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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내 풍기는 역사 속으로… 주류의 역사가 외면한 조선 보통사람들의 생활… 다양한 문헌 토대로 상상력 덧입혀 풍속사 복원
‘고요한 아침의 나라’. 19세기 조선을 방문했던 한 외국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당시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였던 일본에 비해 근대화에 어두웠던 조선은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밤처럼 고요하기만 한 나라였는지 모르겠다. 맥락이야 어쨌든 우리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을 동방예의지국에 대한 서구의 공증처럼 받들며 살아왔다. ‘에헴, 그러니까 우리는 본래 인의를 받들고 염치를 아는 예의바른 사람들이었던 게야’ 하면서.
민간의원에서 도둑, 탕자·탕녀까지
지은이는 역사서, 개인 문집, 회고록, 시가 등 다양한 문헌에 역사적 상상력을 덧입혀 조선시대 뒷골목을 어슬렁거렸던 열 가지 부류의 비주류를 복원해냈다. 민간의원, 도둑, 도박꾼, 술꾼, 무뢰배, 탕자·탕녀 등 정식 역사서에 등장하지 않는 잊혀진 사람들이다. 왕의 건강을 돌보았던 어의보다 실력이 뛰어나 정조의 종기를 단 삼일 만에 치료했던 민간의원 피재길, 손톱·머리카락·오줌·똥·때 등 더럽고 하찮은 것들을 약재로 사용한 이동은 등은 국립 의료기관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민중들의 고통을 덜어준 ‘민중의’였다. 한발의 침만으로 씻은 듯 통증을 치료하는 ‘민중의’들은 때로 사람과 귀신의 경계에 서 있는 전설적 명의로서 미화되기도 했다.
조선 관료사회를 지탱해주는 과거시험 풍경만 해도 화장실도 제대로 가기 힘든 요즘의 엄숙한 고시장과는 사뭇 달랐다. 정조 때는 21만명에 이를 정도로 응시자가 많았기 때문에 과거날 아침 궁궐문이 열리면 좋은 자리(시험문제가 잘 보이고 빨리 답안지를 낼 수 있는 자리가 경쟁이 치열했다)를 잡느라 북새통이 되곤 했다. 수험생 도련님들을 수발하는 노비에다 술 파는 장사치까지 과거장에 들어왔다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족집게 대리시험 전문가인 거벽(과거 답안지를 대신 지어주는 사람)과 사수(글씨를 대신 써주는 사람)까지 판쳐 시험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지은이는 <청구야담>에 실린 단편 ‘시골 유생을 속여 박생이 과거에 합격하다’를 통해 과거의 실상을 파헤친다. 여기서 박생은 다름 아닌 암행어사 박문수인데, 박문수가 시험 전 서울 성내를 돌아다니며 누가 거벽이고 누가 사수인지 탐문하여 과거장에서 이들을 협박함으로써 거벽과 사수의 힘으로 과거에 급제한다는 내용이니 박문수는 과거 실력은 몰라도 ‘암행’에선 이미 전문가였음이 틀림없던 모양이다.
정녕 당대를 움직인 동력은 무엇이었나
백정은 아니되 소를 도살하는 일에 종사했던 반촌(泮村) 사람들도 주목할 만하다. 조선시대 때는 소 도살이 가뭄을 부른다는 이유로(농사를 짓는 소중한 도구를 함부로 죽이면 소들의 원한이 하늘에 사무쳐 가뭄을 일으킨다는 주장이었다) 도살억제 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쇠고기 식용은 금지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소를 주로 먹는 사람들이 사대부 자신들이었으므로. 특히 국립대생들인 성균관 학생들은 반찬으로 쇠고기를 먹었는데 성균관 주변에 촌락을 이루고 살며 ‘하숙촌 산업’에 종사하던 반촌민들이 소를 도살하는 독점 권리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들 반촌민은 바깥 사람들과는 일체 교류하지 않으며 자신들끼리 혼인하고 말씨와 풍습도 달랐다. 서울의 한복판인 성균관 일대에서 이처럼 외부와 고립된 게토가 존재했다는 것이 흥미롭기만 하다. 이처럼 어디 내놓고 자랑할 성질은 아니지만 호기심을 돋우는 풍속사를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 지은이는 ‘세계적 민족 문화유산’이란 이름으로 추상화·미화·왜곡하는 풍조에 반기를 들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그래서 지은이는 우리나라가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이라는 것만 자랑하지 말고 그보다는 88년 뒤 늦게 발명됐지만 실제로 인쇄·출판·지식의 흐름을 돌려놓았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어떻게 역사를 변화시켰는지 구체적으로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찬란한 문화유산’이라는 허영보다는 그 사회를 실제로 움직인 동력을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이라는 틀을 씌우기 이전에 분명히 존재했던 개똥이, 소똥이, 말똥이들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단일한 중심만을 내세워 애써 중심을 닮게 하는 중심적 담론의 독재”에 저항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조선 뒷골목 사람들을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에 녹아 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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