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춤꾼들이 차고 넘친다. 라이브 클럽이나 야외 공원 등지를 떠도는 이들도 있고 철밥통 춤꾼들의 자리에 미련을 버린 이들도 있다. 매혹적인 춤사위로 ‘값비싼’ 감동을 자아내는 화려한 무대 저편에서 나름의 무늬와 빛깔을 보여주는 춤꾼들. 이들의 무대엔 객석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티켓 ‘강매’를 서슴지 않는 관행이 있을 리 없다. 전통적인 춤의 생산과 유통방식에서 벗어난 데서 나오는 자유로움이 유유히 흐를 뿐이다. 춤사위에 패러디와 풍자를 담고 관객과의 소통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은 변방의 ‘인디 댄서’일 뿐일까.

△ '춤추는 거미' 를 만드는 거미가족들은 춤의 대중화를 화두로 삼았다. 편집장 이희나씨(왼쪽)와 칼럼니스트 황희정씨. (사진 / 김수병 기자)

동문·동문·동문… 구태의연한 춤판

기껏해야 ‘독립예술제’에서나 주목받던 인디 댄서들의 출발은 서러웠다. 1990년대 중반 무용 전공자들은 갈 곳이 없었다. 대학에 무용과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졸업을 해도 일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자유롭게 창작활동에 매진하기도 힘들었다. 신세대 춤꾼들은 학교와 극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새로운 진지를 구축했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댄스가수에 열광하는 대중매체에는 다소 무거워 보였고, 고결한 무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춤전문지에는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이렇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 같았던 인디 댄서들을 주목한 이들이 있다. 춤 전문 웹진 ‘춤추는 거미’(www.dancingspider.co.kr)를 창간한 ‘거미가족’이다. 이들도 인디이기는 마찬가지다. 변변한 사무실조차 없이 매주 월요일에 한 차례 만날 뿐이다. 창간호 관련 비용도 동호회 회비 30여만원으로 충당했다. 웹디자인이나 사진 등은 주변 사람들의 자원봉사로 해결했다. 춤이라는 장르 자체가 대중적인 관심을 끌지 못하는 상황에서 춤과 더불어 사는 사람 역시 ‘태생적 인디’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국의 인디 댄스’가 창간호 특집(댄싱 스파이더)이 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국내에서 춤은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동문’이라는 틀 밖에서 무대에 오르기는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 까다롭다. ‘춤추는 거미’는 기성 춤계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신선한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편집장 이희나씨는 “대중과 소통하는 웹진을 만들려고 한다. 무대 무용은 물론 대중적 춤까지 포괄하는 공론의 장을 기대해도 좋다”고 말한다.

현재 ‘춤추는 거미’에는 거미가족 네 사람과 도우미 구실을 하는 거미이웃들이 있다. 이들이 기존의 춤계에 대한 저항적 기질로 똘똘 뭉친 것은 아니다. 춤 관련 대학원 과정에서 만난 거미가족의 화두는 ‘춤의 대중화’다. 이들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나 유니버설 발레단 등에 열광하는 관객들이 인디 댄스의 폭을 넓히는 창작춤 집단 ‘가관’이나 ‘통자루 무용단’을 기억하고, 수석 발레리나 강수진만 기다릴 게 아니라 인디 댄서 김민정을 주목할 것을 권한다. 그래야만 춤추는 민족으로서 춤을 우리 삶 속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춤 교육 실현에도 기여하고 싶다. 어려서부터 춤을 문화로 접하도록 음악이나 미술처럼 교과과정에 들어가도록 하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황희정씨의 이런 야무진 바람은 춤추는 거미에서 곧바로 읽을 수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토슈즈를 만든 ‘미투리’의 추억과 꿈을 접하고, 댄스 사이언스를 전공하는 김리나(빨간 망토 차차)가 지도하는 ‘아름다운 배 만들기’를 따라 할 수 있다. 거미가 가늘지만 강력한 그물을 엮어가듯, 춤에 대한 열정으로 다른 춤을 묶어가려는 춤추는 거미를 기대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