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회 > 사람과 사회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5월17일 제610호
노무사님, 검정고시 또 쳐요?

초졸 학력으로 택시 몰다가 노동법 전문가가 된 구건서씨의 끝없는 도전… 법학학사와 경영학 석사까지 노리며 노동자 위한 종합 컨설팅회사 구상중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네 이름 있다더라.” 전화기 저쪽의 한마디는 여름 소나기처럼 시원했다. 부부는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영문도 모르는 초등학생 아들도 덩달아 울었다. 중학교 중퇴 학력의 구건서(49)씨가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것은 1989년 9월, 시험 준비에 나선 지 4년 만이었다. 당시 총무처에 친분 있는 사람이 있어 노동부 친구를 통해 알아봐준 덕에 정식 발표 이틀 전에 합격 사실을 알았단다.

학벌사회의 냉담함에 좌절했지만…

“1회 노무사 시험이 1986년에 치러졌는데, 그 뒤 3년간 시험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무사 시험이 폐지된다는 얘기가 돌고, 중도에 시험을 포기한 이들도 많았어요.” 1989년 2회 시험의 최종 합격자는 구씨를 포함해 모두 24명이었다.


△ 구건서 노무사는 변호사, 노무사, 회계사 업무를 통합한 종합 컨설팅 회사를 구상하고 있다.

1회의 110명 안팎보다 훨씬 적은 수여서 그의 감격은 더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생스럽던) 옛날 생각 많이 났죠. 집사람에게 고맙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농장·공사장의 잡부, 화장품 외판원을 거쳐 택시 운전을 하던 구씨가 꿈에 그리던 노무사 시험에 어렵사리 합격했어도 당장 무슨 뾰족한 수가 난 건 아니었다. 탄탄대로는커녕 ‘학벌사회의 높은 벽’에 부딪히는 좌절감부터 맛봐야 했다. 시험 합격 이듬해 서울 강남구청 근방에 노무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일감을 좀처럼 딸 수 없었다. “기업체 자문을 맡으려고 하면 꼭 약력을 요구하더군요. 약력을 보내고 나면 아무 연락이 없고….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겁니다.”

학벌의 높은 벽을 느낀 그는 1991년부터 사법시험 도전에 나서게 된다. “사시를 준비한 것은 꼭 학벌의 벽을 넘자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노무사 자격으로는 법적 소송을 맡을 수 없어 고객에게 토털 서비스(일괄 서비스)를 할 수 없다는 고민도 있었어요. (택시를 운전하는 틈틈이 공부한 것만으로 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데 따라) 자만심도 있었고.” 사시 도전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듬해까지 연속 쓴잔만 마셨다. 그 뒤 뛰어든 사업에서도 잇따라 실패하는 바람에 가족의 생계는 아내가 대신 꾸려가야 했다.

그러던 구씨가 노무사 세계에서 두각을 드러낸 계기는 1996년 노동법 전문 서적인 <노동법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펴내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으로 낸 첫 단행본이었던 이 책은 1995년 1월부터 노동 전문잡지 <노동법률>에 연재한 ‘실무자를 위한 노동법 강좌’, <현대노사> <매일노동뉴스> <노동교육> 등 노동 관련 잡지에 기고한 글을 엮은 자료집이다. 그는 이를 통해 노동법 전문가라는 평을 얻었고, 학벌의 벽을 조금씩 넘을 수 있었다. 구 대표의 열린노무법인으로 사건 수임과 자문 계약이 잇따라 들어오고, 기업체나 노동단체의 강의 요청이 많아졌다. 많을 때는 한 해 300회의 노동법 강연을 한 적도 있으며, 지금도 200회가량 강연을 하는 인기 강사다.

뜻밖의 기회가 된 ‘노동법 날치기’

국내 정치사에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1996년 12월26일의 ‘노동법 날치기 파동’ 또한 그에겐 뜻밖의 기회였다. 날치기 노동법에 대한 해설서 발간 작업에 누구보다 일찍 뛰어든 게 그였다. 노사 관계 실무자들에게 알기 쉬운 노동법 해설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보름 정도는 하루 2시간만 자면서 원고 작업을 강행해 날치기 통과 18일 만에 700쪽 분량의 <개정 노동법 해설>을 내놓게 된다. 이 해설서는 날치기 노동법 해설서로는 유일하다. 정치권에서 날치기법을 재개정하기로 합의하면서 다른 집필자들은 모두 중도에 손을 놓았던 것이다. 날치기 노동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개정되면서 해설서의 운명도 다하지만, 구 노무사는 이를 바탕으로 재개정 노동법 해설서를 누구보다 빨리 내놓음으로써 노동법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 노동 관련법을 강의하고 있는 구건서 노무사. 강의 횟수가 한해 200~300회에 이른다.

그가 노동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택시운전 기사 시절(1983~89)부터였다. “노동운동을 의식적으로 한 건 아니고 (근무) 교대하는 친구들이 같이 하자고 해서 따라 했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동법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는 나중에 노무사 시험에 도전하는 실마리가 됐다.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게 된 건 노조활동의 한계도 느꼈고 택시 운전으로 일생을 마치고 싶지 않다는 자각도 들어서였습니다. 노동법을 심층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죠.” 이즈음 읽은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츠의 <메가트렌드>는 그에게 지식과 학습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택시 운전을 하는 틈틈이 공부를 해야 할 처지에선 시간 확보가 최우선이었다. 당시 회사 택시 업무는 낮과 밤을 번갈아가며 교대하는 방식이었는데, 회사 쪽에 부탁해 낮에만 일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수입은 뚝 떨어졌다. 사납금만 채우고 2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근무는 정해진 8시간만 했다. 이는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인 동시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좋아하던 당구와 술을 끊은 게 이즈음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몽땅 공부하는 데 투자했죠. 학원 강의를 들을 처지가 못 되니 방송대 교재를 갖고 다니며 택시 안에서 틈틈이 인사관리와 노동법을 공부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는 택시 안에서도 쉽게 책을 볼 수 있도록 낱장으로 뜯어 작게 만든 상태로 핸들에 붙여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들여다보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어두울 때면 책 부분을 비춰줄 수 있게 별도로 스위치를 달기도 했다.

중학교 중퇴 학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노무사로 웬만큼 자리를 잡은 듯 보이는데도 구 대표는 여전히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중졸 검정고시를 마친 데 이어 올 4월9일에는 고졸 검정고시를 치러 합격선(60점)을 훌쩍 넘는 평균 85.37점을 받았다. 구 대표는 올해 중 학사고시 제도를 통해 법학학사 학위를 따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법학 35학점을 따 학사 학위를 받으면 올해부터 바뀐 제도에서도 사시에 응시할 수 있게 된다. 구 대표는 이어 내년엔 경영학 석사에 도전할 뜻을 품고 있다. 경영학 공부를 하려는 건 “노사 문제가 법만으로 풀 수 없고 개인과 조직을 통합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비정규직 법안, 일단 통과시켜야”

노동법 전문인 그에게 현안으로 떠올라 있는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았더니 “일단 통과시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금지 제도만이라도 제대로 시행되도록 하는 게 차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 노동계를 고려해가면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한 법안입니다. 미흡한 게 사실이지만, 이 법마저 없어지는 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 제도가 처음부터 100% 만족스럽게 시행되지는 않더라도 3~5년 안에 똑같은 일에는 똑같은 대우와 임금을 받는다는 희망이라도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설명이었다. 구 대표는 “차별금지 제도는 노동부의 ‘의지’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열린노무법인 대표, 중앙인재개발원·중앙노사교육원 원장으로 일하는 구 대표는 “변호사, 노무사, 회계사 업무를 통합해 기업에 필요한 서비스를 일괄 지원하고 노동자들의 교육·훈련·임금 체계에 대한 자문까지 아우르는 컨설팅 회사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여기에 국제 인수·합병(M&A) 업무에까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구 대표의 도전에는 끝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