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01월28일 제4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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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고통은 민간인의 것

바그다드 서부 알 카드라 지역에 살고 있는 만델씨 부부는 지난해 7월17일을 잊지 못한다. 이날 새벽 2시께 중무장한 미군 병사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고함을 쳐대기 시작하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더위를 피해 발코니에서 자고 있던 아들 라아드가 상황을 살피기 위해 밖을 내다보는 순간 날카로운 총성이 울려퍼졌다. 미군은 온 집안을 이 잡듯 뒤졌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총상을 입은 라아드를 포함한 만델씨 아들 4명은 ‘저항세력과 친하다’는 이유로 연행됐다. 세 아들의 구금장소는 어렵사리 찾아냈지만, 피를 흘리며 끌려간 라아드는 끝내 행방이 묘연해졌다.

전쟁이 끝나도 민간인 피해는 장기간 계속된다. 오히려 전쟁 기간보다 전쟁이 끝난 뒤의 상황이 훨씬 더 혹독해질 수 있다. 이라크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지난해 5월1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주요 전투는 끝났다”고 선언한 뒤에도 미군 사상자가 끝없이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이라크 민간인의 고통과 희생 또한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정권 몰락 뒤 이라크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국적 비정부기구(NGO) ‘점령감시센터’(www.occupationwatch.org)와 ‘이라크인권보호협회’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바그다드에서 주민면담과 현장조사를 벌인 끝에 작성해 최근 내놓은 <이라크 민간인 사망과 미군의 인권유린>이라는 13쪽 분량의 보고서에는 이런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무차별 총격과 가택수색, 미군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 국제적인 비난에도 미군이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집속폭탄에 의한 민간인 사망사건 등 이라크 주민들이 감내해야 할 현실은 전쟁 때와 다를 바 없다.

지난해 9월10일 오후 7시께, 바그다드 서쪽 팔루자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소도시 아부 그레이브. 미군 탱크 2대가 교통체증에 밀려 멈춰선 순간, 한 소년이 탱크 안으로 수류탄을 밀어넣고 달아났다. 굉음과 함께 수류탄이 폭발한 직후, 미군 병사 1명이 뛰쳐나오더니 인파를 향해 10여초간 총을 난사했다. 식료품을 사러 나온 압둘 모니엠의 딸 아프라(7)와 하산 마흐무드 압바스(37)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다수의 주민이 총상을 입었다. 미군 당국은 민간인이 밀집한 곳에 무차별 총격을 가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전투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외침을 쉽게 외면했다.

전시 민간인 보호 의무를 규정하는 제네바협정은 보복이나 억제책으로 가옥이나 민간시설을 부수는 행위를 ‘집단처벌’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 전쟁의 상대편을 강제할 목적으로 민간인을 구금하는 것 역시 ‘전쟁범죄’에 해당하며, 점령지 주민의 안전에 대한 책임은 점령군 당국이 지도록 국제법은 규정하고 있다. 점령감시센터는 “교전수칙조차 비밀에 부치고 있는 미군 당국이 ‘전투상황’이라는 애매한 논리를 앞세워 민간인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사이 점령군에 대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인환 기자/ 한겨레 국제부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