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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화의 시대, 따뜻한 울림 세계 최장기수에 관한 장편영화 <선택>을 만든 홍기선 감독·이맹유 작가 부부의 영화 이야기
1951년 스물다섯살이던 청년은 감옥에서 45년을 보낸 뒤 일흔살이 되어서야 세상에 나왔다.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그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깟 종이 한장 전향서”를 쓰지 않아 온갖 고문과 폭력과 외로움을 견디며 한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 우리는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 <선택>(10월24일 개봉)은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로맨스가 없는 영화를 만드는 까닭
‘불륜’과 섹스와 웃음에 매혹돼 “사상범? 장기수? 무슨 구닥다리 이야기냐”고 묻는 세상에 ‘겁 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 역시 당연히 만만치 않을 터. 이 영화를 만든 홍기선(46) 감독과 시나리오를 쓴 이맹유(39) 작가 부부를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영화를 보면서 점점 커졌다. ‘광주’의 책임자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던 1989년,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 <오! 꿈의 나라>를 만든 홍 감독은 80년대 말 새로운 영화운동의 주역이었다. 1992년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선원들의 힘겨운 삶을 극사실적으로 그린 첫 장편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로 여러 영화제의 상을 휩쓸었지만 곧이어 도착한 시대에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는 기획한 여러 영화가 잇따라 엎어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선택>은 그가 11년 만에 만들 수 있었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이맹유 작가는 “영화는 감독을 닮아서 나오는 것 같다. 이 사람은 솔직, 담백밖에 없다. <선택>에 처음 돈을 댔던 투자자가 할리우드식으로 ‘여자를 하나 등장시켜서 로맨스를 넣자’고 해서 내가 대본을 써줬는데 써주면 뭐하나 이 사람이 안 찍는데. 돈을 댈 테니 이것저것 바꾸자던 회사들은 중도에 다 안 하겠다고 하고 결국 거짓말 안 하고 담담하게 만들게 되더라”고 말한다.
부부가 <선택>을 구상한 것은 1995년, “<한겨레>에서 ‘45년 동안 감옥에 갇힌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기사를 읽었을 때”다. 곧 이맹유씨가 서울 봉천동 ‘만남의 집’으로 장기수들을 찾아갔고, 오랜 감금생활과 경찰의 감시, 이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입을 꾹 다문 그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몇달 동안 청소와 음식 만들기 등을 도우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당시는 장기수 영화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시절이어서 그는 경찰의 눈을 피해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작전 끝에 시나리오를 썼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어도 감옥 걱정을 안 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이 바뀐 뒤에는 돈 문제가 발목을 잡아 3년 넘는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완성했다. “내게도 꿈이 있었다”는 김선명씨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특히 1970년대 유신정권 아래서 벌어진 가혹한 전향공작을 중심에 둔다. 김선명씨가 대전교도소로 이감되는 첫 장면부터 노인이 되어 출감하는 마지막 부분까지 줄곧 교도소 담장 안에만 머무는 카메라는 장기수들의 고통과 갈등,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인간으로 죽으려는” 치열한 하루하루와 그들의 맞은편에서 장기수들을 협박하고 고문하고 굶기는 전향 담당 형사들의 모습을 애써 차분하고 냉정하게 기록한다.
인간적인 장기수, 그들의 꿈과 자유
이맹유 작가는 “제일 많이 받았던 충고가 일반인들이 좀더 쉽게 볼 수 있도록 외부에 있던 일반인의 시선으로 장기수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면 장기수가 영웅이 된다고 생각했다. 장기수들을 영웅이 아닌 한 인간으로 그리고 싶었다. 그들의 삶은 그렇게 번드르르하지 않다”고 말한다. 홍 감독은 “자살 한번 생각해보지 않은 장기수 선생님이 없다. 솔직히 그들도 인간이기에 매일 아침 오늘은 차라리 도장을 찍어버릴까 하다가 화장실에 앉아 비쳐드는 햇살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곤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끝까지 버틴 것은 하늘 아래 부끄럽지 않겠다는 양심과 동지애 때문이다. 0.75평 독방에 갇힌 채 끊임없이 벽을 두드려 ‘통방’을 하면서 서로 걱정해주고 ‘또 다른 자기’로서의 동지에 의지하며 그들은 그 세월을 버텼다.” 여러 비전향 장기수 중에 ‘김선명’씨를 주인공으로 한 것도 그런 뜻에서였다. 염색공장과 철공장 노동자, 자전거 수리공 등의 직업을 가졌던 ‘온순한 노동자’ 김선명은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다”는 말에 매료돼 인민군이 되었다. 거창하고 투철한 이념교육도 받지 않았고 투쟁에 앞장서는 목소리 큰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는 눈 먼 권력으로부터 존엄성을 지켜내고 자신을 키웠다. 홍 감독은 “나라면 그렇게 맞고 고문당하면 쓰고 나왔을 것 같다. 지식인의 얄팍한 변명 있지 않나? ‘까짓 종이쪽지 한장인데 쓰고 나가 내일을 도모해야지’라는. 광주에서도 밑바닥 사람들은 끝까지 싸우다 죽고 지식인들은 마지막 순간에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자유가 감옥 밖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게 자유는 감옥 안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가장 소중한 자유, 양심의 자유가 있었습니다”라는 영화 속 김선명의 말처럼 감옥 밖에 있던 사람들, 또는 감옥에서 장기수들을 위협하고 전향을 강요했던, 폭력으로 한 인간의 사상을 ‘전향’시키겠다는 오만한 권력에 동의한 ‘우리’들이 또 다른 감옥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홍 감독은 “빨갱이에 치를 떨며 전향공작을 지휘하는 악역 오태식이야말로 여기에 살았던 많은 보통 사람들의 대변인이며 악역을 맡았던 또 다른 희생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장기수들이 40년 넘게 경험한 ‘대한민국’이란 징글징글한 폭력과 모욕을 가하는 자들, 인간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 아니었던가. 비전향 장기수들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이들은 똑같이 힘든 세월을 보냈으나 전향할 수밖에 없었던 장기수들의 ‘선택’ 또한 무시하지 않는다. 이 작가는 “취재하면서 만난 많은 전향 장기수들은 ‘그때 나는 죽었다’ ‘하늘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살았다’는 자괴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편하자고 전향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가족들이 자신 때문에 당하는 끔찍한 피해와 고통을 덜어주고자, 또는 아파서 거의 죽어가게 돼서 전향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향서를 쓰면 바로 석방돼서 잘 살았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전향한 사람들 역시 형기를 채우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는 것도 이 영화에서 비로소 알게 되는 사실이다. <선택>은 선입견이 아니라, 군더더기 없는 진실과 깊은 고민의 힘으로 사람들을 조용히 울린다.
여전히 세상 바꾸기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을 계속 따라다니는 질문은 “요즘 같은 세상에 어쩌자고 이런 영화를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이들의 대답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 냉전을 겪고 운동권으로 살았던 30~40대는 너무나 심각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데 오히려 젊은 세대들은 그냥 한 인간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더라”(홍기선),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김선명씨에게 이 필름을 보내주려던 반출신청은 통일부에 의해 거부됐고, 송두율 교수는 이미 법적으로는 없어진 전향서를 강요받는 것이 ‘달라진’ 현실”(이맹유)이다. 이 영화가 너무 늦게 온 것일까, 아니면 “세상이 바뀌었다”는 우리의 선언이 너무 이른 것일까.
글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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