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문화&과학 > 문화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1월31일 제696호
슈퍼맨의 꿈은 불가능할까

자신이 슈퍼맨이라 믿는 남자와 그 간절함을 믿게된 여자의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간절하다. 간절하다고 말하기보다는 간절함을 몸으로 보여주려 애쓴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아름다운 지구와 아름답지 않은 도시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외계에서 떨어져 지구의 땅바닥에 엎어진 듯한 사나이, 슈퍼맨이 일어난다. 그는 자신이 슈퍼맨이라고 혹은 슈퍼맨이었다고 굳게 믿는다. 황정민이 연기하는 슈퍼맨은 길 잃은 동물의 구원자이자 어린이의 친구이며 지구를 지키는 용사다. 하지만 창대한 그의 이름에 견줘 실천의 목록은 소박하다. 바바리맨 체포하기, 강아지 찾아주기 그리고 지구 온난화 막기. 물구나무를 서는 슈퍼맨에게 왜냐고 물으면 “지구를 태양에서 밀어내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이렇게 황당한 슈퍼맨 옆에는 그를 찍는 PD가 있다.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인물을 바보로 만드는 ‘휴먼 다큐’를 찍는 송수정 PD(전지현)는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다니면서 기행을 일삼는 슈퍼맨을 보며 말한다. “완전 또라이”라고.

클립토나이트 박혀 잃어버린 초능력


수정은 냉소하는 우리들을 상징한다. 카메라를 통해 인간을 너무나 가까이 보아온 탓인지 수정은 믿음을 잃었다. 인간을 찍느니 차라리 아프리카의 사자를 찍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수정에게 슈퍼맨은 초능력을 발휘한다. 거듭되는 슈퍼맨의 이유 없는 선행을 보면서 수정은 자신의 불신을 의심한다. 더구나 자신의 머리에 “대머리 악당이 클립토나이트를 박아서” 하늘을 나는 초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슈퍼맨의 머리를 엑스레이로 찍어보니 정말로 무언가 박혀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수정은 그의 황당한 행동에 담긴 간절한 바람을 믿는다. 비로소 수정에게도 그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 생긴다.

그런데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노골적으로 간절하다. 간절한 바람을 간절한 행위로 설득하지 못하고 자꾸만 경구를 되뇐다. “현재를 바꾸면 미래도 바뀐다” “우리 모두에겐 남을 도울 능력이 있다” “남을 돕는 것은 누군가의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자꾸만 슈퍼맨이 말하는데 감독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엇보다 뒤통수를 치는 ‘한칼’이 부족하다. 정상성을 벗어난 사람이 오히려 숨겨진 진실을 보고, 정상의 상태로 돌아오면 오히려 불행해지며, 결국엔 자신의 길을 간다는 구성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 상처의 기원을 불행한 한국 현대사에서 찾는 방식도 이제는 관습이 되었다. 이렇게 내용이 예측을 넘어서지 않아서, 정상성을 벗어난 주인공을 다루지만 관객을 무중력의 혼란으로 인도하진 못한다. 정상성의 경계를 좌충우돌 넘나들어 결국엔 경계마저 헷갈리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진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슈퍼맨이 되자는 선동은 유효하다. 더 이상 슈퍼맨이 되어서 세상을 불의에서 구원하는 꿈을 꾸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남을 돕는 일이 이상한 행위가 되어버린 세상이란 역설을 전제한다. 이렇게 전도된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는 슈퍼맨을 꿈꾸기 어려운 것이다. 여전히 영화라는 실천으로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다고 믿는 386세대 정윤철 감독은 영화 내내 낮은 목소리의 호소를 계속한다. 당신의 행동이, 우리의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은 386 감독의 영화적 저항이다.

‘슈퍼맨이었던 우리’를 꿈꿨던 세대의 흔적

사람들 사이의 연대로 가능한 ‘슈퍼맨이었던 우리’를 꿈꾸었던 세대의 흔적이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는 또렷하다. 영화에서 흔적은 죄책감과 죽음으로 남았다. 평범한 사나이가 슈퍼맨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죄책감이다. 자신이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누군가 숨졌다는 죄책감에서 슈퍼맨이 되려는 의지는 시작됐다. 그것은 마치 1980년대 운동이 광주의 학살, 친구의 고문사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듯하다. 그렇게 타살로 촉발된 집단적 죄책감은 누군가의 분신으로 이어지는 순환구조를 그렸다. 영화에서 슈퍼맨의 죽음은 그러한 순환을 닮았다.

이렇게 아무도 세상을 바꾸자는 이야기를 ‘감히’ 직설법으로 하지 않는 시대에 정윤철 감독의 선택은 용감하다. <좋지 아니한가>에서 콩가루 집안의 얘기를 쿨하게 다뤘던 그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 세상에 대한 뜨거운 고백을 숨기지 않는다. 데뷔작 <말아톤>부터 줄곧 이어진 정상성을 벗어난 인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여전하다. 이렇게 간절한 호소는 과연 냉담한 세상을 울릴 수 있을까. 어려운 캐릭터를 자연스레 소화해낸 황정민의 연기는 여전하고, 주근깨가 드러나는 ‘생얼’로 등장하는 전지현의 모습은 낯설지만 흥미롭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삽입곡 <임파서블 드림>(Impossible Dream)으로 끝난다. 불가능한 꿈을 꾸자고 끝까지 노래하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1월31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