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떻게 팔레스타인 민심을 사로잡았나, 중동정세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총선감시단원으로 활동한 외국어대 홍미정 연구교수의 동예루살렘·라말라 르포
세계는 지금 팔레스타인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1월25일 열린 총선에서 강경 이슬람단체로 알려진 하마스가 60%가 넘는 득표율로 집권당인 파타를 누르고 제1당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긴장하고 있다. 이들의 정치·경제적 압박으로 중동 정세가 더 혼미해질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그 어느 때보다 공정했으며,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기층 민중들의 기대와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 역시 진실에 가깝다.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만 여기는 것은 지식의 모자람일 뿐이다. <한겨레21>은 두 달간 동예루살렘과 라말라에 머물며 총선 감시단원으로 활동한 외국어대 연구교수 홍미정씨의 르포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과 중동 정세를 조망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팔레스타인 땅, 이스라엘 정착촌>이라는 연구서를 펴낸 바 있는 홍미정 교수는 현재 학술진흥재단의 ‘중동 부족주의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해 12월30일부터 현지로 건너가 연구·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 편집자

△ 무스타파 아부스웨이 예루살렘대학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홍미정 외국어대 연구교수. (사진/ 홍미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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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라말라= 홍미정 중동문제 전문가·외국어대 연구교수
동예루살렘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국제문제연구소(PASSIA)는 항상 외국인들과 내국인들로 북적인다. 세계적인 TV, 신문, 정치인, 학자 등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 정보를 얻는다. 지난 1월25일 치러진 팔레스타인 선거 전날까지도 연구소는 각국의 선거감시단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이후 이 연구소는 평소보다도 매우 한산하다. 모든 인터뷰와 강연 등을 마디 압둘 하디 연구소장이 일절 사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이후 연구소장의 표정은 어둡고 말이 없어졌다.
부패 척결과 독립국가 건설의 꿈
1월31일은 이슬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이었기 때문에 연구소가 문을 닫았다. 호텔에서 약간 늦은 아침식사를 하면서 유엔 구호단체에서 파견됐다는 스위스 여성과 팔레스타인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하마스의 압도적인 승리로 유럽과 미국은 팔레스타인에 자금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의를 제기했다. 유럽연합은 지난 1월28일 원조를 계속할 것이라 선언하지 않았는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에게 팔레스타인에 대한 원조를 계속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사실 예루살렘과 라말라에서 하마스에 투표를 했다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만난 대다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서방의 외국인들과 이해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하마스의 집권에 대해 어떤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번 선거가 매우 공정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에는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 하마스는 창설 이후 계속된 사회 봉사활동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안지구 라말라의 시민이 하마스의 선거 승리를 기뻐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사진/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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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차 자치정부 의회 선거를 거부했던 하마스가 10년 만에 의회 선거에 참가하면서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다. 하마스는 132석 중 총 74석을 장악했다. 이 중 45석이 지역구에서 나온 것이다. 하마스는 가자 지역에서 15석(기독교 1석을 제외한 총 23석 중 칸 유니스 3석, 데이르 알발라 2석, 라파 0석, 북가자 5석, 가자 5석)을 확보함으로써 65%의 의석을 차지했고, 난민 캠프가 밀집한 라파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서안에서는 30석(기독교도를 제외한 총 37석 중 헤브론 9석, 예루살렘 4석, 베들레헴 2석, 제닌 2석, 라말라 4석, 살피트 1석, 투바스 1석, 툴카렘 2석, 나불루스 5석)을 획득함으로써 81% 정도의 의석을 차지하게 됐다.
선거가 끝난 뒤에 만난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마스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파타 시대의 부정부패 척결과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의 꿈이 그 중심에 있었다. 팔레스타인 난민촌 어린이들을 위한 비정부기구에서 일하는 칼리드 나집(34)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의 주변 사람들이 체험한 하마스의 구호활동을 들으면,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처럼 보일 만도 했다. 칼리드에 따르면, 하마스는 서안 저항운동의 중심지인 제닌에서 9년 전부터 종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칼리드의 친구 어머니는 그 병원에서 지난해 12월에 20일 동안이나 무료로 치료를 받았다. 하마스는 가자와 서안의 난민 캠프 등 빈민가에서도 92개의 작은 병원을 운영하면서 가난한 사람들과 노인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왔다고 한다. 더불어 가난한 대학생들을 위한 학자금 지원사업도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칼리드의 사촌동생도 그 수혜자 중 한 명이다. 지난 2년 동안 하마스에서 대학 학자금을 지원받아 올해 졸업하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봉사활동은 주로 모스크와 연대해 이뤄지며, 자금은 팔레스타인 내부와 전세계의 무슬림형제단에서 제공된다고 한다. 그의 말을 확인이라도 해주듯 라말라 중심가의 한 모스크 지붕 위에서는 승리를 축하하는 초록색의 하마스 깃발이 바람을 타고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칼리드는 “대부분의 모스크 이맘(이슬람 성직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하마스를 지지했다”고 말했다. 1988년 창설 이후 계속돼온 사회 봉사활동을 통한 청렴한 이미지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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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나자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사타르 카셈(56)은 이야기할 것이 많으니 서안 내 도시 중 하나인 나불루스로 오라고 호텔로 전화를 했다. 그는 이전에 파타 소속이었고, 지난해 수반 선거에서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을 주요 이슈로 삼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번 선거에서 그는 하마스를 지지했다. 1월29일 아침 나불루스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나불루스 주변의 모든 검문소가 닫혀 있어 갈 수 없었다. 나불루스행을 단념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여러 발의 총성이 들렸다. 나는 겁을 먹고 움찔했다. 동행하던 팔레스타인 친구는 “파타 당원들이 화가 나서 공중에 총을 쏜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주말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사타르 교수는 메일로 인터뷰를 대신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전직 파타 당원이었던 사람들 몇 명도 하마스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고 전했다. 해체 위기에 직면한 파타와는 달리 하마스는 모스크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의 내부 사회 주민들 속에 뿌리박고 중앙에서 조직적으로 선거를 지휘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번 선거에서 하마스 출신의 무소속 후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각 당파에 속하지 않은 주민들과 다수의 파타 당원들조차 하마스에 투표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이 승리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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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적십자라 할 수 있는 적신월사(Red Crescent·붉은초승달회)에서 근무하는 파티 펠레펠(38) 박사는 “자치정부 10여 년 동안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고 한탄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을 점령지 내에서조차도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길 수 없었다. 툴카렘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라말라에서조차 팔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도시 단위로 갇혀 있다. 이것이 10여 년 동안 이스라엘과의 협상 결과다.” 한 달 전에 둘러본 툴카렘과 칼킬리야가 생각났다. 이 지역은 토양이 검은 빛을 띨 정도로 비옥했고, 오렌지 농장이 즐비했다. 그런데 그 검은 빛 땅은 떨어져 썩어가는 오렌지들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칼킬리야에서 만난 오렌지 농장 주인인 무함마드(35)는 오렌지를 팔 곳이 없어 수확할 필요가 없다면서 자신의 농장으로 나를 안내했다. 무함마드는 썩은 오렌지들과 올리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스라엘의 이동 차단과 수출 금지 정책으로 판로를 찾을 수 없다. 저기 분리장벽을 보라! 저 너머에 내 올리브 농장이 있다. 나는 분리장벽 건설 이후 저기 내 농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저 철책 장벽에는 전기가 흐른다.” 팔레스타인인들은 2002년부터 시작된 분리장벽 건설 이후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군사적인 점령 상황이 종결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렌지는 왜 썩어문드러지는가
하마스 지지자들은 하마스의 통치가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리라고 생각한다. 라말라 중심가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하마스 활동가 무사(38)는 “하마스가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 강력한 협상을 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강력한 협상의 주제는 1967년 6월 전쟁 이전의 휴전선(1948년 전쟁의 결과 만들어진 휴전선)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 획정, 이스라엘 정착촌의 완전한 철거, 동예루살렘의 주권 회복, 1948년 점령된 땅(현 이스라엘 국가 영역)에서 추방된 난민을 포함하는 500만 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9천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감옥의 수감자 석방, 이스라엘군의 완전한 철수가 될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 주제들에 대한 협상을 거부한다면,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하마스가 내세우는 주제들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 주제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0년 오슬로 최종 지위 협상에서 팔레스타인 대표들이 테이블에 올려놓으려고 시도했으나, 이스라엘은 최종적으로 이를 거부한 바 있다. 이에 실망한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자살폭탄 공격을 동반한 제2차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를 주도했다. 이를 빌미로 이스라엘은 분리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또 자살폭탄 공격을 주도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 즉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PFLP, DFLP, PPP, 알아크사 여단 등을 테러 단체로 지목하면서 자치 정부에 이들을 분쇄할 것을 요구했다.
사타르 카셈 교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폭력이 단계적으로 고양될 것이라 전망했다. “국제 사회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과 관련된 하마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고, 이스라엘도 거부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총을 쏠 것이고 보복은 되풀이될 것이다.” 그는 이제 이스라엘과 서방이 문제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항복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테헤란-다마스쿠스 축(이란-시리아)은 새로운 동력을 얻고 있다. 이 축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소망과는 반대로 가동되고 있다. 어려움이 많아질수록 하마스 운동은 더욱 활력을 얻을 것이다. 나는 하마스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 선거 캠페인 마지막 날 깃발을 바로잡고 있는 라말라의 청년.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강력한 협상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예상을 넘는 선거 승리로 이어졌다. (사진/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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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안에 분리장벽이 세워진 뒤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은 극도로 빈곤해졌다. 점령지 내에서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고 생산한 농산물조차도 장벽 넘어에서는 팔지 못한다. (사진/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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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마스 통치 기간에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 사타르 카셈 교수는 세 가지 주요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첫째, 파타는 하마스가 실질적인 성과를 이뤄나가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하마스의 토대를 침식하기 위해 공세적인 정책을 단계적으로 펼 것이다. 셋째, 미국과 유럽은 자금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마스는 이런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다. 하마스는 잘 조직돼 있고, 부유한 아랍과 무슬림 개인들과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자금을 지원할 것이다.” 이와 함께 팔레스타인이 외국인들의 재정 지원에 포박돼 있는 현실도 지적했다. “그것은 해방과 충돌되는 것이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인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집중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자금을 지원하지 않을 것”
내가 묵고 있는 동예루살렘 크리스마스 호텔 소유주인 에밀 자르아위(65)는 파타당 소속으로 당선된 기독교도 의원이다. 1월30일 저녁 늦은 시간에 호텔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에밀 자르아위 의원의 말에는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 “하마스 선거 승리 이후 모든 외부 자금 유입이 중단됐다. 이제 하마스의 정치 프로그램을 기다려봐야 한다. 파타는 그 프로그램에 따라 협력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 하마스는 파타에 연합 정부 구성을 여러 번 제안한 상태다. 그러나 아직 파타는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 예루살렘대학 이슬람학 교수인 무스타파 아부스웨이(50)는 “파타가 너무 충격을 받아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라 분석했다. 또 있다. 파타는 40년 동안 권력을 안정적으로 독점해왔기 때문에 공유해본 경험이 없다. 그리고 이 심각한 상황에서 하마스와 협력하지 못하도록 파타 지도자들에게 국제적인 압력이 행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스타파 아부스웨이 교수는 “국제 사회가 하마스 정부를 인정한다면 파타는 훨씬 유연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잇따르는 관광객들의 호텔 예약 취소
그러나 훨씬 큰 문제는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발생할 것이다. 하마스는 파타가 성취하지 못한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시도할 것이고, 이스라엘은 끝내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29일 시리아에 머물고 있는 하마스 1인자 칼리드 마셜은 1967년 6월 전쟁 이전의 경계선을 국경으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과 관련해 이스라엘에 양자 대화를 제안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이 체결한 어떤 협정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익이 되는 한 존중하겠지만, 지난번 협상에서 개입한 미국 등 제3의 중재자는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 동예루살렘에는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뜸해졌고, 외국 관광객들의 호텔 예약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서 수립된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하마스 정부의 분명한 정치 프로그램이 제시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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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는 왜 참패했는가 내부부터 무너뜨린 부패와 개선되지 않는 점령 상황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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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타는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 45석만을 차지했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뒤 분노한 파타 지지자가 하늘에 총을 쏘고 있다. (사진/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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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다음날인 지난 1월26일 저녁, 라말라 근교의 초발이라는 마을에서 작은 파티가 열렸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에 근무하는 파티 플레펠 박사가 이번 선거에서 감시단원으로 활동한 외국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을 초청한 것이었다. 파티 분위기는 자못 무거웠지만, 이들은 전통 악기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이들은 모두 파타의 완패에 관해 너무나 뜻밖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중 모스크에 열심히 나가는 파티 박사의 어머니만이 하마스에 투표를 했고, 파티에 참가한 10여 명의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은 모두 각각 사회주의 계열 정당에 투표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다수가 유럽과 미국의 원조를 받는 비정부 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중상류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산업시설이 전무한 팔레스타인에서 비정부기구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상당한 돈벌이를 제공한다. 현재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하마스 집권 이후 유럽과 미국의 원조가 중단되는 것이다. 원조의 중단은 곧 실업을 의미한다.
1996년 의회 선거에서 전체 의회 의석인 88석을 모두 장악했던 파타는 이번 선거에서 132석 중 단지 45석(지역구 17석, 전국구 28석)만을 획득하는 참패를 당했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해 하마스 활동가인 무사는 “무능과 부패 탓”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번 의회선거에서도 미국은 200만달러를 지원했다고 공표했다. 파타는 공식적으로 그 돈을 받지 않았다고 발표했고, 그 돈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도 그 돈은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을 것이다. 파타는 자치정부 수립 이후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함께 대화에 참가했던 사회주의 계열인 PFLP 지지자인 압둘 라힘(40)과 예루살렘 대학의 국제법 교수인 압둘 말렉(37)도 무사의 주장에 동조했다.
파타가 팔레스타인 내부의 격렬한 비판에 직면한 상황에서 파타 소속의 지식인 관료들을 중심으로 ‘제3의 길’ 등 새로운 정당이 창설됐고, 파타는 선거 이전에 이미 그 내부에서부터 조직이 붕괴됐다. 이와 관련해 라말라에서 비정부기구를 운영하면서 사회주의 계열인 PPP를 지지하는 살림(37)은 “이번 선거에서 출마한 파타 의원들은 거의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고, 오직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경력 따위만을 내세웠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동예루살렘의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인 디니스(35)는 “늙고 학식이 없는 파타의 지역구 후보들과는 달리 전국구 후보들은 젊은 지식인 출신이 대부분”이라면서 살림의 주장을 확인해주었다. 살림과 디니스의 주장은 전국구 투표에서 1석 차이로 하마스와 거의 동등한 의석을 획득한 파타가 왜 지역구에서는 거의 전멸했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해준다.
특히 파타는 예루살렘, 라말라, 베들레헴에서 기독교도에게 할당된 5석을 제외하고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예루살렘대학 국제법 교수인 압둘 말렉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서안 지역에서 가장 격화됐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05년 1월 수반 선거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파타 후보인 마무드 아바스에게 67%의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1년 동안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과 라말라, 베들레헴을 갈라놓는 분리장벽 건설을 강행하자, 2006년 현재 서안 지역과 동예루살렘은 완전히 분리됐다.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도 동예루살렘 주변 지역에서 가장 격렬하게 진행됐다. 결국 팔레스타인인들은 1994년 자치정부 건설 이후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상황에 대한 책임을 파타에게 물은 것이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서안과 가자에서는 전 인구 대비 50%가 유권자 등록을 한 반면 예루살렘 지역에서는 단지 10%만이 유권자 등록을 했다. 게다가 그 등록자의 70% 정도만이 투표에 참가했다. 투표인 등록 명부를 확보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거주권을 박탈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 불안감을 이해할 만도 했다. 지난 1월29일 라말라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동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검문소에서 중무장을 한 이스라엘 군인이 승합차에 탄 승객 15명의 하늘색 예루살렘 거주민증을 모두 걷어갔고,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며 대답과 동시에 손을 들게 하면서 얼굴과 대조했다. 두 승객이 녹색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주민증을 예루살렘 방문 허가증과 함께 내밀었다. 차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고, 이스라엘 군인은 죄인을 심문하는 검사와 같다고 생각되는 순간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러나 나 역시 문제를 일으키면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기 때문에 무표정하게 여권을 내밀면서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거주권 박탈 등을 통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서안 등으로 내몰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타르 카셈 교수는 “파타는 이스라엘로부터 어떤 권리도 확보하지 못했다. 국가는 수립되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분리장벽 건설 등을 통해서 땅을 강탈하고 정착촌을 건설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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