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회 > 사람과 사회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3년09월06일 제475호
고속철 가는 길은 ‘쑥밭’이더라

서울~대구 구간 4개월간 조사결과… 지하수 고갈·소음 진동·주택 균열·가축 폐사 피해 끝없어

글 · 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kioyh@greenkorea.org

경부고속철도는 1992년 6월30일에 시작해 18조4358억원이 투자된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다. 2004년 4월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임시 개통을 하게 된다. 그러나 10년 동안의 공사는 수많은 환경파괴와 훼손을 낳았고, 공사장 근처 주민들의 재산피해를 가져왔다. 건설교통부와 고속철도건설공단이 공사 과정에서 지켜야 할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환경영향평가를 관리해야 할 환경부가 제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음과 진동으로 아이까지 유산

이같은 사실은 녹색연합이 지난 4월 이후 4개월 동안 서울~대구 구간 고속철도 전체 사업지역의 환경영향평가 이행실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번 조사는 사업이 이뤄진 공사현장과 주변 산림지역, 주민거주지역, 농경지, 하천 등 대상지역 전체에 걸쳐 이뤄졌다. 지난 10년 동안 고속철도의 환경에 관한 민원이 접수된 중앙환경분쟁조정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감사원 등의 자료와 국정감사자료를 더하고 이를 토대로 현장 조사를 거쳐 확인한 결과다.

조사 지역 가운데 환경 피해가 가장 심각한 곳은 충남 아산시 배방면 장재리 일대다. 천안아산역사가 건설되는 현장 주변이다. 지하수 고갈을 비롯해 소음과 진동 등으로 수없는 피해가 잇따랐다. 식수원이 사라지고 가축이 집단 폐사하는가 하면 양식장의 물고기가 죽고 주택 균열 등 환경재앙이 이어졌다.


△ 환경영향평가에서는 소음과 진동 대책이 언급됐지만 공사장 근처 건축물과 주택에는 균열이 발생하는 피해가 잦았다(왼쪽). 비룡터널공사 이후 말라버린 충북 청원군 부용면 문곡리 구절골의 우물(가운데). 아산시 장재리에서는 소음과 진동으로 양어장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아산시 장재2리 60가구 100여명의 주민은 공사 전에는 식수를 10m가량의 지하수 관정을 통해 확보했다. 그러나 천안아산역 공사 이후 2~3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지하수가 말라버렸다. 직타공사(고속철 역사의 기초를 다지기 위하여 철근을 땅에 박는 작업)로 지하수 수맥의 흐름이 바뀌면서 지하수가 말라버렸던 것이다. 고속철도공단쪽에서 대체 지하관정을 설치해 식수를 공급했으나 이마저도 식음수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수질에 미달했다.

역사 신축을 위한 파일 공사와 30m 떨어진 주택에 살던 김아무개씨는 파일공사에서 생기는 소음과 진동으로 아이를 유산했다. 김씨는 중국에서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직타공사로 인한 소음과 진동에 유산한 직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이혼 뒤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하루 12시간 동안 진행된 파일공사로 공사현장 근처 양식장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현재 양식장은 마을의 조그만 웅덩이가 되어 그 흔적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진입도로는 21번 국도에서 갈리는 폭 5m의 도로뿐인데 지난 10년 동안 공사 차량과 마을주민이 함께 이 길을 사용해야 했다. 좀처럼 없었던 교통사고로 주민들이 사망하는 일도 생겼다. 거의 모든 가구에서 공사로 인한 진동으로 주택 균열이 생겼다.

돌 파편, 100m 아래 상가로 떨어지다

장재리처럼 지하수가 고갈된 현장은 여러 곳 확인됐다. 대표적 터널구간인 비룡터널이 지나는 충북 청원군 부용면 문곡리 일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50여 가구가 사는 자연마을인데 예부터 산으로 둘러싸여 마을에는 늘 물이 넉넉했다. 그러나 비룡터널 공사가 시작된 92년 이후 물이 말라버렸다. 주민들은 현재 고속철도공단이 산기슭에 설치해준 지하관정의 물을 식수로 쓰고, 농업용수는 마을 아래의 96번 국도 근처에서 끌어온 지하관정의 물을 쓴다.

소음·진동·먼지 피해는 공사현장 근처 주택지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나타난 피해사례다. 환경영향평가에 따라 적절한 관리대책이 세워졌다면 피해 규모는 최소화했을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공사현장 주변 마을에서는 덤프트럭 등 공사차들이 마을 안길로 무분별하게 통행하면서 담장과 주택에서 균열현상이 생겼다. 실제 주민 이아무개씨 소유 주택이 대형 덤프트럭이 통행하며 발생하는 진동으로 담장 4, 5곳에 세로와 가로로 균열이 생겼고, 주택 내부 벽도 40cm가량 갈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가축 피해도 많다. 경북 김천시에서는 99년 4월부터 교각공사가 시작되면서 발생되는 소음 진동으로 사육하던 닭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양계 사육 손실과 기존 계사 철거비 및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해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그 결과 가축, 건물 및 정신적 피해에 대해 5천만원을 배상받았다. 김천시 남면 오봉2리 양돈농가인 백태복(54)씨는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돼지 200여 마리가 집단 폐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백씨는 생계가 막연하다며 김천시에 진정서를 내고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 김천시 일대에 광범위한 건축물 피해를 낳은 발파공사 현장(왼쪽). 천안아산역사 공사로 근처마을 양식장은 흔적만 남았다(오른쪽).

안전조항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발파공사를 해 안전사고가 일어난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8월에는 충북 옥천군 옥천읍 가화리 터널공사 현장에서 발파 직후 10cm 안팎의 돌 파편이 100여m 떨어진 삼거리 상가까지 날아오는 사고가 발생했다. 돌에 다리를 맞아 병원에 입원하고 차량이 파손되는 사고가 생났다. 근처에 슈퍼마켓을 연 옥천읍 삼양리 한 주민은 “그동안에도 화약 발파에 따른 소음과 진동으로 집에 균열이 가는 등 피해를 견디지 못해 수차례에 걸쳐 진정했으나 무시했다”면서 “당시 사고가 발생한 뒤 곧바로 현장에 쫓아갔더니 인부들의 입에서 술냄새가 나고 화약안전관리자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환경부도 책임… 대구~부산 구간도 뻔해

고속철도 교각을 하천에 박으면서 장마철에 집중호우가 내리면 큰 피해가 우려되는 곳도 늘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 석수2동 일대에서는 2001년 7월15일 집중호우로 터널공사장에서 토사가 휩쓸려나와 마을을 뒤엎는 사고가 발생했다. 수해 피해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안양시는 석수동 진입로 공사현장에 대해 사고원인 규명 등의 이유로 공사중지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환경 피해가 광범위한 배경에는 환경부가 있다. 환경부는 부실하게 작성된 환경영향평가를 놓고 현장 확인 없이 공사 주체들과 대충 협의해왔다. 더욱이 공사 진행 과정에서 수많은 환경민원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사후환경영향평가나 점검을 하지 않았다. 이처럼 주요 국책사업 시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환경 논란의 발단은 대부분 졸속과 부실로 점철된 환경영향평가에서 비롯한다. 새만금, 북한산관통도로, 경인운하, 한탄강댐, 울진~강원도 초고압 송전탑, 천성산 고속철도 등의 사업에서도 환경관리대책을 부실하게 추진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환경저감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대충대충 처리해 눈감아주거나 그냥 넘어간 것이 쌓여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가적인 갈등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이라면 아직 공사가 이뤄지지 않은 대구~부산간 공사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천성산 고속철도 건설에 환경단체와 지역 시민사회가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