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헤즈볼라에서 이집트 무슬림형제단까지 중동국가 선거 휩쓸어
민주적 선거만 치러진다면 승자가 될 가능성 높은 가장 강력한 야당세력
▣ 박민희 기자/ <한겨레> 국제부 minggu@hani.co.kr
‘선거혁명’이 중동의 정치 지형을 바꿔놓고 있다.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총선 승리는 지난해부터 레바논·이집트·이라크·이란 선거에 불어온 이슬람주의 돌풍의 연장선 위에 있다. 이슬람주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당연히 중동의 억압적 정권들과 손을 잡고 석유 이권을 장악해온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반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동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의 ‘반미 벨트’가 형성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요 유전지대는 ‘시아파 초승달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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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6월 이란 대선에서 이슬람혁명의 초기 정신을 강조하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운데)가 온건 노선의 하타미를 물리치고 압승을 거두었다. (사진/ 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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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탄은 지난 5월 레바논 총선이었다. 라피크 하리리 총리가 암살된 뒤 20년 넘게 주둔해온 시리아군이 암살 배후로 지목돼 철군하는 등 정치적 격변 속에 치러진 이 선거에서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또 다른 시아파 정당 아말과 연합해 128석 중 30석을 차지했다. 미국은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지정하고 있지만, 헤즈볼라는 언론사와 병원, 학교 등을 운영하면서 레바논 시아파의 강한 지지를 받는 합법적 정당이다.
이어 6월 이란 대선에선 지난 8년 동안 온건한 ‘개혁 노선’과 국제 사회와의 화해를 추진했던 하타미 정권이 퇴장하고, 이슬람혁명의 초기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군부 출신의 ‘혁명 2세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예상 밖의 압승을 거뒀다.
중동 지역 미국의 최대 동맹세력 중 하나인 이집트에선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중동에서 가장 유서 깊은 이슬람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 “이슬람이 해법이다”는 구호를 내걸고 20%의 의석을 휩쓸었다. 정부에 의해 불법단체로 지정돼 있는 무슬림형제단은 기존의 의석 17석을 87석으로 5배 이상 늘렸고, 이것도 지나치게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정부의 탄압이 심해질 것을 우려해 440여 개 선거구 중 150곳에만 후보를 내 얻은 결과다. 매년 거액의 미국 원조금을 받으면서 25년째 집권해온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의회에서 실질적인 야당과 맞부딪치게 된 셈이다.
12월 이라크 총선에서도 시아파 연합인 ‘통일이라크연맹’이 1위를 차지해 정부 구성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이슬람혁명최고평의회와 이슬람다와당이 주축이 된 통일이라크연맹의 주요 지도자들은 이란에서 오랜 망명 생활을 한 성직자들이다. 이들은 현재로선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지만 점점 이웃 이란과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경우 미국에 큰 위협이 된다.
친미 노선을 고수해온 요르단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아랍 정권들은 하마스나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주의 세력의 부상을 근심스런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들 국가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은 가장 강력한 야당 세력이며, 만일 ‘민주적 선거’가 치러진다면 이슬람주의 세력이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라크 주변의 아랍국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중동 정세를 뒤흔들면서 시아파 국가인 이란에만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여기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이란의 라이벌인 터키 역시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꺼린다. 특히 바레인, 예멘, 쿠웨이트, 사우디 등은 자국 내 시아파들이 이란-이라크 시아파의 부상에 자극받아 정치적으로 동요할까 잔뜩 긴장하고 있다. 요르단의 압둘라 국왕은 이란과 시리아, 이라크,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등에서 시아파 정권이 등장해 ‘시아파 초승달 지역’이 형성될 가능성을 거듭 경고했다. 이들 지역은 전세계의 주요 유전지대다.
이러한 중동 이슬람주의 확산은 미국의 오랜 중동 석유 이권 장악과 이라크·아프간 침공, ‘중동 민주화’를 내세운 간섭 정책이 불러온 중동의 반미 정서를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영국과 미국 등은 이슬람권에서 석유 확보를 위해 중동 독재자들을 지원하면서 이슬람 내부의 개혁이나 민주화를 말살해왔다. 1950년대 이란에서 석유 국유화 조처를 취한 모사데크 정권을 미 중앙정보국(CIA)이 나서 전복시킨 것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 미국의 특수관계 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사원 등을 중심으로 정부의 탄압을 견뎌내고 ‘야당 세력’으로 살아남은 이슬람주의자들은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슬람주의의 요체는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가 이슬람법(샤리아)으로 통치하는 나라를 세우자는 것이다. 이슬람주의가 세계 무대의 전면에 재등장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그 이전까지는 아랍사회주의가 이슬람권의 정신적 기둥 노릇을 했지만, 67년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의 제3차 중동전쟁에서 참패한 뒤 쇠퇴하기 시작해, 소련의 몰락과 함께 무너졌다. 이 무렵 이슬람주의 세력의 성장을 도운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이슬람주의자들의 무장을 적극 지원해 소련과 싸우도록 했다.
정부의 탄압 이겨낸 ’유일한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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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가 말살된 상황에서 사원을 중심으로 세력화한 이슬람주의자들은 유일한 야당 세력이다. 지난해 5월의 레바논(아래) 선거와 (사진/ AP 연합)11월 이집트(위) 선거의 승자도 이슬람주의자들이었다. (사진/ 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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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는 역사적으로 중동 지역에 정치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대안 노릇을 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중동 지역을 장악하려던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당시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터키계의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랍 민족주의를 퍼뜨렸다. 영국 등과 손잡고 오스만제국 전복에 나섰던 부족장들이 세운 대표적인 나라가 오늘날의 요르단과 이라크 등이다.
당시 등장한 대표적 이슬람주의 단체인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창시자 하산 알바나는 서구의 가치들이 무슬림들에게 조화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연구자들은 무슬림형제단이 초기엔 온건한 사회운동을 펼쳤으나, 주요 이론가였던 사이드 쿠틉 등 많은 단원들이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급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사이드 쿠틉은 이후 이슬람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옹호한 대표적 이론가가 됐고 많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사회주의의 실패’ 이후 과거 아랍사회주의의 기반이던 석유 이권을 위해 개입하는 서구에 대한 저항,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대한 분노, 만연한 빈곤과 빈부격차 등은 이제 이슬람주의의 토양으로 변했다. 중동의 민주주의를 지원하겠다며 나서는 미국 정부는 이슬람주의자들과의 대화는 단호히 거부해왔다. 그러나 중동 국가들의 대중에게 이슬람주의가 대안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비현실적인 미국의 이같은 ‘중동 민주화 정책’은 갈등과 긴장을 키우면서 ‘민주화’와 ‘평화’ 모두에서 멀어지고 있다.
근본주의자는 소수, 유연한 세력이 다수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슬람 정권 수립을 목표로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알카에다 같은 군사적 근본주의자들은 소수이며 세속주의와 근대적 가치들을 수용하는 현실적이고 유연한 세력들이 다수다. 하마스 역시 2003년 ‘야신 독트린’을 통해 이스라엘과 공존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1차 목표로 설정했고, 이후 이스라엘과의 협상 가능성도 내비치는 등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변화의 길을 모색하는 이들 중동 지역의 주요한 ‘목소리’를 이해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이들의 노선에 전면 동의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유일한 해법일 것이다.
쿠웨이트의 개혁파 지식인인 자흐라 알리 후세인 쿠웨이트대학 교수는 “이슬람주의자들도 온건주의자부터 극단주의까지 무지개처럼 여러 스펙트럼이 있다. 이 지역에서 이슬람주의는 오래된 세력이며 정치운동이다. 그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개혁주의자들은 그들의 의견에 귀기울이고 토론을 통해 문제를 풀어갈 것이다. 그들과 경쟁해 어떤 것이 더 나은지를 보여주면 되는 것이지, 법으로 금지하거나 탄압하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키는 매우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