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찌민=하재홍 전문위원 vnroute@lycos.co.kr

베트남은 경품 천국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수시로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중소기업들은 가전제품을, 대기업은 고급 승용차나 집 한채를 경품으로 내건다. 1인당 국민소득이 600달러가 채 안 되는 나라에서 ‘7천동(약 460원)짜리 타이거맥주 한병으로 5만6천달러짜리 BMW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술 못하는 부녀자와 아이들까지도 솔깃하게 한다.

BMW, 술값 낸 사람과 병뚜껑의 대결

타이거맥주 경품행사와 관련해서 두건의 법정 싸움이 있었다. 첫 번째는 병뚜껑에 그려진 BMW가 누구 차지냐는 것이었다. 술값을 낸 사람과 병뚜껑을 딴 사람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한건은 좀 복잡하다. BMW에 당첨된 일곱명이 당첨금을 나눠갖기로 하고 이틀간 2천만동(약 135만원)을 쓰는 축하파티를 벌였다. 알고 보니 병뚜껑의 그림은 누군가가 장난친 것이었다. 이들 일곱명은 다시 의기투합해 타이거맥주 본사의 ‘관리 책임 미흡’을 이유로 법원에 정신적 피해보상 청구 소송을 냈다.

△ LG비나 대리점은 백화점과 상가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호찌민 다이아몬드 백화점 내의 LG비나 매장. (사진/ 하재홍)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 역시 다른 외국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 시시때때로 경품행사를 진행한다. LG비나코스메틱스(Vina Cosmetics, LG화장품·LG생활용품 베트남 지사)는 2003년 12월15일부터 2004년 3월15일까지 E’Zup 화장품 구매 고객에게 경품권을 나눠주었다. 내건 경품은 특별상 4억6500만동(약 3100만원)짜리 신도시 아파트 한채. “자신 있는 미모로 꿈같은 집을…”이라는 경품행사 광고는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의 눈길을 확 끌었다.

2004년 3월24일에 있었던 경품 추첨식의 주인공은 끼엔장성 락자시의 럼 응우옌안루언. 18장의 경품권을 모아 행사에 참여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LG화장품 중개상이라는 것. LG비나쪽은 경품행사를 시작할 때 ‘직원과 중개상, 광고업자들은 본 경품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고 고지했다. LG비나쪽은 추첨 직후 전화 통화를 통해서 럼이 중개상인 것을 확인하자 그의 당첨을 취소했다. 그리고 곧바로 재추첨을 해 당첨자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럼은 LG비나쪽의 결정에 승복할 수 없었다. 그는 호찌민시 상업청에 고발하고 “LG비나는 럼이 LG비나의 정식 중개상임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럼의 경품행사 참가 자격은 충분하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외국 기업들의 관행에 따끔한 교훈

럼은 이 말에 힘을 얻어 2004년 4월22일 호찌민시 인민법원에 민사소송을 냈다. 지난 5월9일 지루하게 끌던 1년간의 재판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위원회는 “중개상이라는 개념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LG비나는 럼과 맺은 ‘경제 계약서’ 같은 것을 제출하지 못하는 등 정식 중개상임을 증명하지 못했다. 따라서 LG비나는 럼의 요구대로 경품행사 특별상인 4억6500만동짜리 아파트 한채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LG비나는 재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에게 이미 특별상을 지급한 뒤였다. 베트남에서 기업과 중개상과의 계약이 불투명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LG비나의 이번 법적 분쟁은 다른 외국 기업들의 관행에도 일침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