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재에 관한 다섯 개의 고해성사]
이혼한 아버지에 대한 고백…비뚤어진 남자와의 결별은 피차 다행이었으나
하루 아침에 빈털터리가 돼버린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관계’를 발견하다
▣ 땐싸/ 언니네트워크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수성가한 박 사장. 중소기업의 사장이자 일가친척의 가장으로 군림하던 그의 삶에서 유일한 오점은 “가난한 촌놈 출신” 운운하며 그의 권위를 인정치 않는 아내였다. 그의 이혼은 자신이나 아내 누구에게도 딱히 일방적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다만 오랜 불화 중 알고 지내던 강남 김 여사와의 재혼으로 이어지며 ‘이제는 정말 잘 살아보고 싶다’는 우아한 중산층의 꿈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인 것은 확실했다.
내가 몰랐던 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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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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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통통하다는 이유로 고작 6살 먹은 아이를 굶기라고 소리 지르거나, 엄동설한에 집안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밤샘 공부를 강요당한 기억만을 가진 나에게 그는 아버지라기보다는 ‘무서운 박 사장’ 혹은 ‘어린 시절 자주 배를 곯아 성격이 비뚤어진 촌놈’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나에게 그의 이혼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가족의 결핍’이라기보다는 ‘박 사장, 아니 해병대 박 조교로부터의 해방’이었을 따름이다. 게다가 박 사장도 만만치 않은 강남 김 여사와 그녀의 장성한 자녀와의 새 가족 안에서는 예전처럼 막가파 두목의 삶을 살 수는 없을 터이니 (살짝 얄밉지만)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정상적인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생각한 박 사장은 이전과는 달리 여자나 딸로서의 의무를 강요하기는커녕 먼저 전화해 안부를 묻는 등의 살가움까지 보여주었다(물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찰칵’ 끊는 전화 버릇은 여전했다). 이 산뜻한 거리감에 힘입어 나는 명절, 결혼과 같은 가족의 압력에서는 자유롭지만 소소하게 경제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행복한 20대를 향유했다. 물론, 그러한 지원을 받기만하고 입을 씻을 순 없는 일이다. 나는 그의 환갑이나 진갑 챙기기, 그리고 아주 늙었을 때 다소간의 도움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사장의 사업은 부도가 났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나의 예상과 달리 김 여사가 박 사장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집안 내에서 그의 위치가 땅에 떨어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박 사장, 아니 박 선생은 어려운 새 가족살이를 견뎌내고 있었고, 1년에 서너 번 갖는 나와의 만남은 그에게 한결 애틋한 ‘친정’ 같은 자리가 되고 말았다. “잘 지내냐?”는 질문에 살짝 한숨을 짓다가도 빈약한 상상력에 기댄 허세로 나를 안심시키려는 모습에서 이상하게도 권위나 돈이 아닌 그 남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전혀 몰랐던 그는 자수성가를 할 만큼 성실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좀 단순하거나 속물적인 기질도 있지만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못 봐줄 정도는 아니며, 자기 인생의 좌절을 견뎌낼 만큼의 낙관성과 의지가 좋아 보이기도 한다. 그는 요즘 의붓딸로부터 얻은 손자 자랑에 여념이 없으며, 여전히 새아내의 눈치를 본다. 사실 그는 그녀 몰래 주식을 해서 몇 번쯤 손해를 보았다. 또 스스로 나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보니 우리가 그런 관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 아버지…!!
가부장제의 원형이 돼버린 존재
나에게 ‘아버지’는 나의 가부장제 경험의 중심에 서 있는 ‘존재’였다. 그와의 경험이 곧 내가 이 세상의 가부장제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양식의 원형이 돼버린 존재. 그러나 서로의 삶을 측은해하고, 어려움을 투정할 수 있는 우리 모습에서 나는 ‘관계’를 발견한다. 물론 아직 우리의 관계는 몇 년 되지 않은 서먹함에 불과하고, 결국은 만날 수 없는 차이를 품고 있다. 그래서 우리 관계는 좋아질 수도, 아주 나빠질 수도 있다. 나는 굳이 어떤 쪽이기를 바라거나 노력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