공대위 구성과 수많은 기자회견들, 생계비 마련을 위한 투쟁채권 발행, 마지막 성탄절 전 타결을 호소하며 겨울 눈비를 맞으며 시작된 철야 노숙농성….

성모병원 노동자들은 성탄전야까지 사랑과 구원을 기다렸지만 결국 하느님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성모병원 노동자들은 217일간의 처절한 몸부림에도 아무런 응답 없는 가톨릭과 병원을 뒤로 하고 현안문제 해결 없이 현장에 복귀했다. 성모병원 400여 노동자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2002년 한해였고, 그리고 눈물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성모병원 이사장인 정진석 대주교는 이날 성탄대축일 전야미사를 집전하면서 예수성탄 대축일 담화문을 통해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 고통받는 자의 구원과 해방, 사회평화를 기도하고, 그들에게 관심과 도움의 손길,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교회는 모든 겨레에게 성탄의 가슴 벅찬 기쁜 소식을 전하고,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하면서도 경찰투입으로 병원에서 쫓겨나 명동성당 한켠 계단에서 몇달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소속 병원 노동자들에게는 철저한 외면과 탄압으로 일관했다. 노동자들의 간절한 호소에 돌아온 것은 ‘명동성당 퇴거명령과 경찰투입 위협, 대화거부, 무조건 현장복귀’라는 일방적 통보뿐이었다.


△ 누가 백의의 천사를 거리의 투사로 만들었나. 파업 중인 병원 노동자들이 집회에 참가했다.(사진/ 김종수 기자)

7명 구속과 실형선고, 31명 해고, 573명 징계위 회부, 15억원 손배 가압류, 조합비 가압류, 병원출입금지 가처분, 무노동 무임금으로 7달 동안 월급 한푼 못 받으면서 마이너스 통장과 카드빚을 내고, 적금을 깨고, 전세에서 월세로 옮겨가면서,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토록 400여명의 노동자들을 7개월 동안 처절한 투쟁현장으로 내몰았을까

파업 전날 조합원이 모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섭을 거부하고, 합법적인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를 외부 불순세력으로 매도하고, 신부들 스스로가 병원과 성당에 경찰투입을 요청, 십자가 아래 울부짖는 자신들의 노동자를 잡아가도록 방조하고, 그것도 모자라 경찰에게 쫓겨나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는 조합원을 해산시키기 위해 명동성당에까지 경찰투입을 요청하는 신부들을 보며 가톨릭에 대한 환상은 하나둘 깨졌다.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 중인 노동자에게 전기를 차단한 것은 물론, 야간에 화장실 문까지 폐쇄하는 모습을 보며 백의의 천사는 거리의 투사로 바뀌고 있었다.

처절한 투쟁의 대가… 가톨릭 단체 묵묵부답

어떤 이는 이번 장기파업사태가 ‘가톨릭의 문제’가 아니라 ‘가톨릭중앙의료원의 문제’이고, 확대하더라도 ‘가톨릭 서울대교구’의 문제로 한정짓고자 한다. 정의평화위원회 최영수 주교는 인권주일 담화문에서 병원 파업사태는 교회와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 노사 간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명동성당 백남용 주임신부 또한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노조가 병원문제를 교회까지 끌고 온 것이 잘못이라고 했다. 백보 양보해서 이번 사태가 교회와 노조의 문제가 아닌 병원 노사문제라고 치더라도 이렇게 탄압하고 있는 사용자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하는 것이 교회의 올바른 모습인지, 교회 스스로가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가톨릭 서울대교구는 실질적인 성모병원의 사용자이고 대주교가 병원 이사장으로 돼 있다.

이번 파업과정에서 한 조합원은 “가톨릭에는 좋은 이름의 조직과 단체가 참 많다. 정의구현사제단·인권위원회·정의평화위원회·노동사목 등…. 하지만 그 모든 조직들이 이야기하는 ‘정의구현과 인권과 평화’는 가톨릭 밖에서의 정의와 인권과 평화일 뿐이다. 가톨릭 안에서 노동자를 위한 정의와 인권과 평화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중성을 비판했다.


△ 파업 중에 정년퇴직한 노동자도 있었다.(사진/ 김종수 기자)

종이학 1천 마리를 접어서 신부님이 대화에 나서도록 호소하겠다던 조합원, 요구가 정당한 만큼 우리의 행동도 정당해야 한다며 매일 성당 주변을 청소하던 조합원, 217일 동안 피눈물을 삼키면서도 마지막까지 넘지 말아야 될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며 성당 점거와 성탄 미사 저지, 종탑 고공농성 등 수많은 전술을 포기하고 가톨릭의 가장 큰 행사인 성탄대축일 자정미사 전에 파업중단을 결단한 지도부, 김수환 추기경님의 건강을 걱정하며 추기경 집앞 농성을 뒤로 미루는 노동자들에게 가톨릭은 무엇을 했나 되돌아봐야 한다. 이런 순박한 노동자들에 대해 뒷짐만 지고 왜 교회를 비방하고 성직자를 모독하는가라고 항변만 하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 어느 노동자도 교회를 고의적으로 비방하거나 성직자를 모독한 적도 그리고 할 생각도 없다. 다만 병원의 사용자로서 자신들의 공정한 역할을 요구할 뿐이었다.

서로가 승자가 되어 웃을 수는 없나

“그동안 몰랐던 것을 지난 217일 동안 많이 알고 배웠어요. 현장에 가서도 올바른 것을 실천하면서 이 사회에 눈을 뜨고 살아갈 거예요.” 이 말 속에 이번 파업을 통해 전 조합원이 간부화되었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공은 병원과 가톨릭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늘 말해왔다. 우리 가톨릭 기관은 다르다고. 이제 노동자들은 그들이 말해온 ‘선 복귀 후 선처’, ‘선 복귀 후 대화’가 어떤 모습인지, 다른 노사관계가 어떤 것인지 지켜볼 것이다.

이번 장기파업에서 누가 승자고 누가 패자인가 그런 질문에 답하기는 아직 이르다. 가톨릭과 노조가 서로 적이 아닌 이상 지난 217일에 대해 서로가 돌아보면서 근본적 사색을 통해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출발한다면 이후 서로가 승자가 되어 웃으며 이날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이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우고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과 평등한 한-미 관계로 나아가는 불씨가 된 것처럼 이번 성모병원 노동자들의 장기파업투쟁도 노동기본권의 암울한 현실을 알리고, 노조탄압에 굴하지 않는 노동자의 자존심을 보여주면서, 직권중재 악법개정과 민주적 대등한 노사관계, 특히 가톨릭 내부의 민주적 노사관계를 만들어가는 초석이 될 것임을 믿는다.

이주호/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정책국장 zoo@nod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