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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기록은 어디 갔는가 정부 주요회의의 회의록 마저 부실…공공기록 생산·관리·보존은 참여정부의 기반
〈한겨레21〉은 시행령 개정 뒤 주요회의 회의록 작성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행정자치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신청했다. 한달 만인 5월23일 입수한 ‘참여정부’ 제18회 국무회의 회의록 가운데 실제 회의 내용은 5장에 불과했다.
지난 1980년 초 미 연방 에너지부는 핵 폐기물과 관련해 흥미로운 계획을 추진했다. 관련 학자와 실무자를 포함한 전담반(Human Interference Task Force)을 구성해 핵 폐기물 매립지역에 대한 정보를 1만년 뒤 후손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줄 것인가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 내 환경단체들은 “1만년이 지나도 방사능 폐기물의 위험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폐기물 처리에 관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지만, 한국내 기록학자들은 이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비공개 사유의 30%가 기록 미비
참여민주주의가 정보공개에서 출발한다면, 정보의 처음과 끝은 기록이다. 기록이 없으면 공개할 정보도, 민주적 참여도 있을 수 없다. 정부가 지난 1999년 1월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기록관리법)’을 제정하고, 정부 주요 회의에 대한 회의록 작성을 의무화하는 등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던 어두운 과거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공공기록관리법 시행 이후 우리 사회의 기록문화는 바뀌고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하는 이들은 정부 안팎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가 지난해 5월 펴낸 <2001년도 정보공개 연차보고서>를 보면, 국민들이 공개 청구한 정보를 공공기관에서 보유하고 있지 않아 비공개 되는 경우가 비공개 사유의 30%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보고서를 보면, 2001년 한 해 동안 모두 8만165건의 정보공개 신청 가운데 전부 또는 부분 공개한 것을 뺀 비공개 정보는 7323건으로, 이 가운데 2149건이 공개요청 정보를 해당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행자부는 “공공기관들이 정확한 정보목록을 비치하고 정보공개에 대한 종합적 안내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부실한 기록관리는 차관급 이상이 참석하는 정부 주요회의의 회의록이 제대로 작성되지 않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국가기관에서 기록관리 실무를 맡고 있는 한 현직 공무원은 “공공기록관리법 시행 뒤 나아진 것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애초 1999년 제정 당시 공공기록관리법 시행령 제8조 ‘회의록 작성’ 항목에서는, 주요 회의에 대해 △회의명 △일시 및 장소 △참석자 및 배석자 명단 이외에 상정안건 △발언내용 △결정사항 및 표결내용 등을 기록하도록 했다. 특히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회의’, ‘주요 정책의 심의 또는 의견조정을 목적으로 차관급 이상의 주요 직위자를 구성원으로 해 운영되는 회의’ 가운데 전문관리기관의 장(정부기록보존소장)이 지정하는 회의는 속기록을 작성하거나, 발언요지를 녹음기록을 첨부하는 방법으로 회의록을 생산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공공기록관리법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개혁적 조치로 평가받았다. 중요 정부정책의 결정 및 집행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겨지지 않아 책임행정을 구현할 수 없었던 관행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규정이었기 때문이다.
회의에서 누가 무슨 발언을 했는지…
<한겨레21>은 시행령 개정 뒤 주요회의 회의록 작성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4월23일 행정자치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신청했다. 한달 만인 5월23일 입수한 ‘참여정부’ 제18회 국무회의(4월22일치) 회의록은 A4 용지 7장 분량으로, 이 가운데 표지와 참석 및 배석자 명단을 뺀 실제 회의 내용은 5장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환경부가 내놓은 의안 제170호 ‘악취방지법안’의 차관회의 수정사항을 포함해 재경부·행자부 등 각 부처가 내놓은 7개 의안에 대한 심의 과정에 대한 내용이 2장 분량을 메우고 있었다. 의안을 발의한 장관의 제안설명과 이견이 없었던 토의, 원안대로 의결된 의결과정이 각각 한줄씩으로 적혀 있을 뿐이다. 나머지 내용도 부실하긴 마찬가지였다. 건설교통부차관이 철도노사협상 타결에 관한 보고를 했다는 게 3문장으로 정리돼 있고, 이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 역시 2문장으로 요약됐다. 또 이날 토의안건이었던 ‘외국인 직접투자, 어떻게 유치할 것인가?’란 주제에 대한 토의 역시 “최근의 외국인 직접투자 동향과 외국인 투자부진의 원인 및 투자유치를 위한 실천과제에 대한 산업자원부 장관의 설명이 있었으며, 외국인 기업 입지 공급 대책 및 생활여건 개선 등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한 지원대책에 대해 토의함”이라는 1문장으로 정리돼 있었다. 회의록 어디에도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한 각 국무위원의 입장은 무엇인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전 9시에 시작해 10시57분까지 2시간 남짓 진행된 이날 국무회의에서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는 결국 참석했던 국무위원들의 머릿속에만 남게 된 셈이다. 국정 최고 심의기구인 국무회의 회의록이 이런 상태니, 여타 회의가 제대로 기록될 리 없다. 공공기록관리법 시행 뒤인 지난 2001년 4월 참여연대가 정부 22개 중앙부처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앙 행정기관 회의록 공개 및 작성 성실도 평가’ 자료를 보면, 회의록을 속기형식으로 기록하거나 발언요지에 녹음테이프 혹은 녹취록을 첨부한 경우는 회의록 작성 유무를 밝힌 전체 226개 가운데 단 1건도 없었다. 또 발언요지 기재가 대부분이고 일부 속기록을 첨부한 회의는 10개에 그쳤으며, 전체의 43%에 달하는 97개 회의가 토의결과만 기재돼 있는 등 회의록으로 보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필수정보조차 관리하지 않는 금감원
기업의 회계부실이 기업과 회계법인 간의 유착에서 비롯된다. 금감원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강조해왔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실태를 파악해 관리할 의무는 방기하고 있었던 셈이다. 금감원은 뒤늦게 국회의원의 자료 요청이 있자, 1주일 간 밤을 새가며 사업보고서를 뒤져 200개 상장기업의 회계법인 지정현황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기록을 남기고 이를 공개하는 것이 곧 참여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길이며, 나아가서는 우리 시대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재명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장은 “공공기록을 생산·관리·보존하는 것은 국정의 책임소재 규명과 투명성 보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며, 정보공개를 전제로 한 쌍방향성 참여정부를 구현하는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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