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혜련/ 동화 연구가

변화의 바람에 느리게 다가섰던 우리의 동화 시장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가부장제의 그늘에 가려 금기시됐던 다양한 주제들이 보인다. 체질 변화가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어린이 위인전’이다. 남성 위주의 관점에서 선정된 여성 위인전에서 벗어나 여성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 등장한다. 아이세움에서 나온 <여성 인물 이야기> 시리즈는 최초의 여자 변호사 이태영부터 여기자 최은희, 여성참정권 운동가 수잔B. 앤터니 등 가부장제 사회에 도전하고 투쟁해온 여성 위인의 삶을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페트라 켈리의 업적을 다룬 <녹색 세상을 꿈꾼 여성정치가 페트라 켈리>(홍당무 지음·파란자전거)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평화와 공존의 꿈을 갖게 해준다.

고정된 성역할에서 탈피해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들 모두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아빠 사자와 행복한 아이들>(야노쉬·시공주니어)을 읽어보자. 회사 사장인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는 아이들의 꿈을 하나씩 찾아주며 ‘행복하게(!)’ 가정을 돌본다. 최근에 출간된 우리 창작동화 <아빠의 앞치마>(이규희·교학사)도 이와 비슷한 색채로 경쾌하다. 이혼율이 높아가고 그로 인해 편부 편모의 가정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혼을 이야기하는 많은 동화들은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혼’을 어두운 것으로 기억하게 한다. 배빗 콜의 <따로 따로 행복하게>(보림)와 <코코, 네 잘못이 아니야>(친구미디어)는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분히 이해시키는 동화이다. <너도 하늘말나리야>(이금이·푸른책들)는 이혼한 여성의 문제, 어머니의 문제를 진지한 자세로 이야기한 작품이다. 어른과 아이들이 가슴을 맞대고 고민을 나누어볼 수 있는 수작이다. <나는 김이박 현후>(오시은·푸른책들)는 호주제의 폐허를 아이의 눈으로 가슴 아프게 조명한 작품이다. 재혼한 엄마의 가정에서 ‘동거인’으로 살아야 하는 현후의 내면 갈등을 통해 재혼 가정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아이들에겐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