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급전 필요하면 전화하세요. 보증도 담보도 필요 없어요. 하루 이자 1800원이면 100만원을 빌릴 수 있어요.” 대출수수료는 전혀 없고, 간편한 대출 심사로 대출 신청에서 통장 입금까지 1시간이면 끝난다. 그것도 영화배우 최민식씨 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공중파 TV에 광고모델로 등장해 ‘이미지’를 띄운다.

△ 물밑에서 영업해왔던 대부업체들이 공세적인 마케팅을 펴고 있다. 대부업체들의 대출 광고.

길거리 벽이나 생활정보지에 붙어 있던 ‘(사채) 대출’ 광고가 음지에서 이제 광장으로 당당하게 걸어나오고 있다. 2002년 10월 대부업법(상한금리 66%) 제정에 따라 각 시·도에 대부업체로 공식 등록한 뒤에도 대출 중간모집인을 쓰면서 물밑에서 영업해왔던 업체들이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마케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자제한법 폐지 뒤 우후죽순 난립

최민식씨를 광고모델로 앞세운 대부업체 리드코프 쪽은 “최씨는 주주도 아니고 회사와 별다른 인연도 없다. 기업 이미지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모델로 섭외했고, 광고료 등 조건이 맞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광고 초기에 ‘최민식 효과’가 일시적으로 있었으나 기대만큼 고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는 않고 있다고 한다. 대부업체 광고를 보면, 200만원 대출 때 최고 이자는 하루 3600원(이자율 0.18%/1일)이다. 언뜻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달 이자만 10만8천원, 연간 이자는 무려 129만6천원(연리 66%)에 달한다. 특히 대출을 받지 않고 대부업체에 신용정보 조회만 해도 그 기록이 금융기관마다 공유되는데, 이 때문에 은행에서도 대출이 중지되기 일쑤다. ‘얼마나 신용이 안 좋았으면 대부업체까지 기웃거렸느냐’는 게 이유다.

국내 대부업 시장이 갈수록 팽창하고 있는 가운데, 법무부가 추진 중인 이자제한법(상한금리 40%) 부활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자제한법은 비제도권 금융시장을 규율하고 있는 현행 대부업법과 직접 부닥치게 된다. 열린우리당은 이자제한법 상한금리를 연 50%로 높이고, 법안 이름도 ‘폭리행위규제법’으로 바꿀 방침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이자제한법 부활에 반대한다는 뜻을 계속 밝히고 있다. 법무부도 애초 방침에서 후퇴해 등록 대부업체와 여신전문업체(캐피탈·리스 등), 상호저축은행 등은 이자제한법 대상에서 빼기로 했다. 이자제한법이 부활하고 이 법이 정한 상한금리가 연 40%로 정해진다면 무등록 대부업체(불법 사채업자)는 연 40%를, 등록 대부업체는 연 66%를 국가에 의해 합법적으로 보장받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지난 5월 현재 등록 대부업체는 1만6천 개에 이른다. 1995년 3천여 개(추정)에 달하던 사채업체는 98년 초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뒤 현재 3만5천여 개가 난립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자제한법이 없어진 틈을 타 일본계 사채자금이 국내에 들어와 연리 130%의 고금리 장사에 나섰고, 사장과 직원 한 명으로 이뤄진 토종 사채업자들도 우후죽순 늘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저신용자들이 늘어났음에도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이 단기 수익성을 추구하면서 저신용자 대출을 완전히 막아버리는 바람에 고리대 대부업 시장은 날로 팽창해왔다.

△ 국내 대부업 시장을 일본계 업체가 평정하고 있는 가운데 외국계 은행까지 뛰어들었다. 일본계 산와머니 사무실(위). 메릴린치가 주요 투자자인 대부업체 페닌슐라캐피탈(아래).

2005년 국내 대부업 대출규모는 35조7천억원, 이용자는 481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대부업 등록을 했다가 취소(대부분 자진 취소)된 곳만 해도 1만3천 개인데, 그럼에도 대부업 등록업체 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연 66%의 이자를 보장하는 대부업에 계속 뛰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대부업 시장점유율 상위 업체인 산와머니의 경우 2005년에 2464억원을 대출금으로 운용해 이자수익 1261억원을 벌었다. 이자비용(대부분이 조달금리)으로 쓴 돈은 66억원에 불과했다. 또 다른 대부업체인 프로그레스 역시 1209억원을 대출해 357억원의 이자수익을 올렸는데, 이자비용은 81억원에 그쳤다.

본국의 싼 금리로 돈 끌어들여…

과거에는 사채시장의 자금원이 주로 개인 전주들이었지만, 지금은 은행·보험 등 제도권 금융기관의 돈까지 자산유동화대출 방식을 통해 대부업체 대출자금으로 유입되고 있다. 제도권 금융기관들이 ‘큰손’ 전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인데, 이자제한법 폐지와 대부업법 시행 이후 고리대금업이 ‘돈되는 시장’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상호저축은행·캐피털사도 비싼 수수료까지 합쳐 연 40∼60%(연체시)대의 고금리 대출상품을 팔면서 사실상 대부업체와 같은 고금리 장사를 하고 있다. 2003년 이후 동양파이낸셜·동원캐피탈·팬택여신투자금융 등 5개 여신전문 금융회사는 아예 여신전문업 등록을 반납하고 대부업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국내 대부업 시장은 아프로FC그룹(해피레이디·파트너크레디트·여자크레디트·예스캐피탈·프로그레스 등)과 산와머니 등 24개 일본계 대부업체가 평정했고, 마땅한 경쟁자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연 66%의 합법적 고금리를 노린 외국 대형 자본의 고리대 시장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계 메릴린치, 영국계 스탠더드차터드뱅크(SCB)가 각각 ‘페닌슐라캐피탈’(최대주주 메릴린치), ‘한국PF금융’이란 이름으로 지난 6월 대부업 등록을 마쳤다. 페닌슐라캐피탈은 아파트 담보대출(금리 연 6.39∼13%)만 취급하고 있는데, 담보인정 비율을 최대 80%까지 적용해주는 것으로 알려진다. 자국의 고금리 제한을 피해 황금알을 낳는 한국 대부업 시장으로 이동한 것이다. 국내 대부업체는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감독을 받지 않고 지방자치단체가 관리·감독을 맡고 있다. 이렇듯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 것도 외국 금융자본이 국내 대부업 시장에 파고들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또 외국계는 본국에서 연 6∼7%의 싼 금리로 자금을 끌어오기 때문에 연 66%의 이자를 보장받는 한국 대부업 시장은 꽤 매력적이다. 최근 일본이 대부업 상한금리를 29.2%에서 20%로 더 낮추기로 함에 따라 일본 대부업체의 국내 진출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대부업체들은 자신들의 자금조달 금리가 평균 연 21%로, 제도권 금융기관보다 3~4배 높기 때문에 66%의 상한금리는 결코 고금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은 “대부업의 법정 금리를 인위적으로 내리기보다는 대부업 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해 시장 주도에 따라 금리가 자연스럽게 내려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금감원은 메릴린치 같은 외국계 대형 투자은행이 국내 대부업에 진출하면서 경쟁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이자율이 자연스럽게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산와머니가 최고 연 65.7%를 적용하고 있는데 메릴린치 같은 ‘메기’가 물에 들어오면 산와머니도 이자율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다. 정부는 또 메릴린치나 스탠더드차터드뱅크가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대부업 시장의 공신력도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자율 내리는 쪽은 칼 맞는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송태경 정책실장은 “대부업 시장에는 일반적인 시장이자율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 업계는 경쟁이 치열해도 이자율이 쉽게 내려가는 시장이 아니다. 채권자는 절대적인 우위에 있고 채무자는 절박한 처지에 몰린 상태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시장이 아니라 약탈적 시장”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이자제한법을 부활하고, 은행부터 사채까지 모든 금전 거래에 최고 이자율을 연 40%로 제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불법 사채시장에서 100%, 200%의 이자율이 적용되고 있다고 해서 국가가 법으로 정한 최고 이자 66%가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정희수 수석연구원은 “대부업 시장은 ‘그들만의 시장’이고, 모든 대부업체는 이미 66% 상한금리를 보고 뛰어들었기 때문에 경쟁이 활성화된다고 해서 이자율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부업체들은 자기들끼리 만난 자리에서 “먼저 이자율을 내리는 쪽은 칼 맞는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비록 이자율이 시장 경쟁논리에 따라 조금씩 떨어진다 해도, 예컨대 100년이 지난 뒤에 연 10%대로 내려간다면 그 사이에 66% 이상의 고금리에 허덕이다가 서민들은 다 죽고 없을 수도 있다.

△ 민주노동당은 고리대의 법정 상한 금리를 40%로 내리고 서민대출 전용 금융기관을 육성하라고 주장한다. 2001년 6월 열린 고리대 근절 캠페인. (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금감원이 올해 초 ‘사금융 이용실태’(5천여 명 설문조사)를 조사한 결과 사금융(등록·무등록 대부업체 및 불법 사채업) 채무자의 75%가 법정 상한금리(연 66%) 이상으로 돈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등록 대부업체의 평균 금리는 연 167%, 무등록 업체의 평균금리는 연 230%로 추정됐다. 현행 대부업법상 66%를 초과하는 이자는 불법이고 무효지만 입증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당국에 신고하고 반환 청구를 했다가는 사채업자들에게 가족들이 해코지당할까봐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이자제한법 부활에 반대하는 재정경제부와 금감원은 여전히 ‘대부업체 양성화론’을 외치고 있다. 아직도 음지에서 연 66%가 넘는 고리대금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 2만여 개로 추산되는 사채업자들을 제도권으로 끌어올려 양성화(등록 대부업)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 쪽은 “연 66% 금리를 더 내려 규제할 경우 대형 대부업체는 그래도 영업을 할 수 있겠지만, 중소형 업체들은 그동안 당국에 등록했던 업체들까지 다시 지하로 숨어들어 음성화돼버릴 것”이라며 “대부업 상한 금리를 연 40%로 낮추면 그동안 연 40∼66% 사이에서 돈을 빌렸던 저신용 서민들(신용등급 7∼10등급)이 어쩔 수 없이 연리 100%가 넘는 불법 사채업자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게 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급전 융통을 원하는 최하층 서민들의 자금 조달을 더 어렵게 만들고 피해를 확대시킨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재경부와 금감원은 법정 이자율을 내릴 의지가 없고, 대부업을 양성화하려면 오히려 현행 연 66%도 낮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적 대출 시스템 고민해야

고금리 규제로 서민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건 실체가 있는 주장일까? 저신용 서민들이 고금리 대부업체에서 끌어온 급전은 대부분 ‘또 다른 빚’을 갚는 데 쓰인다. 금감원의 실태조사를 보면 사금융 시장에서 융통한 급전을 사업자금·가계생활자금으로 쓴 경우는 39%에 불과하고 56%가 카드·은행빚 정리에 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카드 돌려막기를 위해 연 66%의 빚을 끌어오는 건 더 깊은 ’빚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들 뿐이다. 송태경 정책실장은 “절박한 처지에 내몰린 서민들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을 피하려고 사채자금을 급히 조달할 수 있더라도 이들은 더 큰 원리금 상환 부담과 고통을 안게 된다”면서 “정부는 대부업 양성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고금리를 규제하고 서민들을 위해 ‘공적 대출 시스템’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서민들에게 필요한 생활자금 중에서 병원비 대출은 보건복지부의 응급의료기금, 전세자금 대출은 건설교통부의 국민주택기금, 실직자 생활·창업자금 대출은 고용보험기금 등이 있는데, 이런 장기 저리의 사회보장적 대출 시스템을 서민들한테 적극 알리고 또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