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시완 음악평론가·(주)아트뮤직, 시완레코드(주) 대표

1970년대 군부독재 시대, 우리가 참으로 못살던 그때, 필자가 중·고등학생이던 그 시절은 음반을 수집한다는 것이 매우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라디오의 음악만이 음악의 전부인 줄 알고 산 우물 안 개구리 시절이었다.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선 펜팔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필자도 영어실력이나 닦아볼까 해서 펜팔을 열심히 했지만 미국보다는 유럽의 친구들과 교류를 많이 했다. 결국 그것은 인생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너희 나라에도 축구팀이 있냐?”는 스웨덴 친구의 쇼킹한 질문을 시작으로 해서, 영미 팝송만 듣고 유럽 음악은 칸초네와 샹송이 전부인 줄 알던 필자에게 유럽의 친구들이 보내준 록음악들은 알 수 없는 언어와 더불어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실로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자 신선한 경험이었다.

펜팔로 알게 된 미지의 음악

어린 시절부터 방송국 DJ가 되는 게 꿈이었던 필자는 통행금지가 해제된 뒤 문화방송 FM이 주최한 ‘제1회 전국 대학생 DJ 콘테스트’에서 수상하고 새벽 1시대의 DJ로 발탁됐다. 여기서 기존 방송에서 들을 수 없는 유럽의 록음악, 1시간에 서너 곡만 소개할 수 있는 긴 곡, 이른바 프로그레시브록과 아트록이란 생소한 장르의 음악과 월드뮤직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 국내에서 만나기 어려운 아트록 공연이 찾아온다. 이탈리아 그룹 P.F.M의 무대는 클래식과 록의 이종교배가 어떤 감동을 만드는지 가르쳐줄 것이다.(사진/ LG아트센터 제공)

오늘날 유명해진 뉴트롤스와 5월9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내한공연 예정인 P.F.M의 음악도 1980년대 초반의 심야에 미지의 이름으로 처음 소개됐다.

아트록과 프로그레시브록을 한마디로 정의하긴 쉽지 않다. 25년 전 <월간팝송>에 “프로그레시브록은 새벽 안개와 같은 것”이라고 기고한 적이 있다. 대중음악 중 가장 클래식에 가깝고, 포크와 재즈, 블루스를 비롯해 아방가르드에 이르기까지 전 장르와 접목되면서 독특한 결정체를 만들어내며, 모든 음악을 포용하지만 아무나 쉽게 손댈 수 없는 음악이기도 하다. <롤링스톤>의 ‘록&롤 백과사전’에서는 프로그레시브록을 “유럽의 클래식을 모티브로 오케스트레이션과 전형적인 확장 형식, 복잡하고 난해한 여러 조곡 형식을 취하고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는 록의 한 부류로 종종 아트록으로 불린다”고 정의한다. 60년대 당시로서는 앞서가는 음악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진보적인 록으로 불렸지만, 역설적으로 중세시대의 악기들을 도입하거나 클래식을 그대로 차용하기도 한다.

아트록은 60년대 사회적 배경과 나란히 한다. 50년대 중반, 미국에서 태동한 로큰롤이 영국으로 건너간 뒤, 60년대부터 록은 좀더 구체적인 형태로 발전해갔다. 60년대 중반, 순수예술을 공부하던 영국의 예술학교 학생들은 라디오와 학교 주변의 클럽과 선술집을 통해 록에 자연스럽게 심취하게 됐는데, 이들은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았던 부모들과 달리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된 전후 세대들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여유가 있었다. 그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순수예술보다는 현실세계와 환경에 더욱 큰 지배를 받았다. 그들의 사회적·문화적 관심은 평화, 반핵운동, 자유, 마약, 비트문학, 재즈, 블루스, 록 등에 있었으며 그들의 부모 세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보수적인 부모들의 강한 반대에도 순수예술을 포기하고 대중 뮤지션으로 진로를 바꾸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들이 순수예술과 록을 자연스럽게 접목하는 시도를 하면서 아트록이 등장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음악만이 아니라 건축, 미술, 문학, 디자인 등 다방면의 학생들에게도 일어났다. 간략히 정의하자면 록에 미학(Aesthetics)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트록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최초의 프로그레시브록 그룹을 찾자면 어떤 문헌에도 그렇게 소개된 적은 없지만 팝계에서 가장 앞서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시도를 했던 그룹 비틀스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역량으로 비틀스 중·후반기 작품(대표적으로 (1966))에 스트링, 테이프 이펙트, 구상처리(Concrete Music) 등이 시도됐고, 당시 유행하던 동양철학과 동양악기가 도입됐다. 그 뒤 무디 블루스가 1967년에 발표한 3집 가 심포니에서 비롯된 조곡 형식을 수용하면서 프로그레시브록 음반의 효시로 자리를 굳힌다. 그러나 가장 완벽한 프로그레시브록 음반은 로버트 프립 선생이 결성한 킹크림슨의 데뷔 음반 <진홍왕의 궁전 안에서>(In The Court of Crimson King, 1969)이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가사와 함께 잘 알려진 라는 명곡을 담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프로그레시브록=핑크 플로이드’라고 쉽게 연상하듯 가장 성공한 팀은 역시 핑크 플로이드이다. (1973)이 2500만 장, (1979)이 1700만 장 이상 판매된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들 외에도 제너시스, 젠틀 자이언트, 예스, 나이스 등이 대표적인 밴드다.

프레미아타 포르네리아 마르코니, 뜻이 뭐야?

그렇다면 국내에도 프로그레시브록 밴드가 있는가? 이 질문은 오랜 세월 동안 전세계의 음악들을 소개해왔던 나에게는 가슴속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과제이기도 했다. 10년 전, 조윤의 음반 을 제작하면서 국내 최초의 완벽한 프로그레시브록 음반이라고 내놓았지만 그 작품에 대한 평가는 여러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1981년에 발표된 동서남북의 음반 를 대한민국 프로그레시브록의 효시로 뽑기도 한다. 1987년 작은하늘의 <은빛호수>를 거쳐 199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윤을 비롯해 조한웅, 이창식, 한의수, 이승태(Horizon) 등의 뮤지션들이 활동해왔다.

△ 한국에도 프로그레시브록 음악인이 있다. 동서남북의 초판과 재발매 앨범, 조윤의 (왼쪽부터)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유럽은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트록의 음반명, 곡명은 각국 사전을 뒤적거려야만 간신히 파악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언어에 약했던 나는 낯선 단어들을 만나면서 언어학자의 호기심을 느끼게 됐다. 독일 그룹 발렌슈타인(Wallenstein)은 30년전쟁 당시의 장군 이름이고, 일 볼로(Il Volo)는 ‘비행’, 그라나다(Granada)는 ‘석류’였다. 하지만 좀처럼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이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팀이 P.F.M(Premiata Forneria Marconi)이었다. ‘프레미아타 포르네리아 마르코니’라는 정체불명의 이탈리아 그룹을 소개하려니 난감했다. 참고자료라곤 달랑 사전 하나뿐이었다. Premiata는 ‘상을 받다’, Forneria는 ‘Fornaio=빵집’, Marconi는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라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무선전신의 발명가다. 세 단어를 이리저리 조합해도 의미가 알쏭달쏭했다. 결국, 끙끙 앓다가 중간의 단어를 배제하고 “무선전신의 선구자 마르코니를 기린 이름을 지닌 이탈리아 그룹”이라고 소개하고 말았다. 한국 청년 DJ에 의해서 밀라노 근교의 작은 마을 브레시아노에 있는 오래된 빵집 ‘파스티체리아 마르코니’(Pasticceria Marconi)에서 딴 이들의 이름이 본의 아니게 발명가의 이름으로 탈바꿈하는 우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일은 올바른 정보를 알려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 진보성을 프로그레시브록의 전제조건으로 삼는다면 비틀스에서도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중·후반기작에서 다양한 소리 실험이 이뤄졌다.(사진/AP 연합)

P.F.M은 이탈리아 본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성공한 그룹이다. 그들은 데뷔 음반(1972년 1월 발매) 한 장으로 당시 미국·영국 음악 숭배에 급급하던 이탈리아의 음악시장을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했고, 록의 종주국 영국과 미국에도 진출이 가능하리라 여겨질 정도로 높이 평가받았다. 1972년 초, 그들의 데뷔 음반 (스토리아 디 운 미누토·사소한 이야기)가 레코드 상점의 진열장에 놓이자 음악 평론가들과 애호가들은 그들이 이탈리안 록을 이끌어갈 새로운 주역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대표곡이 된 (임프레시오니 디 세템브레·9월의 감상)가 연주됐을 때는 모든 청중이 그 음악에 사로잡혔다. 그 뒤 이 곡은 항상 앙코르를 받는 명곡이 됐으며 이번 한국 공연에서도 들려줄 것이다. 두 번째 음반 (페르 운 아미코·한 친구를 위하여, 1972년 10월?) 또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킹크림슨의 작사가 피트 신필드가 이들에 매료되어 영국 시장 진출을 도와주고 영어 가사를 작사해준다. 이후 런던에서 녹음한 새 음반 (리솔라 디 니엔테·공허의 섬, 1974)이 발표됐다.

미국 휩쓴 피자록, 숨겨진 별이 온다

유럽 뮤지션에게 미국은 큰 시장이다. 여기서의 성공이 곧 국제적인 성공을 의미한다. 피터 신필드는 미 대륙 진출을 위한 비장의 무기로 의 영어 번역판 를 제작했고, P.F.M은 이 음반과 함께 캐나다와 미국 순회 공연을 2년간 진행했다. 미국 언론은 야채와 태양, 소피아 로렌까지 들먹이며 그들을 피자록, 스파게티록이라고 소개했으며, 필자처럼 호기심을 일으키는 그룹명에 대한 이야기로 지면의 대부분을 낭비했다. 급기야 그들의 음반은 100만 장이 팔리면서 미국 팝차트에 진입한다.

△ 가장 널리 알려진 프로그레시브록 그룹은 ‘핑크 플로이드’이다. 대표작 (1973)은 2500만 장 이상 팔렸다.(사진/ 연합)

지난 20여 년간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만났던 헤아릴 수 없는 음악들. 필자는 이 음악들을 우주의 무수한 별들로 비유하기를 즐긴다. 무한한 공간에 꼭꼭 숨어 있는 별들이나 혜성들을 찾아다니는 천문학자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밤만 되면 망원경을 들고 하늘로 향하는 스타게이저(Stargazer)로서, 아직도 이 우주에 지구와 태양 그리고 달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먼지에 불과하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다. 이제 희미하게 빛나고 있던, 숨겨진 별들이 우리를 찾는다. 그들의 모습은 전성기였던 30여 년 전처럼 밝지는 않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늦은 감은 있지만 혜성처럼 우리 곁으로 다가와 반갑기만 하다. 그룹명으로 괴롭혔던, 말로만 듣던, 음반으로만 접했던 P.F.M. 그들이 드디어 한국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