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출신 대학교수가 폭로하는 법과 법조계의 허상 <헌법의 풍경>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헌법의 풍경>(김두식 지음, 교양인 펴냄)은 놀라운 책이다. ‘법’자가 들어가는 책이 너무나 쉽게(심지어 낄낄대며 읽는 대목도 있을 정도로) 읽힌다는 점에서 그렇고, 법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집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검사 출신 대학교수인 지은이가 한줌의 ‘동업자 의식’도 없이 특권의식으로 가득찬 우리 법조계의 모습을 폭로하고 비판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지은이는 우선, ‘시민과 법 사이의 철저한 괴리현상’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법률 용어부터, 우리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어사전과 상관없는 의미를 갖거나 심지어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들로 구성된다. 일반인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법률가들이 성경해석을 독점한 구약시대 사제처럼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고유한 특권을 누리는 출발점이다.
이렇게 어렵고 딱딱한 언어로 지어진 법의 ‘위엄’은, 어떤 상황에서 법은 항상 정답을 갖고 있다는 환상을 낳는다. ‘털이냐 젖꼭지냐’ 등 음란물 판결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 환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드러난다. 결국 법이 해야 하는 일은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정의를 찾기 위한 공정한 대화의 규칙 또는 절차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지은이는 법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도 ‘법은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우리의 통념을 공격한다. 멀리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굳이 예로 들지 않아도 4·3 항쟁 등 우리 근현대사에는 국가가 ‘괴물’로 변해버린 사건들이 수도 없이 널려 있다. 그때마다 법은 항상 국가라는 괴물을 보호해왔다. 지은이는 국가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법학의 출발점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의 3장 ‘법률가의 탄생’, 4장 ‘똥개 법률가의 시대’, 5장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은 독자들이 가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장들이다. 지은이는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검사로 일할 때까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우리 법조계의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신분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경험은 우리들의 정신세계에 충분히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서부터 서서히 내면화되는 특권의식과 함께 ‘1등을 지향하는 수재’들은 법조계 내부를 지배하는 논리에 순응해가기 시작한다.
변호사 개업을 한 뒤에도 ‘검사장’ ‘법원장’으로 불리는 사람들, 절대 친해서는 안 되는 판사·검사·변호사가 사법연수원이라는 단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인간관계로 묶이는 모습이 우리 법조계의 초상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미 희망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사법고시 합격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주어진 길을 가지 않고 사회 각 분야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젊은 법조인들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법 제도의 개선이다.
그렇다면 법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와야 하는가. 이제까지 권력자들은 항상 ‘인정한다. 그러나’의 논리로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했다. 지은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이 없으면 헌법은 한낱 종잇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 여호와의 증인처럼 주류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배척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도, 집총도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이 이들의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까. 지은이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것이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