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2 ] 2003년10월17일 제480호 

집값에 금리의 칼을 빼들어라

거품 터지는 게 두려워 무기력한 처방에 급급한 정부… 지나친 저금리는 끝내 건드리지 않아

주택시장 과열이 식지 않고 있다. 갈 곳 없는 자금이 모두 몰리는 상황. 정부의 땜질식 처방은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젠 정면대결해야 할 때가 아닌가. 왜 지나친 저금리는 건드리지 않는가.

“전 국민이 부동산 전문가가 돼 있는 것 같다.” 한 공인중개사의 말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집값을 화제로 삼고, 앞으로 집값이 어떻게 움직일지 나름의 근거를 댈 줄 안다는 것이다. 한때 전 국민이 주식 열풍에 휩싸이던 때와 비슷한 모습이다. 화제가 주식에서 부동산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방향도 분명하다. 그동안 집값이 많이 올랐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더 오를 것’이란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서민 소득 ‘강탈’하는 집값 상승

10월 초 파인드올부동산(www.findhouse.co.kr)이 네티즌 1449명을 대상으로 ‘9·5 대책 이후의 투자전략’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결과, 전체 응답자의 46%인 666명은 “그대로 아파트에 투자하겠다”고 대답했다. 파인드올부동산 관계자는 “집값 안정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아파트가 여전히 인기 투자상품”이라면서 “특히 아파트와 토지, 상가 등 부동산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의 비중이 전체의 90%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코스닥 지수가 200을 넘기 전부터 거품이라는 경고가 많았지만, 200을 넘긴 뒤에도 40%나 폭등한 적이 있지 않으냐”며 “거품 붕괴 경고가 거의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집값을 잡겠다던 정부의 약속과 처방이 공염불이 돼온 까닭이다.


사진/ 서울 잠실의 한 재건축 대상 아파트. 집값은 올 들어서도 7월까지 4.7%가 추가 상승했다.(박승화 기자)

집값이 오르는 것은 국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나라의 부가 늘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부가 이전될 뿐이다. 10월5일 부동산뱅크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의 20평대 한 인기 아파트의 호가는 2억원에서 2억3천만원이다. 이자율을 5%로 잡을 경우, 이 집을 소유한 사람은 임대료로 연 1천만원가량을 자신에게 내고 있는 셈이다. 전국의 집값이 똑같이 오른다면 그에게는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 자신에게 내는 임대료가 올라갈 뿐이다. 그러나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집값 상승이 그만큼 임대료 부담을 키운다. 득을 보는 사람은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이다. 주택의 적절한 공급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집값 안정쪽에 부동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998년 이후 집값 움직임은 이런 기대를 철저히 배반했다. 집값 상승은 서민의 소득을 ‘강탈’하고 있다. 2001년 전국 도시의 주택가격은 9.9%(아파트 14.5%) 올랐고, 2002년에는 16.4%(22.8%) 올랐다. 올 들어서도 7월까지 4.7%(6.5%)가 추가 상승했다. 1998년 12월 이후 4년9개월 동안 아파트 가격은 평균 2배 뛰었다. 이는 지난 1987년~91년 사이 4년간 1.3배 가까이 오른 것에 육박한다. 외환위기 이후 가뜩이나 국민간 소득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는 것이다.

거품 징후 곳곳에서 드러나

문제는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비정상적으로 뛰어오른 값이 영구적으로 유지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집값이 올라 서민이 고통받는 것은 첫 번째 단계일 뿐이다. 거품이 한껏 커졌다가 붕괴하면서 생기는 경제불안으로 인한 고통도 경제적 약자들이 가장 많이 겪게 된다. 그런데, 1998년 이후 상승세를 이어온 우리나라 집값이 이미 거품 수준이며, 거품 붕괴가 임박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 청와대 수석비서관 · 보좌관 회의. 정부의 처방이 효과를 보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청와대사진기자단)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최근 <주간경제>에 실은 글에서 “현재 우리나라 아파트 가격에는 적지 않은 거품이 형성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파트 가격 상승은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자기실현적 기대심리에 기반하기 때문에 실물경기 등 근본 여건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거품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의 지적은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이미 삼성경제연구소 등도 몇달 전 거품을 경고한 바 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주택가격이 정상인지를 딱 떨어지게 계산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가계소득 증가에 비해 집값이 지나치게 오르는 것 자체가 첫 번째 거품 징후로 볼 수 있다. 최근 3년간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경상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4배를 넘는다. 주택가격 상승률이 임대료 상승률보다 높은 것은 투기적 동기에 따른 주택 수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아파트 매매가격과 전세가격과의 차이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파트 전세가격은 지난 2001년 매매가격의 64.4%로 정점에 이르렀다가 이후 계속 떨어져, 2003년 8월 현재는 52.4% 수준이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집을 산 사람들은 집을 빌려쓰는 사람보다 매우 높은 기회비용(임대료)을 부담하고 있다는 얘기다. 누군가가 앞으로도 더 비싼 값에 그 집을 계속 사주지 않는다면 집값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집값 급등을 우려하고 올 들어 10차례에 걸쳐 안정대책을 내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다시한번 종합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그런데도 가격 상승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정부의 처방이 사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결여한 탓이라고밖에 해석할 도리가 없다. 정부는 아파트 가격 상승을 주도한 것은 서울 강남이며, 강남 아파트 가격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금리 정책에 한은 내부에서도 비판

실제로 강남 아파트값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강남 아파트값은 2001년 22%, 지난해 30.8%가 올랐고 올해 들어서도 7월까지 7.4%가 올랐다. 강남의 31평짜리 한 아파트는 현재 7억원을 넘는다. 강북의 같은 평형대 아파트값은 3억원가량. 따라서 강남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4억원에 대한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다. 이자율을 5%로 계산하면 연간 2천만원이다. 교육여건 등 편의의 비용으로 매달 170만원을 부담하는 셈이다. 강남의 주거 여건이 다른 지역에 비해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면 그것은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적인 비교가 아니다. 집값 상승은 전국적인 현상이고, 강남 등 특정 지역의 상승률이 더 높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강남 지역 아파트의 수요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사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중개사무소에 나붙은 아파트 매물 공고. 집값 상승은 서민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박승화 기자)


대다수 전문가들은 집값 폭등의 원인을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지나친 저금리와 대규모 부동자금”이라고 꼽는다. 저금리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한,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사람들의 투기 심리를 잠재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올 들어 나온 정부 대책들이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한 채 오히려 투기 심리를 더 부추긴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정부는 모든 대책을 총동원하면서도 ‘금리’는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가뜩이나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금리를 올릴 경우 내수경기가 더 침체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변명이다.

금리를 변경하는 데 신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의 지나친 저금리 정책에는 한국은행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은 연수원의 한 과장은 최근 한은 내부 게시판에 올린 <최근 부동산 급등에 관하여>란 글에서 한은의 금리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금리를 균형금리 이하로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정부의 논리를 반박했다. 우선 지나친 저금리는 한계기업의 퇴출을 저지시켜 오히려 설비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 또 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릴 경우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가계의 주거비 부담이 늘고, 이는 임금인상 요구와 생산비용 상승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택 구입의 증가는 가계대출의 증가로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키우기 때문에 집값 상승이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도 못한다. 이런 주장은 그동안 학계에서 제시된 금리인상론과 일치한다.

여전히 논란의 초점은 금리를 올릴 경우 생길 부작용에 대한 것이다. 금리인상을 경계하는 사람들은 금리를 올릴 경우 부동산 가격 하락과 함께, 가계대출의 부실화로 금융기관들이 다시 부실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이런 우려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리를 그렇게 많이 올릴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많다. 금리를 소폭 인상함으로써 신호를 주는 것만으로도 부동산 거품이 더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폭 금리인상은 경기침체를 가속화하지도 않는다.

집값 떨어지는 것이 더 두려워?

그러나 정부는 새로 내놓을 종합대책에서도 금리는 건드리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국은행도 10월9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정부 한쪽에서는 부동산으로 향하는 돈을 다른 쪽으로 끌어내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 10일 열린 증권·투신사 사장단 회의에 앞서 정부가 ‘증시 활성화 방안’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차피 주가도 내재가치 이상으로 급등하면 거품 붕괴의 후유증을 겪게 된다. 그런데도 자금의 새로운 출구를 찾는 방식으로 집값 문제에 대응하려는 것은 집값 급등보다는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더 우려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미 투기 심리가 만연한 상황에서, 이렇게 정부의 속내가 뻔히 보이는 한 투기 심리를 가라앉히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그동안 수많은 대책을 내놓았다. 집값이 지나치게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집의 공급을 크게 늘리고, 보유세를 높여 집을 투자나 투기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만들겠다고 했다. 다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정책들의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지금 당장의 투기 심리를 가라앉히는 일이다. 지나치게 부푼 거품은 결국 터지게 마련이고, 거품이 커질수록 후유증은 커진다는 것은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상식이다. 그런 상식을 망각한 경제관료들의 도박이 한국 경제를 갈수록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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