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국제 > 움직이는 세계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9월02일 제525호
너네 정말 약 먹었니?

연이은 약물 스캔들로 술렁이는 올림픽… 그리스인들에게 자국 선수들의 양성반응은 치욕

▣ 아테네=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이번 아테네올림픽은 ‘약물 올림픽’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기에 충분해 보인다.

지금까지 가장 충격을 준 약물 스캔들은 여자 투포환 부문에서 올리브관을 머리에 얹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이리나 코르자넨코 러시아 선수가 약물 테스트에서 양성 판정을 받고 메달을 박탈당한 일이다. 이 사건은 전체 올림픽 선수단이나 전세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물론 러시아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또 인도의 사나마차 차누와 우즈베키스탄의 올리 쉬추키나는 약물 판정에서 떨어져 올림픽선수 자격을 빼앗겼다. 인도에서는 추방당한 역도 선수인 쿠마리가 약물 테스트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책임을 코치에 돌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언론의 추적을 뿌리치고 숨어 지냈던 쿠마리는 인도의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코치가 모든 것을 통제했다. 식사, 음료, 훈련 과정에서 진통제 주사 등 모든 과정을 코치가 알아서 했고 금지된 약물을 주사할 줄은 전혀 몰랐다. 약물 테스트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10년 이상 몸 바친 역도 인생이 허무하게 끝났다”고 폭로했다.


△ 그리스의 국민적 영웅으로까지 인기를 모은 두 육상선수 타니노스 켄터리스(왼쪽)와 에카테리나 타누. 이들은 약물 테스트를 거부해 그리스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진/ GAMMA)

참을 수 없는 유혹, 스테로이드

벌써 7명의 역도 선수들이 약물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여 출전이 금지됐다. 뉴질랜드 선수도 약물 양성반응이 나와 출전이 금지되면서 아테네올림픽은 약물 스캔들로 빛을 잃어가고 있다. 아테네올림픽 역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그리스 선수 레오니다스 삼파니스는 약물 테스트에서 양성 판정이 나왔다. 켄터리스와 타누에 이어 다시 그리스 선수가 약물로 동메달을 박탈당하고 올림픽대회에서 추방되자 올림픽을 주최한 그리스 국민들은 모두 할 말을 잃고 있다. 자존심이 강한 민족성을 지닌 그리스인들은 오랜만에 올림픽을 주최한 입장에서 그리스 선수들이 잇달아 일으키는 약물 스캔들을 참을 수 없는 치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욱이 그리스의 두 육상 영웅의 올림픽 출전 포기는 그리스 국민들을 가장 실망시킨 사건으로 꼽힌다. 그리스의 국민적인 영웅으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200m 금메달을 수상한 코스타니노스 켄터리스와 여자 1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카테리나 타누의 스캔들에 대해 그리스 국민들의 실망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이들은 모두 아테네올림픽의 스타로 주목을 받아왔으나 약물 테스트를 거부해 선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하루아침에 그리스 국민들의 원성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두 선수는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에서 요구한 약물 테스트를 미루었고 다시 사흘의 여유를 얻었다. 그럼에도 고의로 낸 교통사고를 핑계로 입원까지 하자 세계 언론은 그 진의를 의심하는 기사들을 연일 게재하면서 압박했다. 신뢰가 땅에 떨어진 두 선수들은 결국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성공적인 올림픽 개막식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리스가 이들의 경기 출전 포기로 인해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이고 말았다.

이들 선수를 탈락시킨 약물로 알려진 스테로이드는 복용한 선수들의 얼굴과 목을 붓게 만드는 후유증을 보이기 때문에 육안으로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두 선수들이 약물 복용으로 논란이 된 이유도 이들의 얼굴이 이전 사진에서의 모습과 두드러지게 다르기 때문이다.


△ 여자 투포환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러시아 대표선수 이리나 코르자넨코는 약물 테스트에서 양성 판정을 받고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사진/ GAMMA)

스테로이드가 올림픽에서 금지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이미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덴마크 선수가 약물을 복용하고 뛰다가 끝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약물금지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미적미적거리다 1975년이 돼서야 IOC에서 정식으로 스테로이드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나 1960년대만 해도 스테로이드는 올림픽 선수들에게는 공공연하게 사용됐다. 지금도 여전히 선수들이나 코치들은 약물 사용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 100m 결승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한 벤 존슨이 약물 테스트에서 양성 판정을 받아 실격된 사건은 역대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그가 사용했던 약물도 스테로이드였다. 이처럼 많은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뒤 메달을 따면서 스테로이드는 엄청난 선전효과를 동반했다.

경기 때만 복용 중단?

더구나 금지된 스테로이드가 음성적으로 선수들 사이에서 유통되기 시작하자 그 값은 하늘로 치솟았다. 이런 상황을 악용해 중간에서 음성적 약물 공급을 통해 엄청난 폭리를 챙긴 기업이 바로 미국의 발코사이다. 이 회사는 아테네올림픽 약물 스캔들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전세계 유명 스포츠 선수들의 비밀 공급업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발코 스캔들’을 낳았다. 발코사는 영양제를 생산하는 회사 시늉을 했으나 실제로는 스테로이드제를 생산했다. 스포츠 선수들이 애용하는 스테로이드 약물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자 자연스레 선수들 사이에서는 테스트를 해서도 적발되지 않는 새로운 약물을 요구했다. 발코사는 테스트를 별 탈 없이 넘길 수 있는 스테로이드제를 제조해 비밀스럽게 판매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발코사가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고 유명 선수들이 검찰 조사를 받자, 발코사는 스스로 테스트에서 적발되지 않는 약으로 알려진 테트라하이드로제스트리논(THG)의 샘플을 관계기관에 제출해 비밀이 세상이 알려졌다. 그러나 발코사가 모든 비밀을 완전히 털어놓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은밀히 유통되던 약물인 THG가 공개되긴 했으나, 발코사가 약물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또 다른 약물을 개발했기 때문에 THG를 포기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스테로이드는 독일 과학자들이 1930년대에 처음 개발한 뒤 개에게 실험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자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병사들의 사기를 높일 목적으로 공급됐다. 전쟁포로들에게는 영양실조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뒤 스테로이드는 1950년대부터 스포츠 선수들이 애용하자 유명해졌다. 당시 러시아 선수들과 유럽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뒤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자 선수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스테로이드가 가장 발전된 곳은 미국이다. 개량된 스테로이드는 미국 선수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비록 스테로이드가 올림픽에서 금지된 약물이지만, 여전히 선수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약물 테스트만 통과하면 된다는, 즉 테스트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순간적 유혹 때문이다. 그리고 약물 테스트는 단지 올림픽 경기 기간 중에만 실시되는 탓에 선수들은 훈련기간 중에만 약물을 사용하다가 실제 경기 때는 절제하는 방법으로 약물 테스트를 무사히 넘어가기도 한다. 약물 판정에서 실격한 선수들이 판정 기준에 불만을 터뜨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같이 경기에 임하는 경쟁자들도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약물 판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약물까지 복용하면서 올림픽에서 우승하려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금메달을 딸 경우 주어지는 엄청난 물질적 보상과 명예 때문이다. 올림픽대회의 정신인 “승리보다는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말은 지금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이 노리는 건 오직 금메달이다. 금메달만 따게 되면 인생이 바뀔 뿐 아니라 국가 순위에도 결정적 기여를 한다. 현재 올림픽은 금메달을 기준으로 하여 국가의 순위가 결정되기 때문에 금메달은 곧 국가의 명예와 직결된다. 당연히 금메달을 딸 경우 국가의 명예를 드높인 국민적 영웅이 된다. 그러나 약물 판정에서 탈락할 경우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2년 동안 선수 자격을 박탈당하지만 대부분은 선수로서 삶을 포기한다. 또 소속 국가대표팀의 명예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 때문에 국가대표로 다시 나선다는 건 불가능하다. 사실 약물을 복용하면서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은 이제까지 쌓아온 선수 인생을 완전히 요행에 내맡기는 도박을 하는 셈이다.

고대 올림픽의 ‘석상’을 잊었는가

3천년 전 그리스에서 열린 고대 올림픽대회에서도 선수들의 경쟁은 치열했다. 당시에도 선수들은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양의 고환을 먹기도 했다. 오늘날 연구소에서 특별히 스포츠 선수들의 승리를 위해 인위적으로 개발하는 약물과는 거리가 멀다. 고대 올림픽대회에서는 올리픽 정신에 반하는 반칙을 저지른 경우, 주최쪽은 반칙을 범한 선수단에 벌금을 물렸다. 이 돈으로 반칙을 한 선수들의 석상을 만들어 올림피아에 영구히 보존했다. 반칙을 한 선수들을 영원히 부끄럽게 만든 벌칙이다. 그러나 올림픽 우승자들은 푸른 올리브관과 올림피아에 영구히 안치될 자신의 명예로운 석상에 만족했다. 여기서 명예를 소중히 여긴 고대 올림픽의 정신을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