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스포츠/건강 > 스포츠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7월24일 제720호
프로야구 좌파 전성시대

주요 타이틀 대부분 왼손 투수와 타자들이 장악… 올림픽 대표팀도 왼손 42%로 역대 최고 비율

▣ 김동환 <스포츠 월드> 기자 hwany@sportsworld.com

바야흐로 ‘좌파’ 전성시대가 열렸다. 한나라당이 집권한 것이 불과 6개월 전인데 뜬금없이 웬 좌파 시대 타령이냐고? 애석하게도(?) 야구판에서 그렇다는 거다.

2008년 한국 프로야구는 왼손이 장악했다. 특히 투수 쪽의 왼손 편향이 두드러지는데, 전체 일정의 70% 가까이 소화한 7월15일 현재 다승 1위(김광현·11승), 탈삼진 1위(봉중근·103개), 세이브 1위(토마스·23개), 홀드 1위(정우람·18개)가 모두 왼손 투수들이다. 6개 주요 타이틀 중 평균 자책점과 승률 부문만 1위(채병용·평균 자책점 2.44·승률 0.875)가 오른손 투수다. 또 각 부문의 상위 5명 안에 왼손 투수는 최소 2명 이상씩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탈삼진 부문은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왼손 투수다.


△ 지난 3월6일 베이징올림픽 야구 최종예선을 앞두고 대표팀이 몸을 풀고 있다. (사진/ 연합 이상학)

타자 쪽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타율, 홈런, 타점, 득점 등 총 8개 부문 중 타율(이진영·0.342), 득점(클락·80득점), 최다안타(이용규·106개), 출루율(김현수·0.441), 도루(이대형·38개) 5개 부문의 1위가 왼손 타자다. 투수 부문의 채병용과 마찬가지로 타자 부문에서도 오른손 타자는 김태균 단 한 명이 홈런(25개), 타점(73개), 장타율(0.667) 등 3개 부문 타이틀을 독식하고 있을 뿐이다.

25% 소수파가 66% 지배

기껏해야 2 대 1 정도로 오른손에 비해 왼손 타이틀 홀더가 많은데 그게 대수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전체 모집단에서 왼손이 차지하는 비율을 생각해보면 결코 시시한 일이 아니다. 인구통계학적으로 왼손잡이 비율은 10%밖에 안 된다. 야구에서는 왼손의 상대적 효용성 때문에 왼손을 활용하는 선수가 좀 많다고 해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5% 안팎이다. 25%의 소수파가 66%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7월14일 발표된 베이징올림픽 대표팀의 선수 면면을 보면 왼손 득세 현상이 더욱 단적으로 드러난다. 24명의 엔트리 가운데 왼손 선수는 총 10명이다. 비율 42%로, 역시 모집단에서의 비율을 훨씬 상회할 뿐만 아니라, 역대 야구 대표팀 중 최고의 왼손 비율을 자랑한다. 프로 선수 참가가 허용된 첫 대회였던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때 대표선수 22명 중 4명만이 왼손 선수(비율 18%)였고, 왼손 선수 비율이 가장 높았던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때도 22명 중 7명으로 32%에 불과했다. 엔트리가 31명으로 가장 많았던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도 왼손 선수는 8명밖에 안 됐다.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투·타의 주력 선수가 모두 왼손잡이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이번 대표팀 투수 10명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선발 투수는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송승준 4명인데 미국, 일본, 쿠바 등 주요 상대국과의 경기에 나갈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등 이른바 ‘빅3’는 모두 왼손이다. 메달 획득을 위해서는 8개국 예선 리그에서 4승을 거둔 뒤 4강전부터 최소 1승을 거둬야 하는데, 사실상 메달이 이들 왼손잡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선의 핵 역시 왼손잡이 1루수 이승엽이다. 일본 프로야구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금은 비록 컨디션 저하로 2군에 있지만 이승엽은 누가 뭐래도 한국 최고의 타자다. 김경문 대표팀 감독이 “해외파 선수가 다 빠져도 좋은데 이승엽만큼은 있어야 한다”고 갈구했고 이상일 한국야구위원회 총괄본부장이 직접 찾아가 읍소하는 등 ‘삼고초려’ 끝에 대표팀에 참가하게 된 귀한 몸이다. 국내파에서는 김동주, 이대호 등 오른손 거포들이 날고 긴다고 하지만 대표팀에서 이들의 역할은 이승엽을 지원사격하는 것이다.

‘기동력 야구’의 선두주자 김경문 감독의 주무기인 빠른 발의 사나이들 역시 왼손잡이 이종욱, 이용규다. 외야수는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큰 상관이 없는데, 이 둘을 포함해 외야수 5명 중 4명이 왼손 타자다. 포수 및 내야수는 수비 특성상 모두 오른손만 써야 하는 점(1루수만 예외)을 감안하면 ‘선택된’ 오른손잡이는 외야수 이택근뿐인 셈이다.

사실 일반 사회에서처럼 야구판에서도 왼손 선수가 주류는 아니었다. 야구 경기장과 룰은 기본적으로 오른손잡이에 맞춰 설계됐다. 오른손잡이에 맞춰 베이스 진행 방향이 오른쪽에서 왼쪽, 즉 반시계방향이다. 수비 입장에서 보면 첫 베이스인 1루가 왼쪽에 있으므로 타구를 가장 빠르게 잡아 던지기 위해서는 왼손으로 잡아 오른손으로 던져야 한다. 반면 1루수는 대부분 자신의 오른쪽으로 공을 던져야 하므로 왼손이 다소 유리하다. 그래서 1루수를 제외한 내야수는 모두 오른손잡이인 것이다.

투수들도 오른손잡이 중심이다. 오른손 투수를 ‘정통파’라고 부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왼손 투수를 뜻하는 사우스포(southpaw)의 ‘포’(paw)도 손을 비하한 단어다. 일단 오른손 타자가 주류이다 보니 오른손 타자 상대에 유리한 오른손 투수가 주류가 되고 왼손 투수는 천덕꾸러기일 수밖에 없었다. 통계적으로 오른손 투수가 오른손 타자에 강할뿐더러, 오른손 타자가 보기에 자신의 몸 쪽에서 공이 나오는 오른손 투수보다 바깥쪽에서 공이 나오는 왼손 투수의 공이 더 잘 보인다는 과학적인 근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왼손 투수는 이따금 나오는 왼손 타자를 상대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른손 투수가 주류가 되다 보니 역으로 왼손 타자의 효용가치가 점점 커졌다. 오른손 타자보다 오른손 투수의 공이 더 잘 보이는 것은 물론이요, 왼손 타석이 1루와 더 가깝다는 이점도 있는 것이다. 던지는 것은 오른손으로 하되 타격은 왼손으로 하는 ‘우투좌타’ 선수가 급격히 늘고 왼손잡이 빠른 발 타자가 많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왼손 타자가 늘다 보니 당연히 왼손 투수도 입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야구에서 왼손을 쓰는 선수의 비율(25%)이 전체 인구의 왼손잡이 비율(10%)보다 훨씬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자원에서 많은 재원을 뽑아야 하니 최근엔 오히려 왼손 선수들이 우대를 받는 형국이다. 신인 선수를 선발할 때 왼손 투수나 타자에게 더 큰 메리트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김성근 감독의 대표팀 걱정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수일 수밖에 없는 왼손 선수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득세를 한다는 것은 분명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특히 오른손 타자가 훨씬 많은 환경에서 왼손 투수들이 단순한 보조장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른손 투수들을 밀어내고 한꺼번에 주류를 장악한다는 것은 왼손 핸디캡을 극복하고도 남을 엄청난 위력을 모두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을 ‘괴물’로 부르는 것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들은 모두 시속 150km에 이르는 강속구를 뿌리고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등 다양한 변화구를 원하는 곳에 자유자재로 던질 줄 안다는 공통점이 있다.

토대가 그렇다 보니 그중 최고들을 뽑아야 하는 대표팀에서도 ‘왼손 편향’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왼손 타자가 많은 국내 환경과 달리 여전히 오른손 선수들이 지배하고 있을지 모르는 국제 무대에서 이렇게 너무 왼손에 의존해서 되는지 약간은 우려도 따른다.

데이터에 기반한 용병술의 귀재인 김성근 SK 감독은 7월1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두산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올 시즌 워낙 왼손 투수들이 좋아서 투수 선발에 고민을 많이 한 것 같기는 한데 (왼손 투수 대거 기용이) 좋은 쪽으로 갈지, 나쁜 쪽으로 갈지는 모르겠다. 김경문 감독이 잘 알아서 하겠지”라고 말했다. 자신이 직접 대표팀을 이끌지 않아 말을 조심했을 뿐 사실상 “걱정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원래 스타일대로 정공법에 의한 ‘정면돌파’를 택했다.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그들이 현재 최고이므로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올해 왼손 선수들이 잘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가 편견과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오로지 실력만으로 당당히 주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엇이든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면 불안하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워주는 2008 한국 프로야구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