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 ] 2003년03월05일 제449호 

“나는 잠꾸러기가 되련다”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는 잠꾸러기들의 항변… 수면 시간 줄인 대가로 대형사고 잇따라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애초 봄과 춘곤증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했다. 햇살이 포근해지자 일터, 교실, 버스, 지하철 전동차 등 여기저기서 꾸벅거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봄을 맞아 독자들에게 가벼운 읽을거리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왜 봄이면 사람이 졸리나’는 소박한 호기심이 ‘왜 잠을 오래 자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는 심각한 의구심으로 바뀌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을 적게 자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잠이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처럼 잠을 자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 천리도 마다 않고 차를 몰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왜 잠에 대해서는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무엇이 사람들이 푹 자는 것을 부끄럽게 만들었는가.

충분한 수면을 부끄럽게 여겨야 하나

인류가 20세기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잠은 신체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 됐다.

19세기까지 인간은 어두워지면 일을 멈추고 쉬거나 잠을 잤다. “나는 하루 24시간 중에서 4~5시간 이상 잠을 자야 한다고 느낀 적이 한번도 없다.”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말이다. 그는 잠을 줄일 수 있다면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고, 사회가 더욱 발전할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그는 전구를 만들어 밤의 어둠을 몰아냈다. 전구가 발명되자 공장을 24시간 돌릴 수 있게 됐다. 24시간 작업을 위해 사람들은 3교대로 나뉘어 교대 근무를 시작했다. 미국사람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1910년에 9시간에서 1975년에 7.5시간으로 줄었고, 최근에는 7시간가량으로 점점 감소하고 있다.



‘일어난 날에 잠자리에 드는 것은 죄악이다’ 1920년대 미국 뉴욕시장을 지낸 지미 워커가 한 말이다. 당시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던 미국에서는 ‘잠을 줄여 부지런히 일해야 건강해지고 부자가 되고 똑똑해진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영어 동의어 사전에서 낮잠(nap)이란 단어를 찾으면 부정적인 표현이 수두룩하다. 게으른(idle), 태만한(remiss), 나태(indolence), 무기력(inactivity), 빈둥대다(loaf)….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경외감을 느끼는 잠을 적게 잔 유명인들의 이야기는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 옛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은 국민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독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크렘린에 있는 내 사무실을 한번 보십시오. 한밤중에도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스탈린이 죽은 뒤 밝혀진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의 진실은 이렇다. 스탈린은 사무실을 나설 때 불을 그대로 켜두었고 집에서 밤새 잠을 잤다.

제2차 대전을 지휘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도 하루에 몇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처칠의 내각 각료들은 그가 밤에 6시간가량을 침대에서 보낸 것으로 증언했다. 게다가 처칠은 낮잠을 1시간30분에서 2시간가량 잤다. 처칠의 하루 수면시간은 거의 8시간이 된다. 나폴레옹도 하루에 잠을 4시간가량 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함께 전투를 치렀던 동료들은 나폴레옹이 실제 잔 시간보다 잠을 줄여 생각하곤 했다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은 게으르고 비정상적이란 딱지가 붙기 십상이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잠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면 대개 부정적이다. 기껏 ‘잠이 보약이다’, ‘미인은 잠꾸러기’ 정도가 잠과 관련된 긍정적인 표현이다.

잠에 관한 뿌리 깊은 부정적 이미지


사진/ 잠들지 않은 도시의 밤, 도시인들은 잠들지 못한다. 24시간 사회로 이행하면서 보통사람들도 올빼미족이 되기 쉽다.


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뿌리가 깊고 가정과 사회에서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19세기 말 문명개화의 필요성을 노래한 개화가사 <동심가>는 “잠을 깨세, 잠을 깨세 사천년이 꿈속이라…”라고 시작한다. 100년 전 조선의 개화를 고민하던 사람에게 잠은 어둡고 낡은 굴레의 상징이었다.

입시학원 강사 이기영(37)씨는 일요일이면 밀린 잠을 한꺼번에 자왔다. 이씨는 평일에는 새벽까지 강의가 있어 잠 부족에 시달린다. 어느 일요일 오후 소파에서 자고 있는 이씨를 아들(6)이 “아빠, 일어나” 하고 급하게 깨웠다. 계속 잠을 자던 이씨는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아빠, 자꾸 잠만 자면 소가 돼. 아빠가 소 되는 거 싫어.”

일단 소파에서 일어난 이씨는 아들에게 왜 잠을 많이 자면 소가 되는지를 물었다. “책에 다 나와. 유치원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이씨가 다시 차근차근 물어보니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얼마 전 <소가 된 게으름뱅이>란 동화를 바탕으로 연극을 했다는 것이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늘 누워 있기를 좋아하고 낮잠 자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게으름뱅이가 소가 되어 죽을 고생을 하다 다시 사람이 된 뒤 앞으로는 부지런히 살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은 아이는 낮잠 오래 자는 아빠가 소가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전래동요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에도 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 잔다” “잠꾸러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세수한다” “멋쟁이”

세수하는 ‘멋쟁이’ 앞에 자리에 누워 있는 ‘잠꾸러기’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이런 노래를 부르며 동화를 읽은 아이들은 어느새 잠은 나쁘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세수하고…”란 동요를 배운다. 중·고등학교 때는 살벌한 입시경쟁에 시달리며 5시간 자면 떨어지고 4시간 자면 붙는다는 ‘4당5락’ 신화에 시달린다. 잠과의 전쟁을 벌이는 수험생들은 잠을 조롱하는 ‘수면의 법칙’이란 우스갯소리를 만들어냈다. 인터넷 등에서 돌아다니는 이 법칙은 △도미노 법칙- 옆사람이 자면 같이 잔다. △뉴턴의 관성의 법칙- 한번 자면 계속 잔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 잠을 잘 땐 시간이 빨리 간다. △르 샤틀리에의 법칙- 사람이 빠져나가면 평형상수를 맞추기 위해 자던 사람이 깨어나야 한다. △수면량 보존의 법칙- 아무리 밤을 새우고 잠을 안 자더라도 결국 평균 수면시간은 나중에 채워지게 마련이다. 밤새 잠을 안 잔 사람들 대부분은 쓰러져서 세상 모르고 잔다 등이다.

잠과의 전쟁, 그 혹독한 대가

직장인들도 잠과의 전쟁을 벌인다. 머리맡에 따르릉 시계를 몇개나 올려놓고 잠이 들고,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해 모닝커피라며 커피를 사발째 마시면서 잠을 쫓는다. 서울 여의도에 일터가 있는 김일현(33)씨는 졸음이 쏟아지면 잠시 화장실 가는 것처럼 하고 사무실 건물 밖으로 나온다. 김씨는 근처 증권사 객장에 가서 10~20분가량 토막잠을 자고 온다. 김씨는 “오후에 졸릴 때 참고 일하는 것보다 잠깐 자는 게 훨씬 업무능률이 높다. 하지만 직장에서 낮잠을 잘 수 있는 간 큰 사람이 사장 빼놓고 누가 있겠냐”고 말했다. 이아무개(30)씨는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신입사원 때 잠깐 졸았다 등골이 오싹해진 적이 있다. 전날 술을 많이 마신 이씨가 잠깐 졸고 있는데 부장이 다가와 한마디 툭 던지고 갔다. “이봐, 잠은 집에서 자야지. 내일부터 집에서 푹 자. 힘들게 회사 나오지 말고. 당신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아.” 이런 사회화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거추장스러운 잠을 줄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구체적으로 한국사람들은 얼마나 잘까.

1999년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한국사람의 수면시간은 7시간51분이다. 평일에는 7시간41분을 자며 토요일에는 7시간46분, 일요일에는 8시간29분을 자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은 7시간55분, 여성은 7시간48분으로 남성이 7분 더 잔다. 나이별로 보면 65살 이상이 8시간33분으로 가장 많이 자고, 다음으로 10대가 8시간3분이었다. 수면시간이 가장 적은 나이층은 40대로 평균 7시간32분이었다. 자녀교육·노후준비 등으로 사회활동이 왕성한 40대는 잠잘 시간이 가장 적다. 하지만 두 번째로 잠을 많이 자는 나이층으로 조사된 10대 중에서 고등학생은 다르다. 2년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한길리서치가 공동으로 전국의 인문계 고교생 1848명을 대상으로 생활습관을 조사한 결과, 고교생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7분이었으나 3학년은 5시간27분에 불과했다.

만성적인 잠 부족은 개인과 사회에 모두 해롭다. 2001년 미국 당뇨병학회 연례모임에서 시카고대학 연구팀은, 밤에 6.5시간 밑으로 자는 사람은 인슐린 저항성에 노화와 같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시카고대학 연구에 따르면 8일 이상 연속해 평균 5.2시간 잠을 잔 건강한 성인들이 밤에 8시간 자는 사람들보다 인슐린을 50% 이상 더 분비했다. 결과적으로 잠을 적게 잘수록 인슐린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져 당뇨병에 걸린 가능성이 높아졌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우리 신체 중에 가장 무거운 부위는 졸릴 때의 눈꺼풀’이란 말을 실감한다. 경찰이 교통사고를 집계하면서 사고원인에 ‘졸음운전’ 항목을 넣지 않아 정확한 졸음운전 현황은 파악할 수 없지만 교통전문가들은 전체 사고의 10% 정도가 졸음운전 사고인 것으로 본다. 90대 후반 도로교통안전협회가 5년 동안 고속도로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졸음운전 사고가 전체 운전자 과실사고의 1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교통안전관리국은 매년 약 10만건의 교통사고 가운데 3~4%가 졸음운전이 원인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졸음운전 교통사고만으로 매년 약 1500명이 사망하고 7만6천명이 다친다고 추산했다. 90년대 중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치료비와 수입 상실 등 한해 동안 졸음운전으로 인한 미국의 사회적 비용이 379억달러에 이른다. 일본에서도 지난달 26일 운전사가 약 8분간 졸음운전을 해 일본의 고속전철 신칸센이 자동장치 작동으로 긴급 정차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잠 연구의 권위자인 스탠리 코렌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심리학 교수는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 미국 스리마일섬 방사능 유출사고, 미국 우주왕복선 챌리저호 사고 등이 잠을 조금밖에 못 잔 사람들이 실수를 하는 바람에 벌어졌다”고 말했다.

졸음으로 인해 사회가 불안에 떨어

우리 사회는 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잠 부족이 개인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결과도 많지 않다. 잠에 대한 의학적 연구를 하는 대한수면학회도 지난해 4월에야 만들어졌다. 이 단체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는 ‘도대체 왜 인간이 잠을 자야 하는가’, ‘인생의 성패는 잠과의 싸움이다’, ‘어떻게 하면 잠을 적게 잘 수 있느냐’는 네티즌들의 문의가 여러 건 올라 있다. 잠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무조건 잠을 아껴가며 일하는 게 미덕이 아니다. 졸린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와 사고는 본인의 건강뿐 아니라 사회의 안전까지 위협한다. 졸린 봄 오후, 내리누르는 눈꺼풀을 밀어올리고 기사 마감을 하면서, ‘잠을 줄이면 영웅이 아니라 바보가 된다’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꿈꾼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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