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장과 접한 카자흐스탄 국경 도시 하르고스… 소련 붕괴 뒤 중국 제품의 중앙아시아 길목으로
카자흐스탄 알마티 · 하르고스= 글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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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중국 국경으로 향하는 옛 실크로드 천산북로. 뒤에 보이는 천산산맥을 배경으로 끝없는 초원이 펼쳐지고 가끔씩 양떼와 소, 말을 만나며 고즈넉한 마을들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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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보니 저 멀리서 온통 눈과 얼음을 뒤집어쓴 천산산맥이 우리를 따라 계속 줄달음친다.
중국에서는 톈샨, 카자흐스탄에서는 샨이라고 부르는 2천km 길이의 이 거대한 산맥은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 밸리에서 시작돼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거쳐 중국의 신장까지 네 나라의 국경을 넘어 쉼 없이 뻗어가고, 산 위의 빙하가 녹은 물은 강으로 흘러들어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린다. 산맥을 배경으로 펼쳐진 무뚝뚝하면서 소탈한 황토고원을 가르며 질주하니 다시 일리초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우리는 옛 실크로드 천산북로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소련 시절엔 국가가 해줬는데…”
광활한 초원을 북동쪽으로 가로지르며 달려간 곳에서 카자흐스탄과 중국이 만난다. 이른 아침, 국경 근처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쇼르막에서 목동 자나트(33)가 양 100여 마리를 몰고 나온다. “언제부터 양을 몰고 다녔느냐”고 묻자 그는 “태어날 때부터”라고 말하며 웃는다. 쇼르막 마을 남자들은 아침이면 교대로 양을 모아 초원으로 나갔다가 저녁에 다시 양들을 몰아 마을로 돌아온다. “여기도 중국 사람들과 중국에 사는 카자흐 사람들이 많이 온다. 내 말도 몽골에서 중국을 거쳐 데려왔다. 사진을 찍자고? 내 당나귀도 멋지게 나와야 되는데….” 처음 만난 외국인을 경계하지 않고 사람 좋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 사람들의 일상에서 국가와 국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까? “아니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국가에서 이것저것 많이 해줬는데 지금은 생필품이며 집이며 다 돈을 벌어 사야 하고 살기가 힘들다.” 찢어진 옷깃을 수줍게 감추며 그가 말한다.
검문소를 지나 드디어 중국의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와 접한 카자흐스탄의 국경 도시 하르고스(Khorgos·러시아식 발음은 카르고스)에 도착했다. 국경에서 4km 떨어진 곳에 민간인들이 허가를 받아야 들어가는 출입허가 구역이 있고, 국경 세관을 통과해 가득 물건을 싣고 오는 컨테이너 트럭들이 줄을 잇는다. 흰색의 카자흐 번호판 대신 중국 신장의 노란 번호판을 붙인 트럭들도 드물지 않다. 트럭뿐 아니라 꼭대기에 옥수수나 감자, 사과 자루를 묶은 낡은 승용차들도 계속 지나다닌다.

△ 국경 근처 쇼르막 마을에서 양떼를 몰고 나가던 목동 자나트. “소비에트 시절에는 국가가 다 해줬는데 지금은 돈을 벌어서 다 사야하기 때문에 살기 힘들다”면서도 사람 좋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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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카자흐의 국경 사이에는 상인들을 태운 ‘총알택시’들도 오간다. 중국에서 총알택시를 타고 하르고스나 주변의 비교적 큰 도시인 자르켄트까지 온 사람들은 그곳에서 카자흐스탄의 택시나 버스로 갈아탄다. 국경을 오가는 사람들을 태우는 택시기사 카이라타(32)는 “세금 징수원을 하다가 월급이 적어 4년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며 “손님들은 주로 중국 상인들과 세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카자흐 사람들은 중국에 사는 카자흐인 친척을 만나러 갔다가 옷 같은 것을 많이 사가지고 와 판다. 초기에 중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가져오는 물건은 90%가 양말과 속옷이었다. 카자흐스탄에 그런 공장이 없으니까. 이제는 옷과 과일, 야채 뭐든지 가져온다. 저기 트럭마다 속옷부터 양말, 농산물, 장난감 등 중국제 물건들이 잔뜩 실려있다”고 말한다.
하르고스 길가에는 대낮부터 많은 남자들이 서성이고 있다. 대부분 하르고스 근처의 자르켄트에서 온 이들은 중국에 가기 위해 기다리는 인력들이다. 상인들의 부탁을 받고 함께 중국으로 들어가 물건 싣는 것을 도와주고, 트럭을 운전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다. 이들은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바로 돌아가는 상인들 대신 트럭을 운전해 카자흐스탄의 최대도시 알마티의 시장까지 다녀온다. 이 자생적 ‘인력시장’ 인파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카말(42)은 “한번 갔다오면 50달러를 받는다. 일주일에 1~2번 정도 간다. 아침부터 저녁 7시까지 계속 중국에서 트럭들이 들어오는데 특히 오후에 많이 온다. 수입이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것 같아도 소련 시절에 비해 물가가 10배 넘게 올라서 별로 잘살게 된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는 또 “국경 마을에서 나고 자랐어도 한번도 중국에 가보지 못했는데, 93년부터 셀 수 없이 들어갔다 왔다. 카자흐 사람들은 중국에 있는 친척들을 보러가거나 물건을 가지러 가고, 물건을 팔거나 관광하러 오는 중국인들도 많다”고 말한다.

△ 중국과의 국경 도시 하르고스에서 중국으로 들어가 물건을 싣고 트럭을 운전할 일자리를 얻기 위해 기다리던 카자흐 사람들, 국경이 열린 뒤 수없이 중국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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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편에서 마을 여자들은 좌판을 벌여놓고 음료수며 과자, 담배를 판다. 막발(35)은 “중국 사람들은 주로 장사만 하러오고 물건은 안 사가는 편이다. 그래서 별로 손님이 없다. 비자를 받기가 힘들어 중국에 한번도 못 갔지만, 여기서 중국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동네 사람 중 비자를 받아 중국을 오가는 사람은 나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번다. 나는 하루에 200텡게(한국돈 2천원) 정도밖에 못 번다”고 말하면서도 사람 좋게 웃는다.
중-러의 긴장감 흐르던 국경
계속 호기심을 보이며 우리 주위를 맴돌던 아칙홀리(27)는 국경 넘어 중국의 이닝(쿨자)에서 살다가 10년 전 이곳으로 이사온 카자흐인이다. 재중 카자흐스탄 동포였던 셈인데,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되자 동포들이 많은 이곳으로 아예 살러왔다. “사는 거? 뭐 이곳이나 이닝이나 비슷하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많으니까 더 살기 좋다. 중국어를 하니까 중국 사람들 상대로 장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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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제 물건을 싣고 세관을 통과해 중국에서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컨테이너 트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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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중국을 일주일에도 1~2번씩 넘나드는 것이 이 국경 지역 사람들의 일상이 되었지만 1992년 이전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스탈린 사후 1956년께부터 수십년 동안 중국과 러시아는 갈등과 분쟁을 거듭했고, 바로 이 주변은 두 나라가 영토 문제로 치열하게 다투던 무대였다. 분쟁의 기원은 역사적이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한창 서구 열강들에게 난타를 당하고 있던 1871년 러시아군이 이 지역을 점령했고, 1881년 일리조약에 의해 하르고스강을 경계로 중국과 국경을 정했다. 1960년대 초 이 주변에서 여러 번 무력 충돌이 일어났고, 중국은 불평등조약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영토 반환을 요구하곤 했다. 그렇지만 중국이 이 지역을 차지한 것 역시 1750년대 청 건륭제가 유라시아 초원의 마지막 유목국가였던 준가르를 정복했을 때이고, 그 이전까지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몽골, 카자흐, 키르기스 등 여러 유목민들의 땅이었다는 점은 중국과 러시아 모두 안중에 두지 않았다.
오랫동안 긴장에 싸여 있던 국경은 소련이 무너진 뒤 1992년에 처음 열렸다. 그리고 12년, 이제 카자흐스탄은 중국 없이는 먹고 입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올해 초 카자흐스탄 정부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물건의 관세율을 높이고 트럭 크기를 줄이는 등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 한달 동안 국경을 봉쇄했지만 “중국 없으면 굶어죽는다”는 아우성에 다시 국경을 열었다. 카자흐 사람들이 입고 쓰는 식품, 옷, 가구, 장난감 등 모든 생필품과 식료품이 세계의 거대한 공장 중국에서 들어오며, 카자흐에서는 원유와 철강석 등 주로 원자재들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소련 시절 각 공화국들은 ‘우호무역’이라는 이름 아래 한 공화국이 소련 전체 시장을 대상으로 1~2가지씩의 대표적인 물품을 생산하는 분업체계 속에서 살아갔다. 효율보다는 한 공화국이 독자생존하지 못하고 서로 의존성을 가지도록 분배한 체계였는데, 소련 붕괴 뒤 이 의존 체계가 붕괴하면서 모든 것이 멈춰섰다.

△ 세관 근처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마을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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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부터 중국과의 ‘보따리 무역’은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렸다. 카자흐스탄 국립대학생 예스볼 사르타예프(21)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지질학을 전공하고 남부도시 침켄트의 수질관리연구소에서 함께 일했다. 소련이 무너지자 다른 수많은 공장들처럼 연구소도 문을 닫았고 그의 어머니는 다섯 식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이모와 함께 중국을 오가며 화장품·옷 등을 가져다 알마티의 시장에서 팔았다. 먹고 쓸 물건이 없고 일자리도 사라지면서 중국을 왕래하며 물건을 가져다 파는 것은 생필품의 공급선이자 중요한 일자리가 되었다. 카자흐스탄의 경제는 2000년 이후 매년 10% 이상씩 성장했지만 아직도 소련 붕괴 직전의 상황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소비에트가 공급해주던 생필품의 공백은 이제 중국이 모두 메우고 있다. 방찬영 카자흐스탄 경제경영대학 총장은 “카자흐 정부는 한편으로는 교역이 너무 중국에만 치중돼 그 영향권 아래 예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지만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고 대안도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광활한 시장에 넘쳐나는 중국 물건
자연스럽게 카자흐 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카자흐스탄 국립대학에 소련 붕괴 뒤 중어중문과가 생겨 어문계열에서 최고 인기학과가 되었다. 알마티의 제1역에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새벽 우룸치와 알마아타를 오가는 기차가 수많은 손님과 짐을 싣고 들어온다.
컨테이너 트럭으로, 또는 기차로, 또는 ‘보따리 상인’들의 짐으로 들어온 수많은 중국제 물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알마티 외곽의 도매시장 바라홀카, 오전 10시 거래가 시작되기 전부터 거리는 차들로 가득하고, 짐꾼들이 길을 비키라며 계속 소리를 질러댄다. 쇼핑백을 들고 물건을 잔뜩 사가는 알마티의 서민들, 약초에 불을 붙여 작은 냄비에 담아 돌아다니면서 주문을 외워주고 돈을 받는 멀리 타지키스탄에서 온 여인들, 카자흐 이곳저곳에서 오는 사람들뿐 아니라 이웃나라 우즈베크, 키르기스,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방에서까지 물건을 사러 몰려든 이들로 장관을 이룬다.
어림잡아 서울 남대문시장 전체의 5배가 넘을 듯한 광활한 이 시장은 소련 시대까지 중고차 시장이 있던 곳이지만, 소련이 무너진 뒤 중앙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시장이 됐다. 중국제 물건들이 이 광대한 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가 질릴 정도다. LG·삼성·현대의 전자제품이 이곳에서도 중국과 맞부딪치며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다.
5년 전부터 이곳에서 주차관리 일을 했다는 알마스(38)는 “여기 이 엄청난 물건의 90%는 중국제다. 나머지 10% 정도는 터키·이란·한국 물건이다. 중국 물건의 질? 카자흐 사람이라면 중국 물건의 질이 나쁜 것은 모두 알지만 다른 물건을 살 수가 없어 그냥 산다. 러시아·우즈베크·키르기스 사람들이 많이 오고 중국 상인들은 정말 엄청나게 온다. 남쪽지방 사람들은 야채와 과일 등을 들고 와 팔고 여기서 옷이나 신발을 잔뜩 사다가 그 지방에 가서 판다”고 이야기한다.
시장 한편에 ‘야롄(亞聯)상가’라는 간판이 붙은 큰 건물의 한 구역은 아예 중국인 상인들만이 모여 장사를 하는 곳이다. 카자흐나 러시아어를 할 줄 모르는 이곳 중국 상인들은 카자흐인 점원을 고용해 옷·스타킹·속옷·전자제품·꽃 등을 팔고 있다. 스타킹을 팔고 있던 중국 상인은 장사가 잘되느냐고 묻자 웃기만 한다.
카자흐스탄에는 석유산업과 광업을 빼면 일부 식료품 산업이 있을 뿐이다. 경공업을 일으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중국 제품과 도저히 가격경쟁이 되지 않는데다 1500만명 인구로는 내수 시장이 너무 작고 한국의 27배나 되는 거대한 국토는 수송 문제를 골칫거리로 만든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천연자원만 내다 파는 경제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며 여러 부문에서 고루 경제발전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사정도 비슷하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은 중국 물건이 쏟아져 들어와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는 중개무역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주변 국가의 상인들이 바라홀카에 직접 찾아와 물건을 사갈 뿐 아니라 카자흐 사람들이 직접 중국 물건을 다른 나라에 가져가는 중개무역상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알마티에 살면서 여행사 사업을 하고 있는 고려인 젊은이 조 나타샤(32·여)는 중국을 오가며 가구·그릇·옷 등을 가져다가 알마티와 이웃나라 키르기스의 수도 비슈케크에서 판다. 장사가 번창하자 그는 최근 비슈케크에 이 물건들을 팔기 위한 자신의 가게도 마련했다.

△ 알마티 외곽의 거대한 도매시장 바라홀까. 거대한 이 시장은 중국제 물건으로 가득하고, 카자흐는 물론 주변 국가들에서 물건을 사러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야롄'이라는 중국어 간판이 붙은 상가는 아예 중국 상인들이 모여 직접 장사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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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는 다시 주목받는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 중국의 신장은 수천년 동안 아시아와 유럽의 사람과 물건이 오가던 실크로드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18세기 이래 바닷길과 냉전으로 잊혀졌던 이 교역로는 이제 새롭게 붐비고 있다. 카스피해의 석유가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지인 동아시아로 넘어가는 길목이자 중국의 농·공산품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시베리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넘어오는 생명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낙타를 타고 오가던 이 길은 이제 트럭과 기차를 탄 상인들의 실크로드가 되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실크로드가 단지 낭만적인 길이 아니라 그곳의 부를 노리는 세력들의 각축장이 되었듯, 당연히 이제 이곳에 주목하는 힘있는 나라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무슬림 겁나고 석유 탐나고 [중국의 중앙아시아 전략]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와 카자흐의 국경 지역은 18세기부터 유목제국을 재건하려다 중국의 견제를 받고 무너진 부족들이나, 중국 지배자들에게서 탄압받던 이슬람교도들이 추격을 피해 서쪽으로 넘나들던 길이었다. 현재 100여 민족이 모여 사는 카자흐스탄 인구의 46%를 차지하는 카자흐인들은 대부분 수니파 이슬람교로 분류된다. 우리가 달려간 길에도 마을 외곽마다 초승달 모양의 장식을 한 이슬람식 묘지가 있었다. 비록 많은 젊은이들이 모스크에 평생 1~2번밖에 가지 않고, 한여름이면 여성들이 배꼽티를 입고 다닐 정도로 정통 이슬람교와는 거리가 있지만, 중국은 이슬람 인구가 다수인 이 이웃 독립국가에 자꾸 신경을 쓰고 있다.
중국은 가뜩이나 ‘골칫거리’인 신장위구르자치구 무슬림들의 독립운동이 새로 독립국가가 된 카자흐스탄에 자극을 받아 더욱 거세질 것을 걱정하면서도 카자흐의 자원, 특히 석유에 잔뜩 관심을 가지며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민족 문제로 인한 분열보다는 당장의 에너지 문제가 워낙 급하기 때문이다.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에너지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원유수입 세계 제2위로 떠오른 중국은 발전을 계속하고 나아가 지역적 또는 세계적 패권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국경을 접한 카자흐의 풍부한 석유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카자흐 정부와 계약을 맺고 카스피해 주변에서 유전을 탐사하고 석유를 퍼내고 있는 중국은 카스피해 북부 아트라우와 신장위구르자치구 서북부 두산쯔의 정유공장을 연결하는 3032.8km의 송유관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미 일부 구간의 공사를 마치고 올봄 제2공구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미국 세계전략의 틀을 짠 사람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 전 국가안보회의(NSC) 의장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중국은 자신의 서쪽에 러시아 세력보다는 상대적으로 독립된 일군의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선호하지만, 신장 지역의 투르크계 소수민족이 신생 독립국가들을 모델로 삼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국경을 넘어 전개되는 소수민족 운동을 부추기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아내고자 한다. 장기적으로 이 지역의 에너지 자원은 베이징의 특별한 관심 대상이며, 모스크바의 통제를 벗어나 이 자원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국의 주된 목표”라고 중국의 복잡한 속내를 지적한다.
중국은 옛 소련이 붕괴된 이후부터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국경 문제를 비롯한 현안들을 우호적으로 해결해왔다. 신장자치구의 분리주의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접경 국가들과의 안보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 1996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과 함께 ‘상하이5’를 주도적으로 창설했다가 2001년 우즈베키스탄을 참여시키면서 상하이협력기구(SCO)로 확대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지난해 상하이협력기구 회의에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현대판 실크로드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6개 회원국은 이 전단계로 자유무역지대 결성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3월 국가주석에 취임한 뒤 5월 말~6월 초 처음으로 해외 방문에 나선 곳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과 러시아였다.
국제문제전문가 이장훈씨는 최근 펴낸 <홍군 VS 청군>에서 “중국이 중앙아시아, 아세안 등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이들 국가를 ‘경제적 위성국가’로 만들려는 전략으로 이들 국가에서 원자재와 자본 등을 들여와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의 시장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제도적이며 구조적인 경제협력을 공고히 하려고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자유무역지대(FTA)를 창설하고 궁극적으로 옛 ‘실크로드’와 같은 동맹을 만들어 중앙아시아의 경제를 중국에 종속시킨다는 전략을 마련했다”고 지적한다. |
‘비자’라는 이름의 코미디 [입국과 출국의 우여곡절]‘큰소리 치고 왔는데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호락호락하지는 않구나.’
지난 2월23일 새벽 피곤한 몸으로 알마티 공항 의자에 길게 누워 나를 둘러싼 간호사들이 쏟아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어를 들으며 비로소 국경을 넘는 어려움을 실감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취재 일정 때문에, 3주일 넘게 걸린다는 일반비자를 포기하고 공항비자를 받기로 하고 날아간 카자흐스탄의 관문 알마티 공항에서 초청장 서류가 넘어오지 않았다며 비자를 못 내준다는 공항 직원들과 실랑이(사실은 일방적 애원)를 벌였다. 분명 카자흐스탄 외교부 직인이 찍힌 초청장 원본을 받아가지고 갔고 미리 접수를 했건만, 자신들이 손으로 기록해두는 공책에 내 초청장 번호가 없다는 이유로 비행기에서 내린 지 2시간이 넘도록 비자를 못 내준다는 것이다. 똑같은 절차를 밟아서 함께 간 선배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아무래도 자신들이 빼먹고 기록한 것이련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이미 시간이 새벽 1시가 넘었을 때 갑자기 하얀 간호사복을 입고 청진기와 혈압계와 약 등을 든 간호사 두명이 나타났다. 그리고 분명 방금까지도 멀쩡하게 그들 앞에서 열심히 항의하던 나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얼굴로 물 3잔을 따라주고 약(약간의 두려움에 떨면서 무슨 약이냐고 묻자 비타민이라고 했다)까지 먹인 뒤 의자에 누우라고 하고는 30분 넘게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 열심히 회의를 하는 분위기였다.
갑자기 부조리극의 한 장면으로 변한 공항 한켠에서 나는 차라리 웃음을 참느라 고통스러웠다. 나중에 설명을 들어보니 옛 소련 시절 ‘내 잘못이다’라고 말하면 책임을 지고 비판과 처벌을 받아야 했던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좀처럼 실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들은 잘못이 없고 내 잘못인데 특별히 몸이 좋지 않은 나를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비자를 내준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그런 연극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비행기에서 내린 지 3시간 만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카자흐스탄의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무사히 끝난 줄 알았던 국경 통과는 2부가 남아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들이 ‘출국 불가’ 상태로 비자를 내줘 나중에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로 갈 때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다. 이 지역 국가들에 대한 여행기에는 ‘비자 때문에 어이없게도 경찰서에 갔다’는 등의 모험담들이 빠지지 않는다. 적어도 비자와 관련해서는 이 나라에서 진정한 관료주의가 무엇인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옛 사신들은 왕의 친필서한이나 통행증 등을 지니고 국경을 넘었을 테지만, 근대 국민국가의 경계가 확실해진 뒤에는 국가가 국민들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해 비자를 만들었다. 비자는 개인이 타국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해당 국가의 대사나 공사, 영사로부터 여권 검사를 받고 서명을 받는 것이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주로 군사상의 이유에서 스파이를 방지하기 위해 비자 제도가 발달했는데 전후에도 국내의 보안, 노동 문제나 이민제한 등의 목적으로 계속되었다. 비자(visa)는 라틴어로 ‘보였다’ ‘검사가 끝났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