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달리 외국인 투자자 배당금 부담 적고 내수와 수출 고르게 기여
최배근/ 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일본 경제가 10년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1995년 가격 기준으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90년 6.0%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91년 2월에 경기가 정점을 통과한 뒤 일본 경제는 최근까지 93년, 98년, 2001년 세 차례의 마이너스(-) 성장을 포함해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 있었다. 90년대 후반 들어 96년과 2000년에 각각 3.6%와 3.0%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경기회복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98년과 2001년에 각각 -1.0%와 -1.2%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최근까지 일본 경제는 ‘더블 딥 리세션’(반짝 회복 뒤 경기침체의 재진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쇼핑객들로 북적거리는 일본 도쿄의 루이뷔통 매장. 일본 경제의 성장에는 내수와 수출이 고르게 기여했다.(사진/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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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의존적 성향’ 줄어들어
그런데 일본 경제가 전기와 비교해 1.4%(연율 5.6%)의 성장률을 기록한 올해 1분기를 포함해 2003년 이후 5분기 연속 2%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국민경제 전체의 물가상승을 나타내는 지표인 GDP 디플레이터가 97년을 제외하고 93년 이후 현재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듯이,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의 수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나타나기 시작한 2002년 하반기 이후 물가하락의 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게다가 실업률도 5% 수준에서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기업의 실적 개선이 아직 개인소득의 증가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일본 경제가 본격적인 성장에 진입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최근의 경기회복이 내수 증가에 기반하고 있음을 근거로 든다.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2002년 36%, 2003년 72%, 그리고 올해 1분기에는 79%를 구성했다. 그러나 연평균 1%의 실질 GDP 성장률을 기록한 1991~2002년의 장기 불황기에도 내수의 기여도가 85%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정교하지 못하다. 2003년 이후의 경기회복 내용이 장기 불황기와 차이가 있다면 내수 증가의 내용, 그리고 내수와 해외수요의 기여가 균형을 이룬 성장이라는 점이다. 장기 불황기의 경우 민간소비와 비주거용 투자, 그리고 순수출이 성장의 기여도에서 각각 81%와 -12%, 그리고 15%를 차지한 반면, 2003년 이후 올해 1분기까지 평균 기여도는 각각 32%, 44%, 25%를 차지했다. 이는 과거 일시적 경기회복을 경험한 96년과 2000년의 성장이 수출 침체 속의 내수 중심이었다는 점과도 차이를 갖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의 경기회복은 과거와 달리 경제 주체들의 ‘정부 의존적 성향’이 줄어든 것도 중요한 차이로 지적한다. 장기 불황기에 정부 지출은 실질 국내총지출의 성장에서 51%를 기여했으나, 2003년과 올해 1분기의 재정지출이 각각 -0.6%와 -0.4%(연율)로 하락함으로써 재정의 건전화를 수반하고 있다.
최근 일본 경제의 부활은 한국 경제와 비교된다. 한국은 지난 1분기에 2003년 4분기 대비 3.2%(연율) 성장했으나, 일본은 5.6% 성장했다. 한국은 내수와 순수출의 기여도가 각각 -0.6%와 7.2%(나머지 -1.3%는 통계상 오차)로 ‘내수 후퇴 속의 수출만에 의한 성장’이었다. 게다가 내수의 기여도 -0.6% 중 정부 지출만이 플러스(0.4%)였고 민간소비(-0.8%) 등 나머지 내수 부문들은 모두 마이너스였다. 즉,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아 소비 위축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수는 재정지출에만 의존한 것이다. 성장 내용은 경상수지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양국 모두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지만 일본의 경우 무역수지와 소득수지 모두 흑자인 반면, 한국은 외국인들에게 지급하는 배당금이 크게 늘면서 소득수지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고 그 결과 무역수지 흑자 전체가 경상수지 흑자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금융산업, 잠에서 깨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과 금융 개방의 결과 대기업과 은행을 중심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배당 압력이 커진 결과다. 은행에 대한 외국인의 시장점유율이 27%인 한국과 달리 4%에 불과한 일본은 지속적인 설비투자와 기술투자의 덕택으로 기술력과 고품질이라는 강점을 가진 실물 부문이 회복되면서 장기 불황의 원인으로 지적된 금융산업이 부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