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특집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6월22일 제615호
일본 공무원은 미군기지와 싸운다

주민 입장에서 철저하게 대응하고 감시하는 오키나와·이와쿠미 지자체들… 민원 해결 위해 시장이 직접 미국 방문… 누구나 기지 내부 볼 수 있어

▣ 오키나와·이와쿠니=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국장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후텐마 기지다. 면적으로만 따지면 가데나 공군기지가 더 크지만, 후텐마 기지는 도심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사고와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후텐마 기지는 오키나와의 중심지인 나하에서 약 10km 북쪽에 위치한 기노완시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알토란 같은 시 중심을 모두 미군기지가 잠식한 것이다. 후텐마 기지는 미 해병대의 전진기지로 전투기·군용기·헬기 등 공격적인 항공장비가 집중돼 있다.

기노완 시청 옥상의 반미 구호

그동안 오키나와 미군 문제의 쟁점이 되는 사건들은 대부분 이 기지를 중심으로 발생했다. 2004년 8월에는 기지 바로 옆 오키나와국제대학에 해병대 소속 헬기가 추락한 사건도 있었다. 기지와 4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청 건물이 있었다. 필자는 기지정책과 공무원의 안내로 시청 옥상에 올라가 후텐마 기지를 관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시청사 옥상의 전면을 장식하는 반미 구호였다.


공무원들이 직접 그려놓은 “DON’T FLY OVER OUR CITY! U.S. HELOs GET OUT NOW”란 표어가 비행기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큰 글씨로 쓰여 있다. 계속되는 비행훈련으로 다른 지역보다 난청 환자가 2~3배 많다는 기노완시에서 시민들의 민원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표시다.

시청에는 ‘기지정책부’라는 이름의 미군기지 전담부서가 있다. 이곳에는 약 20명의 공무원들이 배치돼 기지 관련 민원과 사건·사고를 처리한다. 시청 3층에 자리잡은 사무실에는 직원들의 책상 주변으로 기지에 관련된 지도와 위성사진들이 배치돼 있었고, 사무실 한쪽의 자료실에는 기지에서 이착륙하는 미군 해병대 소속의 전투기와 군용기·헬기 등의 모형이 만들어져 있었다. 군용기 모형까지 구해 진열한 이유는 “어떤 비행기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소상히 알기 위해서”라고 했다. 군사박물관을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접근법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2000년 발족한 기지정책부는 현재 2개 과로 나뉘어 있다. 이들은 2014년으로 예정된 기지 반환에 대비해 기지 터를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도 연구한다. 기지정책부 관계자는 “일상 업무로는 소음에 대한 민원 처리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며 “매일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제기되고 있어 시 당국에서는 미군 쪽에 비행 시간 조정과 비행 횟수 감소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노완시 당국의 미군기지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 주민에 대한 봉사의 배경에는 요이치 이하 시장의 의지와 노력이 있었다고 지역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요이치 시장은 후텐마 기지 철수와 주민들의 민원 해결을 위해 미국을 직접 방문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군 문제라고 하면 대책은커녕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한국의 지자체장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 도심 한복판에 위차한 후텐마 비행기지에서는 해병대 헬리콥더들이 수시로 뜨고 내려 근처 주민들이 소음공해에 시달린다. 기지가 자리한 기노완시의 공무원들은 이에 적극 대응한다.

오키나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미군기지는 가데나 기지다. 과거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공군기지였던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가 철수한 뒤 이곳은 규모와 전략적 중요도에서 미군의 핵심 기지라고 할 수 있다. 가데나 기지는 일본 최대 공항인 도쿄 나리타 공항의 4배 면적으로 해외 미군기지 중 가장 넓은 곳이기도 하다. 오키나와 지도를 펼쳐놓고 가데나 기지의 위치를 표시해보면 기지가 오키나와의 중서부 지방의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데나초(‘초’는 ‘시’보다 작은 행정구역의 이름)의 대응은 철저히 주민 중심적이다. 가데나 기지가 위치한 가데나초의 기지 전담부서인 기지섭외과를 방문했다.

국도 휴게소에 기지 관찰용 망원경

이곳 기지섭외과의 주업무 역시 비행기 이착륙으로 생기는 소음과 악취 등의 민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기지에 대한 자료와 통계를 수집·정리하는 일이다. 기지섭외과 관계자는 “기지섭외과의 노력으로 야간비행 금지 협약을 맺었지만 최근 미군이 일방적으로 이 협약을 깨고 야간비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철저히 지역 주민 처지에서 생각하고 일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가데나초에는 기지와 관련한 흥미로운 관광시설이 하나 있다. 오키나와인들이 기지 문제를 풀어가는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바로 ‘미즈노에키 가데나’라는 국도 휴게소다. 오키나와의 국도 58번가에 위치한 이 휴게소는 기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역의 고통과 아픔의 상징인 미군기지를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가데타초에서 운영한다. 4층짜리 건물에는 전망대를 비롯해 학습자료관·식당·휴게실·토산품 전시관 등이 들어서 있다. 방문객에게 휴식과 함께 기지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준다.


△ 기노완시 기지 전담부서인 기지정책부 사무실.

4층 전망대에서는 기지 내부를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대형 망원경을 무료로 운영한다. 3층 기지학습관에서는 기지의 성립 과정과 현황, 환경 문제와 미군 범죄 등 피해 사례들이 각종 이미지와 통계 자료를 통해 잘 정리돼 있다. 기지에서 이착륙하는 모든 미군 비행기의 기종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한쪽에는 기지를 향한 실시간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이 설치돼 있어 관람자가 직접 줌을 작동해 기지 내부를 관찰하도록 돼 있었다. 미군기지 근처에서 사진 한 장 찍으려 해도 미군 헌병이나 경찰이 가로막는 우리의 현실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기지 내의 뻔한 시설과 장비에 대해 군사시설보호법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잣대로 주민들의 알 권리나 민원 해결을 위한 각종 권리들을 가로막고 있다.

‘오키나와 민중연대’의 도미야마 마사히로 사무국장은 “가데나 기지는 조선전쟁(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군의 발진기지로 쓰였고 지난 60년 동안 오키나와 민중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며 “기지의 실체와 문제들을 시민들과 이곳을 방문하는 일본 각지의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홍보하고 교육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접근법은 앞서 언급한 기노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기노완시 남부 도심공원에는 기지를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푸른 지구를 상징화한 둥근 전망대의 계단을 올라서면 북을 향해 뻗은 후텐마 기지가 내려다보인다. 전망대 안내판을 보면 기지 안에 있는 미군 전투기의 기종을 확인할 수 있다.

‘막무가내식’ 해결은 절대 안한다

미군기지에 대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지자체의 대응은 일본 본토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오키나와의 헤노코 해상기지 건설과 함께 주일미군 재배치 논란의 또 다른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와쿠니 기지가 그 예다. 일본 본토의 가장 남쪽에 해당하는 히로시마 서쪽의 야무구치현 이와쿠니시의 이와쿠니 해병기지는 오키나와 후텐마처럼 미 해병대의 전략거점 기지다.


△ 기노완 시청사 옥상에 쓰인 구호는 “미군 헬기는 당장 나가라”이다

이곳에서는 각종 전투기와 군용기들이 수시로 뜨고 내리고 있으며 지난 수십 년간 각종 주민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와쿠니 시청에서도 기지섭외과를 설치하고 10여 명의 전담 직원을 배치한 상태다. 또 시의회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지난 5월22일 취재진이 이와쿠니를 방문했을 때 다무라 겐조 시의회 의원은 직접 차를 가지고 나와 이와쿠니 신기지 건설 현장과 구기지의 중요 관찰지점을 안내하고 기지 이전의 현황과 문제점들을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열정을 보였다.

이와쿠니 지역은 도쿄 근처의 주일미군을 추가로 이전하는 계획이 미국과 일본 정부에 의해 추진 중이다. 그러나 지난 3월12일 시청과 시의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이와쿠니 미군기지 추가 이전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에서 나온 89%에 이르는 압도적인 반대표는 일본 중앙정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전 계획에는 큰 차질이 없다는 태도지만,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은 지자체의 반대 때문에 주일미군 재배치가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된 일본에서 정치 관행상 지방정부가 강하게 반대하는 것을 중앙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미군기지 주둔 지역 지자체들이 한국의 지자체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단순한 민원 해결과 같은 소극적인 해결에 만족하지 않고 미군기지와 직접 접촉하면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미군기지 문제를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일상적으로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고, 지역 주민들의 이해에 어긋날 경우에는 중앙정부와의 갈등도 마다하지 않는 단호함을 보였다. 지자체가 중앙정부와 미군의 눈치를 보며 오히려 주민들의 민원을 외면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일본의 사례는 훌륭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중앙정부 역시 ‘미-일 안보조약’의 이행을 선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힐 경우 공권력을 통한 ‘막무가내식’의 해결은 피하고 있었다. 미군기지 재배치라는 국가적 안보 문제라도 주민을 무시한 일방적인 힘의 논리에 따른 절차는 곤란하다는 일본 정부의 인식이 각 지자체가 주둔 미군기지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셈이다.


△ 미즈노에키 가데나의 학습자료관 모습

지금 우리 정부는 평택 사태와 관련해 “미군 주둔의 현실을 인정하라”고만 말할 뿐 진정으로 주민의 목소리에는 귀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것이 평택 문제를 이토록 폭력적인 상황으로 끌고 온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주한미군 존재의 당위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미군기지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다.


“후텐마 기지, 미 본토로 보내야”

헤노코로의 이전은 반대… 시민 뒷받침으로 소신 펼 수 있어

오키나와의 대표적 기지인 후텐마 기지가 자리한 기노완시의 요이치 이하 시장을 만났다. 그는 미군기지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을 줄이고자 미국 본토까지 달려가 국방성부터 의회·주정부까지 발로 뛰고 있는 인물이다. 미군기지라는 안보 문제에서도 지자체장이 나서면 얼마든지 시민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실례인 셈이다. 그는 평택 사태의 해법을 묻는 필자에게 “우리와 같은 상황이라 이해가 간다. 잘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요이치 이하 기노완시장

올봄 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해 미국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미국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나.

= 미국 국방성에 기지에 관한 의견을 제출했고, 하와이에 있는 미군사령부에서 기지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이후 미국의 여러 주를 방문해 후텐마 기지의 미국 본토 이전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또 미국 내 기지의 경우 민간인 지역과 거리를 두고 있는 반면, 후텐마 기지는 민간인 지역과 지나치게 가까이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미국 본토와 일본 기지에 차별을 두는 것에 항의했다.

미국의 각 주에서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 일부 주에서는 중앙정부의 방침과는 달리 후텐마 기지를 자신들의 주로 이전하는 것에 찬성했다. 기지 이전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은 ‘이전’이라기보다는 헤노코에 새 기지를 만드는 것이다. 오키나와가 중국과 한반도를 공격하려는 미국의 전략 거점에서 실질적인 전진기지가 되어간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에 반대한다. 비록 기노완시에서는 기지가 철수할 테지만 오키나와에 새 기지가 들어설 이유가 없다. 현재 나고 시장은 헤노코 기지 건설에 찬성하고 있지만, 80% 이상의 지역 주민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헤노코의 이전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의 계획인 2014년 후텐마 기지 철수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중앙정부와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하고 있나.

= 중앙정부와의 갈등은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시민들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기에 소신껏 밀고 나갈 수 있다.

기지 이전이 지역경제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시각도 있지 않은가.

= 후텐마 기지에서 일하는 직원 3700명 가운데 오키나와 사람은 200명에 불과하다. 호텔 유치와 리조트 개발을 통해 기지 이전 때의 경제적 충격에 대비하고 있다. 또 기지 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전담 부서를 설치해 다양한 해법을 연구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 때문에 매년 60억엔의 임대료와 5억엔의 보상비를 받고 있지만, 기지 반환 뒤 그 기지 터를 잘 활용하는 것이 기노완시 경제에 더 이익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오키나와 <류큐신보>의 활약

중앙언론 기죽이는 최대일간지… 기지문제에 차별화된 논조와 전문성 보여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지역이다. 일본 본토와 다른 언론 지형이 이를 웅변한다. 오키나와에서는 일본의 대표적 신문인 <요미우리신문>이나 <아사히신문>이 인기가 없다. 본토에선 각각 1천만 부 안팎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일본의 대표적 언론이지만 오키나와에서는 전체 신문시장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키나와에서는 지역 언론인 <류큐신보>와 <오키나와타임스>가 지역 여론을 이끌고 있다. 130만 인구의 오키나와에서 <류큐신보>는 매일 40만 부를 찍어내는 최대 일간지다. 이들 지역 언론은 미군기지 문제에 대해 본토 언론과는 확연히 다른 논조와 방향으로 주민들에게 질 높은 정보와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오키나와의 지자체나 주민들이 미군기지에 대해 전문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류쿠신보>와 같은 언론의 구실이 컸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마쓰모토 쓰요시 기자는 <류큐신보>의 미군기지 전문기자다. 지난 5월22일 저녁 오키나와 나하시의 한 교회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큰 가방 2개 분량의 자료와 위성사진을 포함한 대형 지도집 등 방대한 미군 관련 자료를 들고 나왔다. 그는 1989년 <류큐신보> 입사 당시 사건기자로 활동하면서 미군 범죄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95년 미군기지 문제를 전담하기 전부터 해외 파병 미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왔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푸에르토리코의 비에케스 해군훈련장, 필리핀 수빅과 클라크, 독일과 중앙아시아 등 전세계 미군기지 현장을 방문해 기지의 문제와 현황에 관한 기사를 써왔다. 미군기지에 대한 현장취재 경력으로 따지자면 그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한국 기지 문제와 관련해서는 매향리를 비롯해 용산·파주·대구·부산 등 주요 기지들을 대부분 취재했다. 그는 평택 사태와 관련해 “한국은 일본보다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힘이 더 크다“면서 “지자체의 힘이 강한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