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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움직이는 세계 | 등록 2002.11.20(수) 제43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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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세계] 이보다 엽기적인 국왕은 없다 에이즈 방지 명목으로 ‘섹스 금지령’ 내린 스와질란드 국왕, 처녀를 납치해 부인으로 삼기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모잠비크 사이에 위치한 인구 100만여명의 작은 왕국 스와질란드가 국왕 음스와티 3세의 계속되는 기행과 실정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해마다 전통적 의식인 갈대춤 축제에 국왕이 참석한 가운데 처녀들이 젖가슴을 드러내고 춤을 춘다. 지난 9월15일 이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제나 말랑구라는 18살의 여학생이 국왕의 눈에 띄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여 산업심리학을 전공하고자 했던 이 여학생은 방과후 귀갓길에 왕의 측근들에 의해 유괴당했다. 일주일 동안 가족과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국왕의 열 번째 부인으로 간택됐음을 확인한 여학생의 어머니가 딸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국왕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국왕과 황태후는 피소되거나 체포될 수 없다는 왕국 내의 불문율을 깬 전례 없는 소송이었다. 법무장관은 담당 판사들에게 소송을 기각하라고 압력을 행사하는 한편 공무방해혐의로 법원출두 명령을 받았지만 거부했다. 법무장관이 사법부를 능멸한 것이다. 유괴된 여학생의 어머니는 11월5일 결국 법정소송을 무기한 연기시켰고 유괴된 여학생은 국왕과 함께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국왕의 열 번째 부인이 될 것임을 대내외에 공표했다. 절대권력에 대한 운명적 수용이라는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채.
압력에 굴복해 소송 취하한 가족들
음스와티 3세의 이와 같은 시대착오적 전횡이 스와질란드 내 인권운동가들은 물론 국제사회의 공분을 촉발시키고 있다. 1982년 부왕인 소부자 2세가 죽고 황태후 섭정을 거쳐 86년 즉위한 올해 34살의 음스와티 3세는 지난해 11월 에이즈 창궐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5년간 섹스금지령을 내려 실소를 자아내게 한 장본인이다. “신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국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는 ‘현대판’ 왕권신수설에 따라 절대권력을 행사해온 국왕은 정당활동을 금지시키고 언론을 장악하여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여학생 유괴는 전통이라는 그럴듯한 구실을 내세우지만 명백한 범죄행위라는 것이 인권운동가들의 주장이다. 더구나 스와질란드 전통법에 따르면 왕은 쌍둥이와 결혼할 수 없는데 이번에 유괴된 여학생은 쌍둥이였고 남자친구도 있었다. 자신의 사욕을 충족하기 위해 전통을 어기면서도 시대착오적 행위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자기 모순적 행동을 한 꼴이다. 어린이구호재단 등 비정부기구와 인권단체들은 국왕의 인권유린에 상응하는 법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유엔협약에 의거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스와질란드는 1989년 채택된 유엔의 아동권리협약 당사국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내린 칙령, 자신이 위반하다
음스와티 3세는 지난해 33살 생일을 맞이하여 왕국 내 처녀들의 처녀성을 지키고 에이즈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향후 5년간 남자들과의 신체접촉은 물론 바지착용도 금지시켰다. 이를 어기는 자에게는 소 한 마리 혹은 152달러 상당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국왕 자신이 17살의 여학생을 여덟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이는 바람에 자신이 선포한 칙령을 위반하여 소 한 마리의 벌금을 내는 희극을 연출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방문외교를 통해 외국의 원조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국왕 전용 제트기가 필요하다는 구실로 의회의 반대에도 호화 전용기 구매를 강행하여 빈축을 샀다. 성인인구의 3분의 1이 에이즈 감염자이고 한발로 인해 국민의 4분의 1이 굶주리는 절박한 현실에서 연간 보건예산의 2배인 4500만달러 상당의 전용기를 구입하는 일은 백성들의 원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음스와티 3세는 응그웨냐마로 불린다. 스와질란드의 국어인 시스와티어로 사자라는 의미다. 민주적 입헌군주제를 확립함으로써 국왕을 상징적 역할에만 국한시키려는 정치세력과 절대권력을 행사하려는 사자와의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헨트=양철준 전문위원 YANG.chuljoon@wanad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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