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국립발레단원 김인경(28)씨가 2003년 서울공연예술제에서 무용부문 연기상을 받고도 병역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은 무용계 ‘어른’들의 무책임한 기싸움 때문이었다. 본래 서울무용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수상자는 예술분야 공익근무요원의 자격을 얻어 직업 무용수로 일하며 병역 의무를 대신하도록 돼 있다. 이 원칙은 서울무용제와 연극제가 합쳐진 이후에도 지켜져 서울연극제와 무용제가 통합돼 치러진 제1회 서울공연예술제(2001년)와 이듬해 2회 행사에서 무용부문 연기상 수상자는 병역 혜택을 받았다.
문제는 서울공연예술제를 이끄는 두 축인 연극협회와 무용협회가 표나게 갈등을 일으킨 2003년 3회 행사였다. 3회 행사를 앞두고 예술제의 요직인 집행위원장과 예술감독을 모두 연극계쪽에서 맡자, 2002년 12월 무용협회 조흥동 이사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협회 차원에서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연극협회쪽은 부랴부랴 규정을 개정해 1인 집행위원장을 2인 집행위원장 체제로 바꿔 연극·무용계쪽에서 1명씩 맡도록 했고, 예술감독의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 그러자 3회 예술감독으로 임명됐던 김우옥(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씨는 예술감독의 고유권한인 사무국장 임명권을 집행위가 가져간 데 반발해 사의를 표명했고 행사를 6개월 앞둔 시점에서 연극협회 부이사장인 이종훈씨가 새로 예술감독으로 임명됐다.
예산 문제도 두 협회의 싸움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 됐다. 문화관광부·서울시·문예진흥원은 2003년 서울공연예술제에 13억5천만원을 지원했는데 연극과 무용 부문이 각각 8 대 5의 비율로 나눠서 행사를 치렀다. 안승원 무용협회 사무국장은 “함께하는 행사라면 예산을 반반씩 똑같이 갈라야 하는데 연극협회가 처음부터 더 많이 가져가겠다고 고집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극협회쪽은 애초부터 서울연극제가 무용제보다 예산이 더 많이 소요된 행사였고 후원자 모집 등에서 연극협회가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통합행사라고 하더라도 예산을 더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처럼 원칙 없는 통합과정 속에서 시너지 효과는커녕 상처만 남겼던 서울공연예술제는 지난해로 끝이 났다. 올해부터는 다시 무용제와 연극제로 각각 분리됐다. 하지만 서울공연예술제의 후유증은 무용협회·연극협회 두 조직에 상처를 남긴 것에 그치지 않았다. 피해는 힘없는 개인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연극협회와의 싸움에만 골몰하던 무용협회쪽은 연기상 수상자가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부처인 문화관광부와 병무청에 서류심사를 신청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울공연예술제 무용부문 참가자들에게 ‘연기상을 받아도 병역 혜택이 없다’는 사실을 미리 공지하지도 않았다. 결국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춤을 춘 참가자들을 우롱한 꼴이 되고야 만 것이다. 이에 대해 안승원 무용협회 사무국장은 “3회 서울공연예술제는 무용협회가 불참 의사를 밝힌 행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최한 행사가 아니므로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연기상을 받은 뒤 당연히 계속 춤을 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던 김인경씨에겐 다시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랄까. 주도권 다툼을 둘러싼 ‘조직 싸움’에서 개인은 비명 한번 질러보지 못하고 희생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