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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01월15일 제4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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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에 혹이 달렸네

극미세 나노입자의 독성 인체 유해성 논란… 혈관 타고 체내에 축적돼 폐 손상 등 일으켜

<쥬라기 공원>의 저자인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은 최근작 <먹이>(Prey)에서 미래 사회의 파멸적 양상을 그렸다. <먹이>는 마이크로 로봇 구실을 하는 나노 파우더 구름이 실험실을 탈출해 인간을 공격하는 내용을 줄거리로 삼았다. 과학자 주리어는 실리콘밸리의 자이모스사에서 나노로봇을 개발한다. 이 로봇은 나노기계를 모형으로 삼은 것으로 자율적 운동·지각 능력을 지닌 첨단로봇으로 병정개미들처럼 서로 협력하도록 프로그램됐다. 그런데 이 나노로봇들이 자기복제를 통해 거대 군단을 만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다. 저자의 과학적 상상력에 감탄할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나노로봇의 미래는 소설 속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기에 뒷맛이 개운치 않다. 나노기술의 놀라운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창조적 영감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나노기계는 자기복제를 통해 생물학적으로 재탄생할 것인가. 자기조립성 생체 시스템을 갖춘 나노기계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GAMMA)

그린피스 나노 연구 ‘모라토리엄’ 촉구

정말로 나노기술은 꿈의 신기술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 나노기술이 열려라 참깨식의 주문으로 여겨지는 형국이다. 나노기술은 전자산업과 플라스틱, 철강산업 등을 합친 것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환상적 전망에 사로잡혀 있다. 실제로 온갖 신상품에 ‘나노’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나노’가 들어가야만 투자자금이 모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노기술의 잠재적 위험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국제적인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까지 나노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나노입자 연구개발 ‘모라토리엄’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린피스 영국지부는 ‘미래의 기술, 현재의 선택’이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나노기술이 DDT 살충제나 원자력 발전, 유전자변형농산물(GMO)처럼 사회적 충격을 안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노’(nano)가 ‘노노’(nono)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그동안 환경 분야에서도 나노기술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나노기술로 무한정 생산할 수 있는 식량과 물, 에너지 등도 나올 것으로 예측됐다. 또한 나노필터링 기법을 적용해 물을 정화하고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공장 필터 시스템 등에서 불순물의 초미세 입자까지 걸러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지구적 문제로 꼽히는 쓰레기도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였다. 나노기술로 상품을 만들면 크기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이나 제품을 폐기할 때 발생하는 쓰레기량도 획기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부푼 기대 속에서 나노기술에 드리운 먹구름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생명윤리연구소 피터 싱어 박사는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나노기술이 일상에 들어오면서 초소형 장치에 따른 사생활 침해가 비일비재할 것이며, 탄소 나노튜브 등에 의해 신종 환경오염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나노기술이 환경 해결사와 지구 오염원 사이에 놓인 형국이다.


△ 나노입자가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견고한 세라믹이나 적외선·자외선 차단제, 환경 촉매제 등으로 활동하는 나노입자.

나노기술을 둘러싼 논란이 어느 날 갑자기 돌출된 것은 아니다. 물질이 나노 수준으로 작아지면 특이한 물리화학적 성질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나노기술은 놀라운 가능성을 발휘했다. 문제는 물질의 입자가 나노 크기로 작아지면 독성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굵은 흙먼지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의 초미세 먼지들이 인체에 더 해로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노입자가 코로 들어가면 기도나 점막에서 걸러지지 않고 폐포 깊숙이 박히거나 뇌로 이동하기도 한다. 나노입자가 인체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나노 물질 특유의 독성이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석영이나 석면만 해도 덩어리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을 다루는 작업자들은 규폐증이나 폐암 등에 걸리기 쉽다. 이는 작업자들이 숨을 쉬면서 들이마신 입자들이 폐조직에 들어가면 나오지 않고 그대로 쌓이기 때문이다.

“화장품은 안전한 고분자 사용해 인체에 무해”

요즘 나노 구조체가 첨가된 화장품은 고급 화장품으로 자리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미국의 나노페이스 테크놀러지사가 주도한 나노 화장품 시장에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들도 잇따라 참여해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미 연간 10억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한 나노 화장품은 피부 세포층에 선택적으로 통과해 기존 제품의 성능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화장품에 쓰이는 나노 전달체의 안정성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태평양기술연구소 피부과학연구소 장이섭 소장은 “기존 고분자 물질을 이용한 나노 파우더는 화학적으로 안정성이 입증되었다. PMMA나 PLGA, PLA 등 생체에서 분해되는 합성 고분자는 인체에서 혈관과 접촉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피부 각질 부위에서 분해되기에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 새로운 물질인 탄소나노튜브는 안전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지난해 8월 국제 나노기술 전시회에서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단이 개발한 나노기술 관련 반도체 소자를 살펴보고 있다.(연합)

하지만 이미 시장에 출시된 자외선 차단용 선크림 제품은 산화아연이나 아산화티타늄 등 햇볕 차단 입자를 극미세 분말로 만들어 나노 구조체에 담는다. 이들은 크림이 피부에 드러나지 않은 채 햇볕이 피부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한다. 나노 유해성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이런 제품이 인체의 면역체계에 스며들어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피부 각질까지만 침투하더라도 일부는 인체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산화아연 같은 물질은 인체에 안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이 반응성이 뛰어난 나노 입자로 바뀌면 사정이 달라진다. 한 연구에서 선크림에서 추출된 나노 크기의 아산화티타늄이 피부세포의 DNA를 손상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물론 몇몇 실험만으로 나노의 효용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장기적인 인체 안전성을 속단하기는 이르다.

나노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새천년이 시작되는 해부터 쏟아졌다. 미국 컴퓨터업계의 거물인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수석과학자인 빌 조이는 <와이어드>지에 발표한 ‘미래는 왜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라는 글에서 “나노기술이 인류를 멸종 위기의 생명체로 만들 가공할 만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라이스대 나노기술생물환경센터 비키 콜빈 소장은 지난해 4월 미 하원과학위원회에 출석해 “나노기술은 전성기를 맞은 연구 분야이지만 ‘나노 독성’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 나노입자가 더 퍼지기 전에 안전성을 평가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런 지적이 있음에도 나노기술 연구에서 환경 영향 부문의 비율은 지극히 낮다. 우리나라는 나노기술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면서도 유해성 여부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는 실정이다.

최근 나노기술의 유해성은 ‘가설’에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탄소나노튜브는 기존의 물질과 전혀 다른 물질인 만큼 예기치 않은 독성이 나타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항공우주국 존슨우주센터와 텍사스대 연구팀이 지난해 3월 0.1~0.5mg의 탄소나노튜브를 용액 형태로 쥐의 폐조직에 주입한 뒤 90일 동안 관찰했는데 그 결과 강한 독성을 보였다. 나노튜브가 시간이 지날수록 폐 속에서 서로 뭉쳐 조직을 손상시켰던 것이다. 미국의 화학회사 듀퐁사의 실험에서도 나노튜브를 쥐의 허파에 주입했을 때 쥐들의 숨관을 막아 실험쥐의 15%가 곧바로 숨졌다. 이렇듯 나노입자는 동물실험에서 치명적인 위험을 일으키는 것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현재 주기율표의 원소 가운데 44개 이상이 나노 파우더 형태로 거래되고 있다. 이들은 테니스 라켓, 얼룩방지 바지, 화장품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DDT · 석면의 악몽을 되풀이할 건가

현대사회에서 기술의 위험성을 무시하며 신뢰를 저버린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195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정부는 모기를 잡기 위해 항공방제로 살충제(DDT)를 살포했다. DDT는 2차대전 때 사용한 화학무기의 원료로 재고 처리를 위해 살충제로 개발한 것이었다. 당시 이에 대한 항의가 빗발쳤지만 주정부에서 무시했다. 그 여파로 살충제에 곤충이 죽고 이를 새와 닭이 쪼아먹어 먹이사슬이 DDT에 오염될 수밖에 없었다. 광우병만 해도 당시 영국에서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받아들였다면 전 세계적인 공포는 없었을 것이다. 원자력은 두말 할 나위도 없는 ‘환경재앙’의 화약고이다. 나노입자의 독성을 무시한 채 개발에 몰두한다면 나노기술이 원전 수거물 처리시설처럼 국가적인 골칫거리로 떠오를 수도 있다. 지금 나노입자가 석면, DDT, 원전 등의 위험을 안고 지구촌 곳곳을 떠다니고 있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