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 카스피해 텡기즈 유전. 카스피해 석유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파이프'를 둘러싼 신경전이다.(텡기즈셰브로일 제공)

1996년 프랑스의 당시 외무장관 에르브 드 샤레트는 “카스피해 지역은 석유의 새로운 엘도라도이며 세계에서 에너지 개발의 가장 유망한 장소가 되었다”고 말했다. 엘도라도는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고 유혹하며 불러들인다. 카스피해는 19세기 말부터 석유 자원으로 유명했다. 석유 전문가들에 따르면, 카스피해 지역에서 확인된 석유 매장량은 2천억배럴로 세계 총 매장량의 15~18%에 달하며, 그 중 5분의 3 이상이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 연안에 매장돼 있다. 미 에너지부는 카스피해 석유 매장량을 좀더 올려잡고 있는데,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2700억배럴의 석유가 이곳에 있다고 추정했다. 유일하게 페르시아만 지역만이 약 6750억배럴로 더 많은 석유를 갖고 있다.

카스피해에만 석유 2천억배럴 매장

1992년까지 이 지역의 석유와 가스 자원은 이란의 소유분을 제외하고는 소련이 독점하고 있었으나 소련이 무너지자 중앙아시아의 신생 독립국들이 통제하게 되었다. 이 나라들은 에너지 자원을 서방으로 수출하고 싶어했고, 미국·영국·프랑스 등의 석유 메이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노다지를 차지하기 위해 카스피해 유전으로 몰려들었다. 지난 10년 동안 아모코, 셰브론, 엑슨모빌, BP, 셸, 엘프 아키텐, 아집, 루코일, 중국국영석유회사 등 대규모 에너지 회사들은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와 가스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해당 국가 기업들과의 협력 계획을 발표하고 탐사와 개발 권리를 얻었다.

카스피해 석유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파이프’를 둘러싼 신경전이다. 카스피해 자체가 육지로 둘러싸여 있어 세계 곳곳으로 에너지 자원을 내보내려면 여러 나라를 철도나 파이프라인으로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데는 엄청난 돈이 들 뿐만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의 신경전도 만만치 않다. 카스피해는 체니 부통령이 “자고 일어나서 카스피해만큼 유명해진 지역은 전례가 없었다”고 강조할 만큼 미국이 눈독을 들이는 지역이다.

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에너지 안보를 미국 국가안보에 명백하게 존재하는 위기의 문제로 규정했으며, 페르시아만 지역이 전쟁 등으로 혼란에 빠질 경우 석유 공급의 교란으로 미국 경제가 받는 충격을 감소시키기 위해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했다”고 설명한다.

기존의 송유관은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있는데, 러시아의 송유관을 통해서만 석유가 외부 시장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이곳 석유가 러시아의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현재 러시아와 표면적인 협력 관계가 유지되고 있지만, 러시아가 이 송유관을 미국을 견제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한편 미국이 이 지역을 장악한다면 이른바 ‘브릭스’(BRICs)라고 불리는 신흥 강대국들 중 멀리 떨어진 브라질을 제외한 중국·인도·러시아를 한꺼번에 견제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미국·영국 등의 석유 메이저들은 이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을 위해 이미 50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그루지야의 흑해 연안 도시 수프사까지의 첫 번째 파이프라인이 1999년 완공됐고, 2001년 카자흐스탄 텡기즈 유전에서 러시아의 노보로시스크 항구까지의 송유관이 완공됐다. 2005년까지는 바쿠에서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의 지중해 항구 세이한으로 이어지는 BTC 파이프라인이, 2007년 초까지는 바쿠-트빌리시-에르즈툼(터키의 내륙 도시)간 SCP 가스 파이프라인이 완공될 예정이다.

러시아의 영토를 거치지 않는 BTC 라인은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이는 카드로 들고 나왔는데, 총 연장 1760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송유관이며 하루 100만배럴을 수송할 수 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자국 내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애쓰는 중국 역시 아뜨라우 북쪽의 악토베에서 카자흐스탄을 동서로 관통해 신장위구르자치구까지 3000km가 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로 카자흐 정부와 계약을 맺었으며, 1997년부터 5년 정도의 준비와 조사 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공사를 시작한다.

미국과 러시아의 각축전은 군사적인 경쟁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원조를 받은 카스피해 국가들의 군사력은 꾸준히 증강됨에 따라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월9일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의 도학 카스피해 공동 석유 개발, 군사 안보 분야 협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뒤이어 2월28일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도 아스타나에 나타났다. “국제 테러리즘의 북상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며 카스피해 주둔 카자흐스탄군에게 장비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마이클 클레어는 <자원의 지배>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직접 부딪칠 가능성은 없지만, 두 나라의 지원을 받는 중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대리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다”고 내다봤다. 모스크바가 체첸을 공격한 것, 올해 초 예두아르트 세바르드나제 대통령의 전격적인 퇴진 사태를 몰고 온 그루지야 사태, 이라크전 등이 모두 이곳 석유와 관련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