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1700년대 초반 영국을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사우스 시(South Sea)사 주식 투기’에 뛰어들었다가 큰 손해를 본 사람들 중에는 천재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도 끼어 있었다. 당시 뉴턴은 주식시장 전망을 묻는 한 투기꾼에게 “나는 천체의 무게를 측정할 수는 있어도 미친 사람들의 마음은 알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랑과 욕망의 차이만큼 어렵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의 가격 상승이 합리적 투자의 결과인지, 광기 어린 투기에서 빚어진 거품인지는 뉴턴 같은 천재에게도 알쏭달쏭한 불가해의 영역일 뿐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유명한 풍자가였던 프레드 슈드는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는 것은 사랑에 들뜬 10대 소년에게 사랑과 욕망은 다른 것이라고 설명해주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 정부의 부동산 버블론에 대해 시장에서 아직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다. 한 민간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는 시민들.(사진/연합 이정훈 기자)

“물론 그 소년이 사랑과 욕망의 차이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사랑에 빠진 것인지 욕망을 품고 있는 것인지를 구분할 수는 없다.”

부동산 가격에 거품(버블)이 끼어 있는지를 명확히 판단한다는 것 또한 10대 소년이 사랑과 욕망을 구분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청와대,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등 정부 당국자들은 ‘부동산 버블론’을 앞다퉈 내세우고 있다. 합리적 투자에 따른 정상적인 가격 상승이라기보다 투기적 수요에 따른 거품으로, 곧 터질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정부는 서울 강남지역을 겨냥해서는 가격이 20~30% 정도 떨어질 것이라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고 있다. 확신에 차 있는 만큼 근거를 확보하고 있을까, 바람몰이를 통해 투기 심리라도 잠재우려는 고육책일까?

지금의 집값이 거품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논란이 대단히 복잡한 것과 달리 거품의 개념은 사실 간단하다. “정상적인 가격 이상으로 올라 있는 상태”(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내재가치보다 높은 시장가격”(권오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을 거품으로 흔히 정의한다.

문제는 ‘정상 가격’이나 ‘내재가치’(미래 수익을 현재화한)를 꼬집어내 측정할 수 없다는 데서 빚어진다. 박재룡 연구원은 “정상 가격의 기준을 찾는 게 힘들다”며 “버블이라고 하는 쪽이나 아니라고 하는 쪽 모두 명확한 논거를 대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버블을 주장하는 쪽은 ‘버블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으니 버블이다’는 것이고, 반대 쪽은 ‘버블인 증거가 없으니 버블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격이라고 박 연구원은 덧붙였다.

권오현 위원도 “버블이라고 하면 비누거품을 연상해 순간적으로 위태롭게 터지는 가시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정상수익률이나 할인율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많은 편차가 생기기 때문에 미래 수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내재가치를 산출해내는 건 대단히 어렵다”고 말했다. 따라서 버블의 존재에 대한 최종 판정은 사후적으로만 가능할 뿐이라고 권 위원은 설명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전·현직 의장인 그린스펀과 버냉키도 “버블이란 걸 그 당시엔 알 수 없고, 시간이 지난 뒤에 (사후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끼었는지, 끼었다면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뤄지기는 했다. 몇몇 방법론이 제시돼 있기도 하다. 버블이 발생하면 가격 변동폭이 커진다는 사실에 착안해 과거 추세보다 과도한 상승세인 경우 버블로 판단하거나 일정 기간의 소득에 견준 주택가격 비율을 잣대로 삼는 방법도 있다. 임대료에 대한 매매가격 비율이 장기적인 평균보다 웃도는지, 다른 나라보다 얼마나 높은지를 들어 버블을 판정하는 방식도 있다.

정부 쪽에서 드는 근거 또한 이런 부류다. 2003~2005년 국내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15.3%로, 같은 기간 임금상승률 7.4%의 두 배가 넘었는데, 이 시기 강남지역 아파트 값은 28%나 올랐다는 국민은행 통계가 한 예다. 정부에서 드는 정황은 이 밖에도 꽤 있다.

소득 대비 가격은 높지만…

한국은행이 분석한 ‘소득 대비 아파트 매매가격 추이’를 보면 1989~2005년 서울지역의 33평형 아파트 평균가격은 도시근로자가구 소득의 9.9배였고 지난해에는 10.3배로 높아졌다. 강남지역은 이 기간의 평균치가 13.6배였는데, 지난해 말 18.9배로 뛰었다. 국토연구원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조사에서 서울은 7.7배로 뉴욕(2.8배)이나 도쿄(5.6배)보다 월등히 높다는 결과도 심심치 않게 동원되는 통계치다. 지난해 가계의 금융자산은 8% 증가한 반면, 금융부채는 11.2% 늘어 금융자산에 견준 부채 비율이 50.4%로 처음으로 절반을 웃돌았다는 사실도 위험신호로 거론된다. 미국·영국·일본의 금융부채 비율은 20~30% 수준이다.

△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경고로 부동산 시장의 긴장감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거품 지역으로 꼽은 분당의 아파트 단지(왼쪽)와 서울 송파구 재건축 현장.(사진/ 왼쪽- 한겨레 탁기형 기자, 오른쪽- 한겨레 박정아 기자)

예전의 가격이나 지금의 소득, 또 다른 나라에 견줘 부동산 가격이 너무 높다는 이들 통계치는 언뜻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간단한 반박으로 쉽게 무너지는 취약한 토대 위에 서 있다. “특정 지역이 과도하게 올랐다는 사실과 버블은 별개의 문제”(박재룡 연구원)이기 때문이다. 오를 만해서 올랐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반박에 대답은 궁색해진다.

매매가격에 전세가를 견주는 방식도 논란을 부르기는 마찬가지다. 예컨대 강남지역의 경우 매매가에 견준 전세가가 대략 30% 안팎인데, 정부에선 50~60%를 적정 수준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전세가가 더 올라 그 비율이 50~60%가 되면 거품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물론 정부에서는 이와 거꾸로 매매가가 떨어지는 방향을 상정하고 있을 텐데, 시장의 움직임은 아직 그렇지 않다. 가격 하락세는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하는 것도 뚜렷한 한계를 보인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사는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과 다르다는 반박을 아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재호 목원대 교수(금융보험부동산학과)는 “개발 호재가 없는 상태에서 가격이 올랐다면 버블이지만, 정부가 온 국토에 기업도시니 혁신도시, 또 행정복합도시 같은 호재를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오른 가격은 버블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서울 강남권은 너무 많이 올랐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버블이 형성돼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부동산은 현재 가치로만 따질 수 없어 미래 가치로 보아 올라갈 여건이라면 버블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동산 버블을 둘러싼 논란은 이처럼 분분해도 올 하반기 이후 가격 전망에 대해서는 내림세로 보는 쪽에 힘이 실려 있다. 거품이 터지는 수준의 큰 폭의 하락일지에 대한 논란은 팽팽해도 금리 흐름이나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되는 ‘8·31 부동산 대책’(2005)의 영향을 감안할 때 집값은 조정 국면을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금리가 올라가고, 그동안 마련한 정부 정책이 시행되는 데 따른 효과가 종합적으로 겹쳐지면 값이 내려가는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룡 연구원도 “강화된 기준에 따른 부동산 세금이 하반기부터 부과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주택가격은 상당한 조정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8·31 대책이 작동하면 가격은 잡힐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정부에서도 그걸 알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연말에 다주택 보유자들은 선택의 갈림길

실제로 8·31 대책은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되게 짜여 있다. 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의 과세 기준이 9억원에서 6억원으로 낮춰지고, 과세 대상을 개인별 합산에서 세대별 합산으로 바꾸는 게 6월1일부터다. 또 내년부터는 1가구 2주택에 대한 양도세율이 현재의 9~36%에서 50%로 무거워진다. 또 실거래가를 등기부에 기재하도록 법으로 못박아 양도세 과세 역시 실거래가 기준으로 전환된다. 종부세 과세기준일인 6월1일 이전과 양도세 중과가 시작되기 전인 올 연말에 고가주택이나 다주택 보유자들이 선택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거품이 ‘터지는’ 수준에 이를지는 몰라도 거품이 ‘걷히는’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는 분석은 여기에 주로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정부의 바람대로 사태가 전개된다고 장담하긴 이르다. 값이 덜 오른 지역이 상대적으로 더 심한 침체 국면에 빠지는 뜻밖의 국면을 맞을 수 있고, 정부의 장담만큼 뚜렷한 하락세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정부는 신뢰 추락이란 후폭풍을 맞게 된다. 거품 붕괴가 부동산 담보대출을 매개로 금융권, 나아가 거시경제 전체를 무너뜨리는 극단적인 사태 또한 정부로선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확신에 찬 부동산 버블론은 ‘신뢰’를 건 한판 도박으로 비쳐진다. ‘천체의 무게’는 잴 수 없어도 ‘미친 사람들’(부동산 버블로 득보는 세력)의 마음은 다 잡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