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 2003년10월23일 제481호 

[출판] 영혼이 깃든 풍경을 찾아서

숨어 있는 길로 떠난 여행자의 깊은 성찰… 산과 옛길에 대한 정갈한 글과 사진들

우리는 대부분 도시를 떠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때때로 갑옷처럼 둘러쓴 도시의 욕망을 벗고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것마저 포기할 수는 없을 터. 깊은 산과 오지에서, 또는 그곳으로 가는 길 위에서 내 영혼을, 다른 이들의 영혼을 만나는 순간들은 얼마나 소중할 것인가.

연극평론가이자 소문난 등산가인 안치운 호서대 교수가 써낸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은 바로 그 순간들의 아름다움과 깊고 깊은 성찰을 향기나는 글로 전해준다.


◁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 안치운 지음, 디새집 펴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옛길

“때는 환장할 봄이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강원도로 간다.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낯선 곳을 가면서도 불안하지 않다. 회귀적인 여행은 현재와 과거의 상관관계를 이룩한다. 과거로 가는 길이 예측 불가능한 것이면서도 들뜨게 만드는 이유는 여행이 자발적이기 때문이다. 단절된 것은 길이 아니라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는 여행길에서 잘 쓰이지 않았던 근육처럼 잊혀졌던 자신의 전체를 발견하게 된다” 같은 그의 글은 정말 우리를 ‘환장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나도 길 위로 떠나 “아는 것을 가지고 판단하기보다는 만나는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하나씩 이해해서 마음에 새기리라” 다짐하게 한다.



책은 1999년 그가 펴냈던 산문집 <옛길>을 완전히 새롭게 쓴 것이다. 지난 책에는 사진이 없고 강원도와 경기도의 산과 마을만을 소개했지만, 이번 책에는 사진가 유동영씨와 1년 동안 산과 옛길에서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을 더하고, 경상·전라·충청도까지 글 닿는 범위를 넓혔다.

연극평론가인 그가 산과 그곳의 마을과 사람들에 매혹된 것은 70년대 중반 대학시절로 거슬로 올라간다. 정치적으로 암울한,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던 시기의 젊은이들이 그러했듯 그 역시 정의와 신념이 거부당하는 세상에 분노했고 상처받았다. 그는 무작정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평이한 등산로를 피하고 인적이 끊긴 오지의 길을 택해 예정도 기약도 없이 묵묵히 숲의 심장을 향하여 걸었다. 옛길을 걸으면서 그는 비로소 마음의 평안과 삶에의 의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 “산을 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수시로 바뀌는 도시의 환경과 그 안에서의 삶에 회의가 들 때마다 나는 산으로 갔다. 큰 산과 맑은 물, 그리고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사는 이들은 경이로움으로 다가왔으며 위안이 되기도 했다. 옛길에 대한 관심은 그때부터였다. 옛사람들이 다녔던 길을 찾아 땀흘리며 걷기 시작했다. 옛길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양심이 있었다.”



오지의 사람들에게서 삶을 배운다

특히 그는 오지의 한가운데서 만난 사람들에게 삶의 이면을 배운다. 특히 산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라는 오해 속에서 정부의 화전 정리 사업에 내몰렸던 화전민의 삶을 알게 되고, 정리 사업을 견뎌내고 아직도 산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서 오지의 새로운 의미에 눈뜬다. 그는 조선시대부터 정치적으로 억압받던 민중들, 일제시대의 수탈과 핍박을 피해 산으로 올라간 사람들, 한국전쟁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로 이어지는 화전민의 역사는 사회의 강요에 의해 소외된 계층의 삶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또한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달리 산을 보호하면서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던 그들이 도시의 변두리로 내쫓겨 빈민층으로 전락한 것은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적 삶의 표상에 잘못 길들여져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 어떤 풍경도 영혼의 한 상태다.” 한 걸음 한 걸음 산 속으로 걸어들어가면서 사유의 축제를 벌이는 그의 말들은 사람과 인생과 세상과 역사에 대한 소중한 성찰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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