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 유럽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금세기 현대 유럽철학은
각기 나름의 방법으로 새로운 인식 양식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현대 유럽철학의 흐름>(리처드 커니 지음, 한울 펴냄)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언제 어디서나 자기소개서의 취미 항목에 ‘독서’라고 적으면서도 자괴감이 든 적이 없다. 나는 ‘취미’ 따위를 가지고 반성할 만큼 부지런하지 못하다. 그런데 얼마 전 내 책꽂이를 둘러보면서 책 대부분이 개론서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자괴감에 빠지고 말았다. 개론서가 내게 끼친 극악무도한 해악이 있었으니 한 권을 읽으면 다른 책들을 찾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 유럽철학의 흐름>의 ‘단점’은 너무 꼼꼼히 정리해놓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뒤 나는 술자리마다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 계몽 유럽의 이상과, 폐허에서 시작한 철학자들의 세 가지 모험을 떠들어댔다. 오늘 이 낡은 책의 표지 앞에서 나는 부끄럽다. 이 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했다. 개론서는 ‘여기서부터’지 ‘여기까지’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