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조차 자립적인 여자, 슈코의 생존게임 <메트레스 연인>
이성욱/ <씨네21> 기자 lewook@hani.co.kr
문화방송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명세빈은 기자 직에서 해고돼 좌절감에 빠지더니 자기 주위를 맴도는 남자들 사이에서 고민한다. ‘결혼해버려!’와 ‘일에서 성공해!’라는 친구들의 엇갈린 주문 사이에서 잠시 방황하더니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을 택한다. 일에서 성공해 독립된 여성으로 살자. 이건 너무 익숙해진 구호가 돼버렸지만 이를 실천하기란 여전히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메트레스 연인>의 카타기리 슈코(카와시마 나오미)도 비슷한 종류의 고민에 빠져들고, 비슷한 선택에 다다른다. TV와 영화의 차이이기도 하겠지만, 명세빈과 달리 슈코는 섹스를 즐긴다. 하필 그 상대가 유부남이니 말하자면 불륜 드라마다. <메트레스 연인>의 원작자가 <실락원>의 와타나베 준이치이니 놀랄 일도 아니다.
또 기자를 전문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슈코는 긴자 거리의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소몰리에(와인 전문가)로 인정받는 프로페셔널이다. 손님에게 최고의 ‘마리아주’(멋진 결혼이란 뜻으로 와인과 요리의 절묘한 배합)를 제안하는 것이 그의 주요 업무. 슈코의 직업에서 드러나듯 <메트레스 연인>의 ‘취향’은 다분히 프랑스적이다. 슈코는 레스토랑에서 자신을 당당히 ‘메트레스’(maitresse)로 소개하는 프랑스 커플을 만나면서 자기 삶의 실마리를 찾는다. 메트레스는 정부(情婦)와 동의어이지만, 자립적으로 일을 해나가면서 다른 남자와 연인 관계를 맺는 여자라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 슈코는 유부남 애인이 자신의 집에 기거하려는 것조차 ‘나만의 공간을 침해받기 싫어서’ 거절한다. 슈코의 입장에선 애인에 대한 애정과 차원이 다른 개념이건만 남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메트레스 연인>은 깔끔하긴 하나 영화적 재미라는 면에서 맥 빠지는 작품이다. 주제의식이 분명한 베스트극장이랄까. 원작자에게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여기선 20대 혹은 30대의 멋진 여성이 아닌 중년 여성들이 앞다퉈 등장한다. 슈코의 친구들은 이미 두서너명의 자녀를 가지고 있거나 자녀 있는 남자와 재혼하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중년의 나이이지만 아직 20대 여성 못지않은 외모로 섹스를 즐기는 슈코와 그 주변 이야기라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여자는 섹스를… 그러나 남자는 사랑을 원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가정이 있는 대학교수 토노 슈헤이(미타무라 쿠니히코)가 슈코에게 원했던 건 사랑이라기보다 자신에 대한 일방적 헌신이다. 지식인 슈헤이는 남자의 이기적 전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슈코가 결혼의 정의를 “서로가 정착할 수 있는 곳의 발견”이라고 말할 때, 그는 “결혼은 서로 나아가길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며 냉소적으로 대꾸한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챈 부인에게 버림받은 이후 그는 슈코에게 결사적으로 매달린다. 결혼하자고까지 하면서. 슈코는 여전히 슈헤이를 사랑하지만 메트레스적 관계를 원하는 자신의 지향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를 내치고 만다. 사랑도, 섹스도 결국 생존게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