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쌍둥이 아이를 키우는 악전고투를 실감나게 그려내며 기발한 반전의 묘미를 담아냈지만 행복의 공식에 상처를 내지는 않았다. 아무리 홍승우씨가 <비빔툰>에서 착한 아이에 대한 환상을 깨며 엽기적 행각을 담아내고, 정연식씨가 푸들 강아지 ‘또디’를 내세워 예사롭지 않은 웃음을 버무려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흔히 떠올리는 가정 드라마에 2%의 갈증을 채우는 만화적 상상력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 셈이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팬옵티콘’에 가둬
이런 의미에서 신예 만화가 김경일씨의 <요괴의 집>(현실문화연구 펴냄)은 가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만화의 힘을 느끼게 한다. 일상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SF와 판타지, 액션 등의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특유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공동의 삶을 거부하고 돈독이 오른 인간들의 탐욕과 부모들의 광적인 교육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횡포 등을 네 편의 스토리에 저마다의 색깔로 그렸다. 또 이를 익숙한 동화와 만화적 패러디라는 이중의 장치로 매끈하게 담아냈다. 마치 영화 <헨젤과 그레텔>이 아동 학대와 모친 살해라는 잔혹한 텍스트를 그림형제의 동명 동화를 모티브로 삼아 미스터리와 공포로 비튼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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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일씨는 동화와 우화를 모티브로 삼아 가정과 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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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김경일씨도 그림형제의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같은 제목의 만화로 담아냈다. 어느 마을에 나타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사례금을 믿고 쥐떼를 몰아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마을 아이들을 이끌고 호수 속으로 사라진다는 동화의 줄거리를 작가는 모든 것이 통제되는 ‘에듀케이션 시티’의 현대판 맹모들에게 적용한다. 여기에서 호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용 카메라로 통제하는 어른들이다. ‘대치동 엄마’로 상징되는 입시 교육에 일침을 가하는 스토리이다. 동화의 섬뜩하고 오싹한 장면에 통쾌한 상상력이 더해져 현실을 파고드는 셈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살피고 싶은 마음은 한이 없겠지요. 언젠가 아이를 맡긴 어린이집에 갔더니 집에서 보던 아이들 모습과는 다르더군요. 치고 박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사무실에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어요.” 여기에서 작가는 얄궂은 바람을 만화로 드러내지 않았다. 극한으로 치닫는 부모의 욕망을 유비쿼터스 사회에 적용해 아이들을 원형 감옥인 ‘팬옵티콘’에 가두는 식으로 표현했다. 물론 부모의 과도한 보호 본능과 교육열에 대한 풍자다. ‘심판’을 통해 어른 없는 세상에 다다른 아이들. 그들만의 세상이라 해도 또 다른 욕망의 싹은 자라나게 마련이다.
이런 작가의 묵직한 주제 의식은 그림에도 오롯이 살아 있다. 등장인물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음은 물론이고 한순간도 멈춰서 있지 않는 듯하다. 한 신문사에서 미술기자로 일하며 일러스트레이션과 캐리커처 등을 그리기에 인물의 ‘꼬인 심리’까지 파악하는 재주가 남다르다. 게다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해 데생이나 색감, 화면 연출 등의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제가 보고 싶은 만화를 그린 것인지도 몰라요. 나름의 주제 의식에서 나오는 강렬한 표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끔찍한 장면도 더러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만큼 잔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정도 천편일률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그동안 생활만화는 캐릭터를 통해 재미를 추구하는 식이었다. 이에 견줘 김경일씨의 <요괴의 집>은 강한 스토리를 중심으로 가정과 사회에 대해 발언한다. 물론 작가가 분명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예컨대 황금알을 낳는 오리를 삼킨 아들의 배를 가르는 아빠는 ‘잔혹 만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배를 가르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아빠 아니야”라며 도망치는 아이의 절규에 있으리라. 한순간의 웃음으로 <요괴의 집>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몰랐던 만화의 감동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만화로 가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김경일씨의 도전은 지속될 예정이다. 이미 동화와 우화 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한 <호롱불> 같은 작품이 나왔지만 김씨의 작품은 선명한 주제 의식과 색다른 스타일로 동화 패러디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 과정에서 생활만화의 지평도 넓어질 게 틀림없다.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는 만화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만화적인 재미와 선명한 주제 의식으로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고 싶어요. 다양한 가정의 모습이 있듯이 만화가 다루는 가정도 천편일률적 시각에서 벗어나야겠지요. 다음 작품에선 욕심을 덜어내고 절제된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