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문화&과학 > 문화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7월13일 제568호
[영화] 열흘간 엽기적일 예정입니다

‘리얼판타스틱영화제 2005’ 공포·스릴러·미스테리 퀄리티 보장!
지적인 에로물부터 철학적 좀비영화까지 모두 기이하도다

▣ 이영진/ <씨네21> 기자

해마다 찾던 피서지. 어서 씽씽 달려 시원한 바닷가에 닿았으면 좋으련만. 올해는 사람 헛갈리게 길이 하나 더 늘어났다고 이정표 앞에서 툴툴대실 분이 있을 겁니다. 어디로 가야 더 빨리 목적지에 닿을 수 있나.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어서 빨리 스트레스 벗고 싶은데, 괜한 걱정을 안겨드리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먼저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제 이름은 ‘리얼판타스틱영화제 2005’입니다. 7월14일 서울시 인사동에 위치한 필름포럼이라는 극장에서 태어날 예정이고, 23일까지 열흘 동안만 제 엽기적이고 기이한 모습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부천에서도 같은 날 저랑 비슷한 형제가 태어난다고요? 아. 올해로 아홉 번째 열리는 ‘부천국제영화제’ 말씀이시군요. 오해입니다. 다시 전하지만, 그쪽과 우리랑은 콩 한쪽 나누지 않았습니다.

동구권 SF 특별전… 60여편 대기 중

제가 태어날 수 있도록 옆에서 산파 역할을 하신 김홍준 감독과 9명의 스태프들은, 앞으로 부천쪽으로 오줌도 누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맞는 말입니다. 흥부가 놀부와 화해하는 건 허구 속에서나 가능한 것 아닙니까. 긴 말 않겠습니다. 콘서트 보실 분들은 부천 가시고, 영화 보실 분들은 저한테 오십시오. 푹푹 찌는 여름을 공포로 잊고, 스릴러로 식히고, 미스테리로 요리하던 광(狂)들은 그야말로 환영입니다.

도대체 뭘 가졌기에 그렇게 큰소리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털어놓겠습니다. 가진 거라곤 상영작 60여편이 전부입니다. 부천 놀부네에서 상영하는 270여편의 상영작에 비하면 턱도 없지요.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잖습니까. 제 입으로 말하기 뭣해도 퀄리티만큼은 보장합니다. 겉으로 보면 객기 부려 한달 만에 뚝딱 만들어낸 생명 같지만, 저를 만든 분들 꽤 베테랑이거든요. 지난 8년 동안 해외 영화제 돌 만큼 돌았습니다. 돌면서 든든한 사람, 풍성한 영화 만났습니다. 그렇게 쌓은 인연들이 어디 가겠습니까. 놀부네에서 쫓겨났지만 빈손 아니었습니다. 해외에선 힘내라는 응원이 연일 날아들었지요.


△ “지금 부천에 가면 복잡한 이정표 앞에서 거리를 헤맬 수도 있답니다. 그럴 때 ‘리얼’을 따라가면 당신의 영화에 대한 안목을 확실하게 넓혀줄 것입니다.”영화제 공식 포스터(왼쪽)와 영화 <사치코의 화려한 생애>의 한 장면.

‘마르크스 침공!!! 동구권 SF영화 특별전’이 좋은 예일 겁니다. 사실 이건 부천 놀부네 집에 있을 때 마련하려고 했던 것인데,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포기했던 겁니다. 그런데 쫓겨났다는 소식을 바다 건너 들은 해외 응원군들이 의기투합해서 개막작으로 선정한 최초의 소비에트 공상과학(SF) 영화 <아엘리타>와 함께 희귀 영화 13편을 흔쾌히 보자기에 싸서 보냈더군요. 화성을 배경으로 전체주의 체제를 비판한 <아엘리타>, DVD로 나온 거 아니냐고요? 빙고. 그러나 반만 빙고입니다. 프린트로 보는 기회 흔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번엔 인디 음악에서 꽤나 이름 높으신 송현주 교수가 직접 작곡한 음악이 덧입혀질 것입니다. 아. 이거 하나 알아두십시오. 축제의 시작을 기뻐하는 건 좋겠지만, 음주가무는 금물입니다.

참고로 이 섹션에선 핵전쟁 이후 폐허의 시대를 배경으로 인류 문명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오존 호텔에서의 8월 말>, 남자들이 키스하면 여자들이 힘 못 쓰고 쓰러진다는 황당한 설정에 촌스러운 MTV식 기법을 더한 <섹스미션>,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비주얼과 사운드를 적절히 결합한 <우주 끝으로의 여행>, 모든 구상을 물질화할 수 있는 아마추어 SF 소설가와 그로 인해 지구를 방문하게 된 3명의 외계인의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린 <은하에서 온 방문자들>, 동유럽산 SF영화의 고전이라 불리는 <고요한 행성>, 노동자 해방이라는 메시지가 싸구려 은색 세트 위에서 빛나는 <성운 속에서> 등은 만남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되는 제 친구들입니다.

여기서 만족하실 분들은 물론 없겠죠. ‘판타스틱 영화세상’ 섹션에서 선보이는 15편의 영화는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동시대 친구들입니다. 얌전한 영화들이 지겹다면, 먼저 <사치코의 화려한 생애>를 추천합니다. 데카르트, 놈 촘스키, 수잔 손탁이 언급되는 에로영화를 보셨나요. 숨가쁜 섹스 도중에도 잊지 않고 이라크 전쟁에 대한 조롱을 날리는 발칙한 놈입니다. <노는 회사 라이엇!>은 거대기업을 상대로 2천만달러를 빼돌린 희대의 사기꾼들에 대한 실제 기록인데, 핀란드에서 날아온 <범죄의 재구성>이라 여기면 될 친구이죠. 잉마르 베리만의 <7개의 봉인>에 버금가는 걸작 포르노를 만들겠다는 남자의 야심을 그린 <토레몰리노스73>, 죽은 자들이 되살아나 산 자들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철학적 좀비영화 <돌아온 사람들>, <미저리>를 연상시키는 <죽을 고생>, <큐브>의 감독 빈센조 나탈리의 신작 <빈센조 나탈리의 휑>, 청력을 잃은 DJ의 고군분투기 등도 사귀길 강추합니다.

<시계태엽장치오렌지> 등 놓치면 후회

지난 1년 동안 한국 장르영화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혈의 누> <달콤한 인생> <귀여워> 등 7편의 한국영화 모듬섹션인 ‘코리안 판타지’, 짧은 호흡, 긴 환상으로 여러분을 안내할 24편의 단편 모듬 ‘짧지만 판타스틱’, 백범 김구 선생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1930, 40년대 기록영화 복원 상영으로도 양이 안 차신 욕심 많은 관객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깜짝 소개팅이죠. 국내에서 필름으로 상영된 적 없는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장치오렌지>와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니콜 키드먼 주연의 <환생> 등 국내 미개봉작의 상영이 영화제 기간 도중 있을 예정입니다. 혹시 주머니에 여유가 가득한 분들, 저희가 마련한 온라인 보금자리(www.realfanta.org)로 입장해서 후원의 뜻을 더하시는 것 나쁘지 않습니다. 푼돈 모아 스크린에서 꿈을 사고 싶어하는 이들의 함성이 줄을 잇고 있거든요. 그게 정 힘드시다고요. 그럼, 그냥 극장에 달려오십시오. 그것만으로 저희의 기쁨입니다. 단, 입장료는 내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