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군법무관 경험 가진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 박선기 재판관
반인륜적 대량학살은 주권을 넘어서라도 단죄해야 한다는 중요한 판례 될 것
▣ 탄자니아 아루샤= 김보협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bhkim@hani.co.kr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후투와 투치라는 두 종족 간 오랜 분쟁이 있었고 그해 4월부터 3개월 동안 투치족 100만 명이 학살을 당했다. 실제 거리보다 더 먼 심리적 거리 때문에 우리 머릿속에서는 금세 증발해버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왜 죽었으며 반인륜적인 대량학살의 주범들은 어떻게 됐는지.
국제법정, 2차 대전 이후 처음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돼 20세기에 자행된 대량학살 가운데 가장 잔인한 학살로 평가받고 있는 르완다 사태는 과거형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다. 당시 학살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주요 인사들이, 유엔이 1997년 설립한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Rwanda)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유엔총회에서 선출된 재판관 18명 가운데는 우리나라의 박선기 재판관도 있다.
“재판관을 2배로 증원한 2003년 재판관으로 선출됐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재판에 참여하기 전에 르완다를 다녀왔습니다. 이제 안정을 찾고 활기를 띠기 시작했지만 학살이 일어났던 참혹한 현장들을 보니 끔찍했습니다. 성한 유골이 거의 없고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 유엔이 대량학살을 국제법정에 올리는 것은 2차 대전 뒤 처음 있는 일이다. 박선기 재판관은 군법무관의 경험을 재판 과정에 활용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보협 기자)
|
박 재판관이 맡고 있는 피고인은 학살 당시 군 참모총장과 우리나라로 치면 경찰총장에 해당하는 최고 치안 책임자 등 4명이다. 실제 학살 행위는 10대, 20대인 민병대와 군인·경찰에 의해 자행됐지만, 유엔 검찰은 지휘 책임자들의 학살 예비·모의·독려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검경 수뇌부를 기소했다. 검찰이 복잡한 명령 체계와 학살의 배후를 밝히면 변호인들이 방어하고, 재판부는 증거에 입각해 이를 판단하게 된다. 12월1일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만난 박 재판관은 2007년 하반기께 1심이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2000년 국방부 법무관리관(소장)으로 예편하기까지 20년 이상 군 법무관으로 활동해 군에 정통한 그의 경험은 재판 과정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해 설립된 유엔이 한 국가 내에서 벌어진 학살, 전쟁 범죄를 처벌할 수 있을까. 그런 전례가 있을까. 지난 세기 수많은 학살이 있었지만 유엔이 학살 책임자들을 국제법정에 세운 적은 없었다. 국제법정에서 형사범죄를 다루는 것도 2차 대전 이후 일본과 독일 등 패전국에 전쟁책임을 물은, 도쿄와 뉘른베르크 재판부 이후 처음이다.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 이후 옛 유고 사건을 다루는 ‘옛 유고 국제형사재판소’(ICTY)가 생겼고, 우리나라 권오곤 재판관이 활동 중이다. 두 곳 모두 특정 기간, 특정 사건에 대한 특별 재판부인 셈이다.
아프리카 나라들에 경고하는 의미도
“유엔이 범법자를 구속하고 재판하는 일이 이례적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극적이었지만 앞으로는 한 국가의 주권을 넘어서더라도 반인륜적 대량학살을 저지른 국가 지도자나 정부 인사들은 국제법정에 세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움직임은 냉전 해체 이후 힘의 공백을 틈타 르완다 학살과 비슷한 범죄가 이미 자행되고 있거나 자행될 가능성이 큰 아프리카 몇몇 나라들에 경고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깨가 무겁다고 박 재판관은 말했다. 한시적인 두 재판부의 결정은, 2007년 활동을 개시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중요한 판례가 된다. 재판관이 되어 아루샤에 오기 전에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곳에서,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하얀 눈밭을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