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방치된 서울 목동 ‘예술인회관’ 부활 프로젝트… 죽은 공간을 예술인들의 오아시스로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사비나 미술관에 전시된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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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20층 지하 5층 꿈의 예술공간! 예술인회관 1차 임대분양 안내
목동 전철역 3분 거리, 천혜의 예술 요충지! 선착순 300명 1차 접수!
지금! 모든 예술인을 대상으로 작업공간을 나눠드립니다
1차 분양 신청서 접수: 7월15일까지
사업자 설명회: 7월12일 오후 2시 쌈지스튜디오 401호
모델하우스 방문: 7월17일 오후 2시 예술인회관 집결
입주 예정일: 8월15일(입주를 위한 페스티벌과 입주식)
평형: 10~20평형(작업 유형에 따라 연동됨)
임대 및 분양가: 품앗이 2~3회
건물 상태: 53% 공정률. 외관은 매우 견고하나 칸막이 작업 개인 부담 필요
리모델링 회사: 공간재생 전문회사 오아시스 프로젝트
난방 방식: 지역난방 각개전투 난방(여름에 시원하며 겨울엔 추워요)
특장점: 초고층 와일드 액션형 터프 작업실, 최첨단 탈장르·전위적 작품활동 가능 설계
신청서 제출방법: 사비나미술관을 방문해 신청서 작성 후 제출 또는 오아시스 웹사이트(www.squartist.org)에서 신청서 양식을 내려받아
이메일(paintkyh@hanmail.net)로 발송”
작가 김윤환, 예술가 입주 프로그램 제안
작업 공간이 없어 쩔쩔매는 예술가들의 귀를 뻥 뚫어줄 소식이 들려왔다. 미술정보웹진 네오룩닷컴, 민예총에서 내는 <월간 민족예술>, 문화연대 소식지 등에 작업실 임대 분양 광고가 실린 것이다. 광고를 낸 작가 김윤환(39)씨는 ‘자본의 사막을 가로질러 예술가들 스스로 자유롭게 창작하고 소통하자’는 의미로 이 사업을 ‘오아시스 프로젝트’라 이름지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리얼링 15년’전(8월6일까지, 02-736-4371)에 초대돼 전시 중이다.
2001년 프랑스로 건너가 작품활동을 하던 김윤환씨가 ‘스쾃’이라고 불리는 점거 아틀리에의 맛을 알게 된 건 1년여 전부터다. 본래 은행 건물이던 곳을 예술가들이 점거해 ‘국가적 지원’까지 받고 있는 스쾃 ‘알터나시옹’에서 머물며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을 만났다. 예술가 특유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고집하면서도 소통·교류엔 마음을 한껏 여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김씨는 “예술이 어떻게 현실참여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지, 평화주의적인 아나키즘이란 무엇인지를 배우고 돌아왔다”고 전한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같은 ‘삶과 예술의 자율적 공동체’를 꿈꿨던 김씨는 올해 초 5년째 공사가 중단된 채 빈집으로 남아 있는 목동 예술인회관을 주목했다. ‘예술인회관’사업은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씨가 예술인들을 위한 공약사항으로 내걸었던 것으로 당선 이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예총)에 이 사업을 일임하면서 사실상 ‘예총회관’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 도심의 고층 건물 사이에서 낡아가고 있는 서울 목동의 예술인회관(왼쪽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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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총은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예총회관을 국가(문화예술진흥원)에 기부채납하는 방식으로 105억원을 받은 뒤 이 돈으로 목동의 방송회관 옆 터를 사들였다. 땅만 있고 쥔 돈은 없었으나 예총은 용감했다. 모자란 건축비는 임대료를 뽑아 충당하겠다는 구상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구제금융기를 겪으면서 난관에 부닥쳤다. 시공회사가 부도나고 임대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공사가 중단된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공사비로 165억여원을 쏟아붓은 데 이어 지난해는 공사 재개를 위해 50억원을 추가로 교부했다. 예총은 2003년 8월 부족한 자금을 임대사업을 통해 충당한다는 명분으로 연면적 2230평을 늘려 오피스텔과 운동 공간 등의 임대 면적을 증가시키겠다는 사업계획 변경서를 제출해 같은 해 9월1일 설계 변경 허가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후 예총 간부들이 건설회사에서 뇌물을 받은 사실이 폭로되면서 공사는 다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올해 1월26일 문화관광부는 사업 추진 방향을 결정해 통보할 때까지 사업 추진을 미루라는 공문을 보냈다. 비리와 특혜 의혹이 끊이질 않자 올해 초 감사원은 예술인회관에 대한 총체적인 감사를 시작했으며, 현재 감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무지한 정부, 밀실행정의 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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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26일 예술인회관 답사 이벤트 '숨바꼭질'에 참가한 작가들이 건물에 남겨놓은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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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예술인회관이 설사 완공된다 하더라도 현재 예총의 계획대라면 이는 역시 예술가들을 소외시키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1만4094평 가운데 절반이 넘는 7767평이 오피스텔 등 임대 공간으로 사용되며, 1~9개층엔 예총 산하단체 사무실과 공연장·전시공간이 들어선다. 즉, 현재 대학로의 예총회관을 그대로 박아넣고 문화와 관련된 부대시설을 추가한 뒤 나머지를 임대 공간으로 사용한다면 나랏돈 215억여원을 사용한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예술인회관을 “정부의 무지한 예술정책과 예술단체의 밀실행정이 탄생시킨 ‘공간과 예술의 죽음’”이라고 비판한다. 도심 한복판의 죽어버린 공간을 예술가들의 에너지와 상상력으로 재생시키기 위해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예술가 입주 프로그램’을 제안한 것이다. 예술가들의 직접적 행동을 통해 예술인회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공론화하겠다는 것이다. 김윤환씨는 이에 대해 “행동주의 미학을 드러내는 예술적 표현”이라고 가치를 부여한다. “문화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하는 자본의 논리를 비판하고 예술 창작과 소통의 공간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기 위한 예술행동이다.” 김윤환씨를 비롯해 이 사업에 참여한 노순택·안해룡(이상 사진가)·이병한(심스페이스 대표)·용해숙·조영아·윤여관·조영아·김진경·시락(이상 작가)·이원재(문화운동가)·송수연(문화기획가)씨 등은 이 프로젝트가 잘못된 예술정책에 대한 ‘저항의 몸짓’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창작 공간을 얻어낼 수 있도록 작가들 스스로 힘을 뭉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120여명의 작가가 입주신청서를 낸 상태다.
이들의 발칙한 도발에 예총이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예총은 6월24일 오아시스 프로젝트쪽에 공문을 보내 “분양 광고를 즉시 중지하고 예총에 사과문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튿날인 25일엔 서울경찰청에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사기분양·무단침입 혐의로 고발했다. 예술인회관건립본부 추승영 감독은 “예술인회관은 준공 허가가 안 난 불법 건물이어서 법적으로 전기 공급도 안 되고 인테리어는 물론 칸막이 공사도 전혀 없는 허허벌판 건물인데 스튜디오란 가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법률 상담을 맡기로 한 이상희 변호사는 “임대 분양 광고를 냈지만 돈을 받고 분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기 분양은 성립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무단 침입인데 버려진 것과 마찬가지인 건물에 들어가서 창작을 하겠다는 것이 소유권을 얼마나 침해하는 일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단 이 문제는 소유권과 예술의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이 될 것이다” 이 변호사는 “한발 더 나아가 예총과의 싸움은 시민사회에서 합의를 통해 공공적 장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오아시스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예술인회관 곳곳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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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원정책을 진일보시키자”
미술평론가 박신의(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과 교수)씨는 “어떻게 예술인이 또 다른 예술인을 고발할 수 있는가.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저항의 표현이자 의견이다”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또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우리나라의 스튜디오 지원정책을 진일보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일찍이 스쾃이 뿌리내린 프랑스만 해도 갖가지 스튜디오 지원정책이 마련돼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작가 지원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민이 주거의 권리를 가진 것처럼 작가도 작업실을 가질 권리가 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작가의 활동을 개인의 노동이자 ‘사회적 활동’으로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행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