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화폭의 감옥을 깬 화가 홍성담씨… 작품 <아바타>의 ‘붉은 악마’로 ‘역동성’ 구현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천년의 색-포에버 레드>전에 작품을 출품한 홍성담(50) 화백을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날 수는 없었다. 그라운드의 ‘피버노바’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붉은 악마’를 모티브로 삼은 ‘아바타(avatar) 연작’에 불들려 있기 때문이다. 하루 열시간씩 붓을 드는 홍 화백을 만나기 위해 지난 5월28일 경기도 고양시 구산마을에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 더없이 아름답다는 구산마을의 석양 풍경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동차가 되돌아 나올 수 있을지를 염려해야 할 정도로 쏟아지는 장대비는 야속하기만 했다. 논밭을 사방으로 펼쳐놓은 자리에 있는 창고를 거처로 삼은 ‘광주의 화가’인 홍 화백은 침잠하는 ‘5월’처럼 널찍한 작업실에 꼭꼭 숨어 있었다.
정부가 금지했던 ‘핏빛 금남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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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빨강에 주눅 들린 정신병자였다." 홍성담 화백은 삼원색의 하나인 빨강을 얻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했다.(사진/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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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50줄에 접어든 홍 화백에게서 ‘빨강’을 들으려는 게 속절없는 바람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는 세월의 더께를 간직한 중견 화백을 떠올리는 순간, 그는 변함없는 열정으로 광주 화가의 빨강을 풀어놨다. 그의 이력에서 빨강의 자리는 누구보다 드넓다. 핏빛 광주를 온몸으로 접했고, ‘빨강이 빨갱이로’ 우리 사회를 거대한 정신병동으로 만들 때 민중미술의 싹을 틔웠다. “광주에서 빨강에 덧씌운 공포 이미지를 걷어내고 영혼이 깃든 생명의 색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민주를 열망하며 동지들이 흘린 피, 그것은 밥이었다. 그 밥을 받아먹으며 내가 자랐다. 빨강의 추억은 고통인 동시에 도전이다.”
만일 뭉크가 <절규>를 그리며 구름을 푸른색으로 색칠했다면…. 아무리 스스로가 다리를 건너며 현기증에 불안감을 느꼈다 해도 그것에서 관객들이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읽어내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뭉크가 구름을 피처럼 붉게 그린 이유는 색채에 비명을 담으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인간의 내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원초적인 색깔이 그에겐 오랫동안 치명적인 자기검열의 기제로 작동했다. 어떤 형상을 사유하더라도 색깔을 선택하는 데 제약을 받았던 것이다.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그를 붙들고 있는 듯했다. 창조력이 자기검열로 깨부숴지던 시절을 떠올리는 동안 그는 담배를 꺼낸 뒤 한참 동안 불을 붙이지 못했다.
“한 사람이라도 빨강을 피해야 할 이유를 말했다면 그렇게 가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술에 걸린 듯 암묵적인 통제가 이뤄지는 것은 미신이었다. 문제는 거대한 미신이 세상을 노려보며 눈빛으로 지적하면 누구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붉은 주술’에 얽매인 정신질환자였다.” 197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도 빨강을 맘대로 쓰지 못했던 그는 내적인 터부를 깨뜨리려고 틈만 나면 전라도 황톳길을 의도적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갈수록 익숙한 데서 멀어지는 빨강에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잃어버린 빨강은 광주를 통해 서서히 그에게 돌아왔다.
한동안 마음은 붉은 감옥을 벗어나도 붓은 묶여 있었다. 광주, 그해가 가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붉은 피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화폭에 담은 작품이 <도망>이었다. 나름대로 ‘핏빛 금남로’를 표현하려고 기다란 도로를 붉게 칠하고 구석진 골목으로 달려가는 사람을 담은 것이었다. 이 그림은 두해 뒤 문화체육부가 임옥상·강광·김경인·심경오 화백과 그를 7인의 요주의 화가 목록을 작성하면서 5년 동안이나 감금당해야 했다. 당시 기관에서 작성한 <도망>의 주석에는 ‘길바닥에 붉은 칠을 한 것은 북한에서 빨리 광주에 군대를 보내 해방을 도와달라는 의미’라는 풀이가 달려 있었다. 심경오 화백의 작품에는 빨랫줄에 걸린 붉은 치마가 인공기를 상징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사실 빨강만큼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색깔도 드물다. 피와 생명의 색으로, 사랑과 열정을 상징하던 빨강에 정치적 덧칠이 이뤄진 것은 러시아혁명에서 붉은 기를 사용한 뒤부터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빨강에 악마적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홍 화백은 빨강의 금기를 깨뜨리는 과정에서 ‘사회적 격리’를 거쳐야 했다. 1989년 대형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평양축전에 보냈다는 이유로 3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빨강의 주술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시민의 힘을 보여준 1987년 6월항쟁은 빨강을 온전히 바라보게 하는 집단적인 정신치료 과정이었다. 당시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는데 감옥에서 역사의 갈등을 푸는 빨강을 발견했다.”

△ '레드전'에 내놓은 <아바타>로 붉은 악마를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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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함성으로 ‘전투적 신명’ 그려
지난 10여년 동안 금기를 벗어나 빨강의 리얼리티를 화폭에 담아온 홍 화백은 아직도 빨강에 갈증을 느낀다. 대중의 정서가 내면을 서성일 때도 우리 시대의 문제를 붓으로 해석한 그는 이제까지 단지 목을 축였을 뿐이다. 그가 타는 목마름을 느낀 것은 2002년 6월 붉은 악마의 함성에서였다. 붉은 열정이 솟구쳐 감동으로 타오르는 모습에서 인류의 새로운 대안을 엿본 것이다. 그는 월드컵의 붉은 악마가 효순·미선이 촛불시위와 탄핵반대 집회 등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거대한 흐름을 예감했다. 대개의 스포츠에서 파시즘의 흔적을 보았다면, 붉은 악마의 역동성에서는 파시즘을 자기 극복할 힘을 본 것이다.
“민중화가가 무슨 붉은 악마냐고 하는데 나는 거기에서 묘한 인간의 욕망을 느꼈다. 봉건성이라는 우리 내부의 거대한 독방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동력이 만들어지는 거다. 더 이상 차선을 택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아바타 연작은 우리 내부의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빨강이라는 미신이 삶을 규정하던 날들에서 벗어나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평론가 최열의 평가는 적절하다. “홍성담이 내세운 전투적 신명이라는 화두는 대단히 진지하며 아름다움을 힘차게 일궈내는 미학적 알맹이를 담고 있다. 미술의 힘을 그처럼 적절하게 표현한 이를 알지 못한다.”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며 붓으로 생각하고 붓으로 말하는 홍 화백의 ‘붉은 발언’이 다시 거대한 울림으로 다가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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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과 미술의 천년 이야기 [‘천년의 색-포에버 레드’전]
“우리는 빨강이 현실적으로나 잠재적으로 모든 색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농축되고 짙은 빨강은 중후함과 품위를 느끼게 한다. 희석되고 밝은 빨강은 회의와 우아함을 느끼게 한다. 자줏빛 유리는 무서운 풍경을 보인다. 최후 심판의 날에 당과 하늘에 퍼진 색조가 그러할 것이다.”

△ 사진/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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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그의 저서 <색채론>에서 빨강의 감정·상징적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다. 색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빨강은 계층에 따른 ‘느낌’을 대변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빨강의 느낌에 다가서는 데 자유롭지 못했다. 심지어 색채로서 빨강에 다가서는 것조차 가로막혀 있었다.
오는 6월21일까지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리는 <천년의 색-포에버 레드>전은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와 더불어 우리 앞에 다가온 빨강에 대한 재평가의 결실이다. 고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70여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에서는 빨강에 담긴 다양한 문화사적 의미와 미술사적 맥락을 되짚어볼 수 있다. 빨강이라는 색을 코드로 역사와 문화를 읽는 셈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가나아트갤러리 김종화 상무이사는 “빨강은 신분과 입장을 구별짓는 색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색이기도 하다. 빨강의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고 말한다. 색을 중심으로 12세기 고려청자부터 오늘의 작품까지 한자리에서 살펴보는 것 자체가 귀한 일임에 틀림없다.
고미술에서 빨강의 자리는 확연히 구별된다. 민화나 불화 등에 흔히 쓰이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도하던 빨강이 가구와 도자기로 가면 부귀와 권력의 상징 구실을 했다. 궁궐 밖에서 주칠은 금지됐고 구리의 녹이 열을 통해 붉은 색을 띠는 진사는 예술적 성취의 백미였던 것이다. 한 점의 붉은 진사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현대미술에서도 빨강의 자리는 극적이다. 이중섭의 <싸우는 소>나 김환기의 <점 시리즈> 등의 빨강이 작가 내면의 정서를 상징한다면, 신학철·안창홍·임옥상의 빨강은 사회적 발언의 성격을 지녔다. 여기에 이상현의 오브제 <호장근>은 생명의 관점에서 빨강이 없는 식물에서 ‘원조 빨강’을 느끼게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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