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광/ 고려대 강사·과학저술가 kwahak@korea.ac.kr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아마도 과학이 도전하고 있는 가장 궁극적인 난문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이 질문이 그토록 어려운 주된 이유는 생명을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우리의 접근방식에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 이 물음을 본격적으로 제시한 사람은 물리학자인 에어빈 슈뢰딩거였다. 그는 1943년에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기념비적인 저서를 출간해서 결국 생명현상이 물리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중요한 주장을 제기했다. 슈뢰딩거의 이 책은 1953년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해서 오늘날 생명공학의 기반을 제공했다고 평가받는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을 비롯해서 많은 생물학자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지고 보면 왓슨과 크릭은 슈뢰딩거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생명현상의 토대로 생각된 DNA의 물리적 구조를 밝힌 셈이다.

△ 생명공학의 놀라운 발전에도 생명의 근원·진화 등에 관련된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생명의 설계도를 이용해 재설계한 모습 (사진 / GAMMA)

<뉴사이언티스트>가 뽑은 10가지 물음

그 뒤 1970년대 초의 DNA 재조합 기술의 등장, 그리고 미국의 주도로 이루어진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생명현상을 물리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은 지배적인 신념으로 자리잡아왔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생명 역시 물리적 대상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조작하고 제어할 수 있는 무엇이라는 인식으로 확장됐다. 최근 화두가 되었던 생명복제, 유전자조작 식품, 배아줄기세포 등의 주제가 모두 “생명이란 조작 가능하다”는 신념을 기반으로 한 논의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출간된 지 60년,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진 지 5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얼마나 진전했을까? 아니면 최소한 그 단서라도 잡았을까? 흥미로운 사실은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생명을 둘러싼 수수께끼의 목록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지난 9월 초 특집으로 ‘10대 생명의 수수께끼’를 다루었다. 사실 이런 유의 특집은 과학저널들이 너무 자주 써먹는 것이어서 특별한 내용을 싣기보다는 천편일률적인 문항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이 열 가지 물음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단지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주제들만을 소개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생명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얼마나 많은 종이 있는가,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진화하는가, 왜 우리는 잠을 자는가, 인간 지능의 출현은 필연적인 것이었는가, 의식이란 무엇인가, 성(性)은 왜 필요한가, 노화를 막을 수 있는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다른 행성에도 생명체가 존재하는가.

이미 간파한 독자들도 많겠지만, 이 물음들 중 상당수는 해묵은 것들이다. 생명이 어떻게 시작됐는가라는 물음은 그 출발 과정의 ‘어떻게’에 대한 물음이자 동시에 지구에 굳이 생명이 필요했는가라는 ‘왜’의 물음이기도 하다. 둘째,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생물종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왜 생명이 그토록 다양하고 풍부한가라는 물음으로 대체할 수 있다. 수면이나 노화의 비밀에 대한 물음은 이런 특집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다.

이 물음들 중에서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는 지금도 진화하는가”와 “성은 왜 필요한가”, 그리고 “인간과 같은 지능의 출현은 필연적이었는가”이다. 이 물음들은 생명공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생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像)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을 떠받치는 가정들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왜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수수께끼가 계속 풀릴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시사해주는 것 같다.

“생물의 진화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역시 진화의 와중에 있다는 이야기는 어딘지 낯선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진화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그것을 관조하고, 나아가 스스로의 진화를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듯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진화의 정점이 인간이라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우리 역시 진화의 흐름에서 열외일 수 없다.

‘유성생식’으로 생물종은 풍부해졌다

△ (사진 / 한겨레21)

다윈은 진화의 두 가지 메커니즘을 유전 가능한 변이(돌연변이)와 자연선택으로 꼽았다. 변이는 모든 생물들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선택의 측면에서는 분명 과거와 다른 요인들이 많이 개입한다. 가령 과거에는 적자(適者)가 많은 자손을 남겨서 자신의 유전형을 확산했지만, 오늘날에는 생식기술과 발전과 다산(多産)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밖에도 이른바 인위선택이라 불릴 수 있는 숱한 요소들이 그동안 자연선택이라 불리던 것을 대체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인위적인 요소들이 많이 개입하지만 그 요소들이 의도하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난다는 점은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유성생식이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은 그리 새롭지는 않지만, 복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에는 꼭 되새겨야 하는 물음이다. 지구상에 생존하는 다세포 생물 중 99.9%가 유성생식을 한다. 다시 말해서 암컷과 수컷이 있어서 짝짓기 상대를 고르고, 더 많은 상대와 짝짓기를 해서 자신의 후손을 퍼뜨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새들은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화려한 깃털을 달고, 사슴은 거대한 뿔을 키운다. 그러나 그로 인해 포식자들의 눈에 잘 띄어 죽게 되거나 나뭇가지에 걸린 뿔을 빼지 못해 죽기도 한다.

△ 생명의 수수께끼는 풀릴 것인가. 유성생식이 진화 과정에서 핵심적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 한겨레21)

효율성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유성생식은 무성생식에 비해 무척이나 거추장스럽고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오랜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오늘날 유성생식을 우회해서 간편하고 효율적인 복제로 우량한 품종을 대량생산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인간도 미래에는 이런 방법으로 생식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터무니없는 기대가 팽배하고 있다. 그렇지만 35억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다세포 생물들이 거의 압도적으로 채택한 유성생식이라는 번식 방법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많은 학자들은 오늘날 풍부한 생물종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 지능과 같은 인간적 특성들이 발생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로 유성생식을 유력한 후보로 지목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출현이 진화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즉, 단세포 생물에서 시작해서 영장류를 거쳐 인간에 도달한 경로를 유일한 생명의 역사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몇해 전에 타계한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라는 저서에서 “생명이라는 테이프를 되감아 다시 돌리면 인간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을까”라는 유명한 물음을 제기한다. 아쉽게도 그 답은 “아니다”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출현은 생명의 역사에서 매우 우연적인 여러 가지 사건의 결합으로 가능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생명의 역사라는 기나긴 여정에서 목적지가 아니라 한 간이역에 불과하다. 수천만년 전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도 순식간에 멸종했고, 그 빈틈을 비집고 우리의 아득한 선조인 설치류가 번성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어느 한순간 공룡의 신세가 될 수 있다.

‘인간’은 생명의 역사에서 간이역일 뿐

결국 생명을 둘러싼 수수께끼들을 재구성하면서, 우리는 생명의 수수께끼의 목록이 계속 변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생명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에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려면 먼저 우리가 제대로 그 물음에 접근하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