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중재자 없이 이루어낸 평화, ‘새 네팔’에 대한 흥분과 기대감에 젖어 있는 네팔 현지 르포
▣ 카트만두·카브리(네팔)=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네팔 제헌의회 선거
‘록탄드라 진다바!’(공화국 만세!) 이미 두 차례나 연기된 터다. 잇따른 유혈사태로 치안이 불안해졌다. 그럴수록 초조하게 오늘을 기다렸다. 4월10일 마침내 네팔 제헌의회 선거의 막이 올랐다.
‘왕정 타파’의 함성이 카트만두 거리에 메아리친 지 꼭 2년 만의 일이다. 그 2년 동안 켜켜이 쌓인 네팔 국민의 ‘공화국’을 향한 열망은 투표소에서 쉽게 확인됐다. 안전을 이유로 선거 취재와 감시활동을 위해 등록된 차량 말고는 모든 차량 이동을 금지한 탓에 거리는 한산했지만, 투표소 부근은 이른 아침부터 북적대고 있었다. 최종 개표 결과는 2주 뒤에나 나오겠지만, 왕정이 막을 내릴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마오이스트, 연정 박차며 ‘공화국’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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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새날을 연다.’ 두 차례 연기된 끝에 네팔 유권자들이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투표에 나섰다. 4월10일 수도 카트만두의 투표소에서 한 네팔 유권자가 각 정당의 기호가 그림으로 그려진 투표용지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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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로 가는 길이 순탄할 리 없었다. 수도 카트만두 북부 공가부 지역을 지나는 링로드(카트만두 전역을 하나로 잇는 대로)에는 지난 3월 말부터 경찰과 무장경찰(APF) 10여 명이 지나는 모든 차량을 철저히 검문검색하고 있다. “이 지역을 ‘마데시묵티타이거’(MMT)가 공격할 것이란 첩보를 입수했다.” 한 경관은 선거 이후까지 검문검색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남부지방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마데시 무장그룹은 물론, 왕실이 은밀히 지원하는 각종 무장단체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발사건이 최근 꼬리를 물고 있는 탓이다.
쇼바카르 파라줄리(50) 네팔의회당 총서기는 선거로 구성될 제헌의회의 첫 번째 임무는 ‘공화국 선포’라고 말한다. 현 과도정부를 구성하는 ‘빅3 정당’(네팔의회당·네팔공산당-마르크스레닌연합·네팔공산당-마오이스트) 중 공화국에 가장 소극적이던 의회당도 당내 왕당파를 제쳐두고 지난해 말 ‘공화국 수립’을 당론으로 정했다. 지난해 11월 마오이스트가 연정을 박차고 나가면서까지 고집한 ‘공화국 선포’는 절차만 남은 셈이다. 제헌의회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등의 정치체제와 마오이스트가 강력히 주장해온 ‘연방제’ 등을 놓고 깊은 논쟁에 빠질 것이다.
선거를 닷새 앞둔 지난 4월5일 오후 검문구역을 지나 2년여 전 ‘왕정 타도’ 시위가 가장 격렬했던 공가부 거리의 한 찻집으로 들어섰다. 지역 마오이스트 후보인 ‘슈만 동지’의 사진이 담긴 달력 아래 십대 소년 넷이 마주 앉아 차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 시 외곽 ‘카트만두 계곡’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네와리계 혹은 몽골계 네팔인, 즉 ‘자나자티스’로 불리는 네팔 원주민들이다. 네팔 인구의 37.8%를 차지하는 자나자티스는 봉건왕정 치하에서 그 어느 계층보다 소외되고 억압을 받아왔다. 마오이스트 무장투쟁의 주요 인적 자원도 이들이다.
“프라찬다 동지요? 유명하죠. 절대왕정을 끝낸 좋은 인물이잖아요!”
이제 막 9학년(한국의 중3)을 마친 로샨 나가르 코티(16)는 투표권이 있다면 마오이스트를 찍을 거라고 말했다. “마오이스트가 어떻게 나라를 이끌지 궁금하다”는 게 그 이유다. 최근 선거폭력 사태에 잇따라 연루되고 있는 마오이스트 청년조직 ‘청년공산당연맹’(YCL)에 대해 “힘자랑을 하는 건 나쁘다”고 말하는 비제이 구룽(17)도 “물론 투표권만 있다면 마오이스트를 찍겠다”고 말했다. “의회당과 마르크스레닌연합은 이미 집권해봤지만, 아무런 진보도 가져오지 못했다. 10년간 정글에서 투쟁하다 돌아온 마오이스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는 게 구룽의 말이다.

△ 자랑찬 네팔인이여, 공화제로 나아가자! 10년 내전을 평화협상으로 매듭짓고 의회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네팔 국민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최대 정당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마오이스트 지지자들이 펼침막을 든 채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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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숙취’ vs ‘안티 마오이스트’ 선동
또 다른 소년 라빈드라 키칼키(16)는 “폭력은 나쁘지만 청년공산당연맹이 젊은 층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마오이스트는 전체 출마자 242명(비례대표 제외) 중 96명을 36살 미만의 젊은 후보로 내세웠다. 의회당과 마르크스레닌연합이 각각 9명과 4명의 젊은 후보를 내세운 것과 대조적이다. 전체 유권자의 51%가 이 연령대 젊은 층임을 감안하면 마오이스트 지지도가 제법 높은 것도 이해할 만하다.
제헌의회 선거를 앞두고 네팔 국민은 ‘새 네팔’에 대한 흥분과 기대감, 우려와 호기심에 흥건히 젖어 있다. 4월2일 카트만두 중심가 라트나 공원의 마오이스트 집회에 다녀왔다는 식당 종업원 나렌드라 바하두르 라마(27)처럼 카트만두 시내의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은 소중한 투표권 행사를 위해 고향으로 향했다.
갈수록 태산인 선거폭력 사태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산고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누가 다수당이 되느냐에 따라 새 헌법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보니, 정당 간 경쟁과 비방전이 하루하루 수위를 더해가고 있다. 청년공산당연맹은 이런 폭력사태에서 단연 주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대원들이 일부 폭력사태에 연루되는 건 인정하지만 이를 터무니없이 과장하는 언론보도는 받아들일 수 없다.” 마오이스트 인민해방군 제4지구(중서부) 사령관 출신으로 현재 청년공산당연맹 의장을 맡고 있는 가네시 만 푼(35)은 언론보도를 ‘안티 마오이스트 선동’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지난 2년간 평화협상 과정에서 80여 명의 마오이스트가 각종 폭력사태로 숨졌고, 선거 기간에도 8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언론은 이런 마오이스트 피해는 제대로 조명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한 달여 동안 마오이스트의 폭력사태에 대한 보도가 ‘과잉’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일부 현지 언론은 ‘전쟁 숙취’라는 표현까지 썼다. 게다가 폭력사태가 벌어지는 곳은 도로와 교통편이 좋지 않은 고립된 지역이다. ‘취재원’에 대한 검증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마오이스트의 폭력사태가 그들에게 부메랑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잇단 폭력사태에도 불구하고 소외계층의 마오이스트 지지가 여전하다는 점은 선거를 앞둔 네팔 사회의 계층·계급 갈등을 말해주고 있다.

△ 자랑찬 네팔인이여, 공화제로 나아가자! 거리에 설치된 마오이스트 선전물 사이에서 네팔 남녀 어린이가 밝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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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벨리 골등하 지역의 달리트(불가촉천민) 마을인 무수코 반양에서 만난 주민 크리슈나 파리알(66)은 마오이스트의 폭력사태에 대해 묻자 “일종의 부부싸움 같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마오이스트가 전쟁을 시작하기 전 우리 불가촉천민들은 바깥 출입조차 불편했지만, 마오이스트 운동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며 “배고픈 우리는 마오이스트를 찍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트만두 지구 제7선거구인 골등하 지역은 카트만두 시내에서는 차로 불과 반시간 남짓한 위치에 있지만 산악지대와 다를 바 없는 미개발 지역이다. 주민들은 ‘마실 물’과 ‘개발’ 그리고 ‘평화’를 원했고, “중앙정부가 우리를 철저히 소외시켜왔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연방제를 통해 각 지역이 고루 개발되기를 바라고 있다. 마오이스트의 공약이다.
“기본적으로 공산당을 지지하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마오이스트는 아니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만난 데브 라주 실왈(25)처럼 도시 지역에선 마르크스레닌연합 지지자들이 많다. 중년 이상층에선 의회당이 선전하고 있다. 마오이스트 쪽에선 의장 프라찬다를 포함해 주요 간부들이 카트만두 도심 지역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두 좌파 정당 사이 미묘한 신경전이 한창인 것도 이 때문이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마오이스트에 대한 ‘궁금증’을 동시에 보이는 카트만두는 그야말로 두 공산당의 최대 접전지다.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4월7일, 카트만두 번화가이자 부유층 거주 지역에 속하는 타멜의 일부 상점에도 마오이스트 깃발이 걸렸고, 대부분 하층 카스트가 모는 자전거 릭샤(인력거)들은 하나같이 마오이스트 깃발을 펄럭이며 내달리고 있었다.
두 좌파 정당은 미묘한 신경전
“만일 마오이스트가 이기면 이 나라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인도가 마오이스트의 승리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네팔은 미국과 인도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4년간 이주노동자로 일했다는 택시 운전사 라메쇼 카트리 체트리(42)는 공산당을 지지하지만, 투표는 의회당에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차로 약 2~3시간 거리인 동부 카브리 지구의 파츠칼 마을 초등학교 교사인 볼라 나트 카슬라(36)는 “지역구 선거에선 의회당을 찍고, 비례대표는 마오이스트에게 표를 주겠다”고 말했다. “네팔은 국제사회의 원조가 절실한데, 만일 마오이스트가 집권하면 미국과 인도가 혼쾌히 지원해주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의회당을 찍겠다는 이유다.
10년 세월 내전으로 몸살을 앓았던 네팔은 제3의 중재자 없이 스스로 평화를 만들어냈다. ‘전쟁의 당사자’였던 마오이스트는 자신들이 주장했던 ‘왕정 폐지’란 정치적 의제를 들고 주류 정치에 동참했다. 비록 각종 잡음과 폭력사태가 끊이지 않음에도, 평화협상에 이어 의회민주주의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는 네팔은 끝없는 유혈분쟁으로 고통받는 제3세계 나라들의 모범으로 불릴 만하다.
“남아시아 전역이 장기간 각종 무력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처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지금껏 없었다.” 사하나 프라단(79) 과도정부 외무장관은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네팔 출신의 저명한 인권운동가 크리슈나 파하디는 “이번 선거는 네팔의 새로운 체제를 창출하기 위한 과정”이라며 “특정 개인이나 정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새로운 체제에 대해 국민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선거’란 게다.
개표 뒤 2년간 ‘헌법 기안’
4월 말로 예정된 개표 결과 발표 이후, 네팔은 2년에 걸친 ‘헌법 기안’ 단계에 들어간다. 마오이스트 여성 지도자 팜파부살(44)은 “장기간 무장투쟁까지 해가면서 제기해온 제헌의회 선거가 치러지는 것만으로도 우린 이미 정치적으로 승리했다”고 말했다. 10년간의 정글 생활을 접고 대중 앞에 선 마오이스트는 선거운동 기간에 그 어느 정당보다도 ‘몸’으로 뛰었고, 또 그만큼 폭력사태에 많이 연루됐다. 무장투쟁에서 의회민주주의로 들어선 마오이스트와 변화와 개혁을 향한 네팔 국민의 열정이 얼마나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네팔은 여전히 혁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