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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53만원으로 살아봐라! 저임금 노동자의 생존과 상관없이 공익위원들의 ‘노사 절충 테크닉’으로 결정되는 최저임금
지난 6월20일 아침 7시, 서울 강남 서울세관 옆에 자리잡은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 앞. “경총(경영자총협회), 어디 한번 한달 53만원으로 살아봐라.” 푸르스름한 안개를 헤치고 1시간 전부터 모여든 노동자 20여명의 구호가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최임위 4차 전원회의를 앞두고 열린 ‘최저임금 월 70만원 쟁취’ 집회다. 회의가 열리기 전 최임위 전체회의장 옆 식당에서 노·사·공익 최저임금위원(각 9명씩)들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창문 밖, 최저임금 선상에 허덕이며 숨죽인 노동을 하고 있는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를 외치는 구호 속에 노·사·공익위원들은 별다른 대화 없이 아침을 먹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공익위원 포섭하는 전술대결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최임위 전원회의는 몇 차례 회의를 거쳐 6월 말까지 최저임금을 결정해 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노·사·공익위원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구조를 띠고 있지만 최저임금을 사실상 결정하는 쪽은 9명의 공익위원들이다. 노사간에 요구안이 팽팽히 맞설 때 공익위원들이 조정안을 내거나 표결을 통해 노사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행 최저임금은 한달 51만4150원으로, 노동자생계비(민주노총의 29살 이하 미혼단신노동자 최저생계비 110만7천원)에 견줘볼 때 한마디로 절망적인 수준이다. 최저생계 보장, 저임금집단 해소, 소득분배 개선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2000년에는 최저임금 영향률(전체 노동자 대비 최저임금 적용대상자 비율)이 0.4%로 떨어져 사실상 제도가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 됐다. 그렇다면 이렇게 ‘역사적으로 하락’(상자기사 참조)하고 있는 최저임금은 어떻게 결정될까? 특히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최임위 공익위원들은 과연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일까?
시장논리 따지는 경영·경제학 교수들
최저임금 논의가 이런 식으로 흐르는 이유는 뭘까? 최임위의 구조적인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얽혀있지만 그 한복판에 있는 게 공익위원들이다. 최임위의 한 노동자위원은 “최저임금 결정에 오랫동안 참여한 소수 베테랑급을 빼고 공익위원 대부분이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 사이에서 입 닫고 가만히 있다. 그러다가 올해는 이 정도 범위 안에서 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공익의견을 내는데 그런 의견에 뚜렷한 기준도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대충 ‘분위기’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양상이다”고 말했다. 한 공익위원조차 “논리나 실증적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지난해에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올해는 너무 높지 않은 게 좋다는 식으로 말하는 공익위원들도 있다. 또 노동자 빈곤이나 임금격차 해소 등 최저임금의 취지에는 별 관심이 없고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만 고려하기도 한다”며 “공익위원이 경영·경제학 교수 중심으로 구성된 탓인지 임금은 본래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시장에 맡기려면 최임위 같은 법정기구를 만들어 저임금의 일정한 선을 강제하는 의미가 뭔가?”라고 탄식했다. 최저임금은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이라는 사회보장적 기능을 띠고 있다. 하지만 사회복지학 분야 공익위원은 단 한명도 없다. 경제·경영 논리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 보호라는 점이 소홀히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다가 표결 때 권한 행사”
최저임금은 노사간 임단협 대상이 아니다. 법으로 강제되는 사회적 제도다. 따라서 공익위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공익위원들은 직접 경기를 뛰지 않고 ‘심판’으로 참여할 뿐이다. 사용자쪽이 최저임금 0% 동결안을 들고 나와도 “왜 그런 안을 냈는지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라”거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안을 내냐?”고 한마디 따지고 드는 법도 없다. 그저 “잘해보자”거나 “노사 모두 과도한 주장은 자제해달라”는 정도의 의례적인 말만 할 뿐이다. 어느 쪽의 논리가 맞다 혹은 틀리다고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한쪽을 달래지도 않는다. 그랬다가는 괜히 노사 양쪽으로부터 시비만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한 사회의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공익위원으로서 최저임금의 기본정신 또는 현장 노동자들의 임금실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최종 결정해야 할 시간이 닥치면 공익위원이 회의를 주도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노동계 관계자는 “거의 발언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회의를 지켜보다가 막판에 표대결할 때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게 공익위원”이라고 말했다. 공익위원들은 “노사 모두 우리가 제시하는 최저임금 인상 범위 안으로 들어와라”며 공익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때부터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하나의 ‘게임’이 돼버린다. 해마다 최저임금 결정이 끝나면 노사 모두 “우리가 이겼다” 혹은 “패배했다”고 말할 정도다. 물론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생애는 이런 게임에 의해 한순간에 결정되고 만다.
생계비 대신 인상률이 게임의 법칙
이런 구조 탓에 노동자위원들조차 인상률 논의에 휩쓸리고 만다. 노동계 관계자는 “처음에는 최저생계비를 갖고 요구하지만 논의가 인상률, 즉 %로 흐르면서 우리도 거기에 따라가게 된다. 최저임금 싸움에서 공익위원 표를 하나라도 더 얻어 이기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한탄했다. 그러다보니 노사 모두 “생계비 논쟁을 벌여봤자 입만 아프다. 표결하는 마지막 날 보자. 어차피 공익위원들이 결정하는 것 아니냐”는 식이 돼버린다. 지난해 최저임금 8.3% 인상에 대해 노사 모두 아무런 근거도 대지 못한 채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설명에 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최저생계비로 대표되는 절대적 저임금의 해소에 있는 것이지 과거 대비 몇%라는 인상률로 따질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사용자위원들은 “노동계 요구안은 36.3% 인상안이다. 너무 심하지 않냐?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인상률이다”고 아우성친다. 절대액수가 형편없이 낮은 최저임금 현실은 외면한 채 인상률만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노동계 요구대로 최저임금이 한달 70만원이 된다면 20만여원 인상되는 것인데 인상률로 치면 무려(!) 36%에 이르게 된다. 최저임금이 워낙 낮기 때문에 단 몇만원만 올라도 인상률이 훌쩍 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상‘률’ 공방으로 논의를 몰아가는 배경에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결정된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은 해마다 똑같은 양상을 되풀이한다. 노사 모두 공익위원을 한명이라도 더 자기 편으로 끌어오려는 싸움이 벌어지고,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던지는 몰표 속에 결국 한두표 차이로 노동자쪽 안 또는 사용자쪽 안의 승패가 결정된다. 저임금 노동자가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비는 논의 과정에서 빠지고 만다. 이런 해묵은 줄다리기 판에서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중·고령층 여성 노동자, 시설·경비 노동자, 판매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과 한숨은 더 커져만 간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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