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벙글쇼>의 박경덕 작가와 <최양락의 재밌는 라디오>의 박찬혁 작가 대담…그날그날 써야 맛이라 늘 초치기, 날마다 입에 단내 나는 마감 생지옥 넘겨
<싱글벙글쇼>와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는 누가 만들까? 강석, 김혜영, 최양락… 그리고 PD들? 불완전한 정답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싱글벙글쇼>의 원고를 써온 박경덕(47) 작가가 없었다면? 청취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돌도사’ ‘시사스포츠’란 명코너가 탄생해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박찬혁(39) 작가가 없었다면,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의 ‘3김퀴즈’ ‘대충토론’이 지금처럼 인기를 누리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활동하는 라디오 시사콩트 작가의 층은 매우 얇다. 모든 라디오 방송사의 시사콩트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두 프로그램의 박경덕·박찬혁 작가는 매일 수많은 청취자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웃겨야 한다는 것은 둘의 공통된 불문율이다. <한겨레21>은 지난 12월8일 문화방송 지하 커피숍에서 두 사람을 만나 유쾌한 방송의 뒷얘기를 들어봤다.
▣ 사회·정리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사회= 작가와 진행자의 관계가 궁금하다.
박경덕(이하 경덕)= 어느 방송이든 작가가 다가 아니다. 부부관계처럼 나한테 맞는 PD와 연기자가 필요하다. 최양락이라는 연기자를 만나야 박찬혁 작가의 원고가 소화되는 것이다. 아무리 잘 써도 연기자가 소화해주지 못하면 끝이다.
사회= <싱글벙글쇼>가 20년 동안이나 유지되고,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가 인기를 유지하는 생명력은 어디에 있나.
3김 희화화, 3김에게도 좋다
경덕= FM 라디오를 주로 듣는 청취자들은 중·하위층 서민들이다. 대부분 자영업자나 점심시간에 이동하는 사람들이다. 사는 게 골치 아픈 사람들이지, 편안한 사람들은 아니다. 시장이나 공장에서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는 사람들이다. 지난 20년 동안 항상 없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봐온 것, 그것밖엔 없다.
박찬혁(이하 찬혁)= 비슷한 생각이다. 최양락의 ‘3김퀴즈’에서 3김의 존재가 희화화되니까 청취자들이 고소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잘났다고 생각해왔던 사람들을 우리 프로에선 갖고 놀지 않나.
경덕= 웃음 중에 가장 시원한 웃음은 권위가 허물어지는 순간에 나온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권위와 힘이 있는 사람들한테 손해가 가는 것도 아니다. 시사콩트가 추구하는 것도 거칠게 표현하자면 힘있는 사람들을 망가뜨리는 거다. 물론, 방송 관련자들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해야겠지. (웃음)
사회= 나름대로 시사콩트의 구실에 대한 자부심이 클 것 같다.
경덕= 시사콩트를 통해 사회의 문제를 희화화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불만은 자꾸 누적된다. 웃음으로 털어버리면 불만이 어느 정도 덜어진다. 3김이 희화화될수록 사람들은 3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옅어질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게 무슨 공산당 프로야”라고 실제 나에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우린 힘있는 사람들의 못된 꼴은 못 본다. 세상은 힘있는 사람들이 ‘죽어줘야 한다’고 본다. 왜? 안 그러면 세상이 아예 깨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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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덕 작가(왼쪽)는 "웃음의 최대 힘은 교정"이라고, 박찬혁 작가는 "웃음은 감정의 해방구"라고 말한다. 두 작가는 시사프로그램에서 힘있는 사람이 죽어줘야 재밌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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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혁= 권위를 흔들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힘있는 자들을 희화화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일하면서 하하호호할 수 있게 하는 것뿐이다.
사회= 매일매일 생방송 원고를 넘길 텐데, 마감 시간이 생지옥이나 다름없을 것 같다.
경덕= 원고를 끝내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 30분 동안은 아무것도 못한다. 아까 박찬혁씨에게 잠깐 물은 것도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힘이 떨어지면 이 일 못한다.
찬혁= 15년 가까이 원고를 써왔지만, 4년 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그전엔 쉽지는 않았지만 룰루랄라였다. 지금은 정치적인 얘기를 하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한마디에 확 갈 수 있다. 그래서 늘 긴장한다. 4년 전부터 어깨가 뻐근하기 시작했다. 그전엔 건성건성 해오던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 나보고 PD들이 4년 전부터 ‘니가 박경덕이냐?’라고 놀린다. 사실 내가 빨리 쓰려고 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재밌는 순간을 잡아보려고 한다. ‘초치기’(몇 초 전 원고 마감)로 들어갈 때도 있다. 아무래도 전날 밤에 써놓은 것은 확실히 맛이 없다. 똑같은 뉴스라도 오늘의 느낌으로 쓰기 위해서는 그날그날 해야 된다. 그러다 보니 시간에 늘 쫓기게 된다.
경덕= 지금도 내 악명이 높다. 마지막 원고가 낮 1시30분에 방송된다. 원고 넘어가는 시간이 1시25분이면, PD가 ‘훌륭하다, 고맙다’라고 할 정도다. 물론 생방송을 하다 보니 머릿속에 언제든지 쓸 수 있는 두 꼭지 정도는 갖고 있다. 그렇더라도 항상 막판까지 버틴다.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까, 더 나은 반전을 고민하다가 막판까지 가는 거다.
‘돌도사’는 무시무시한 코너
찬혁= 사실 미리 써놓은 비상용 원고를 갖고 있다. 도저히 못 쓰겠다 싶으면, 시사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을 내보낸다. 4여 년 동안 예닐곱 번은 그렇게 했다.
사회= 시사와 콩트를 어떤 배합으로 버무리는지 궁금하다.
경덕= 35년 전 물가와 비교해 지금 등록금이 90배로 올랐다는 오늘 뉴스가 있었다. 보통 30배가 올랐더라. 우리 프로에서도 ‘집값은 300배 올랐다’고 한마디 했다. 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재경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종합부동산세를 9억원에서 6억원으로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난리치지 않았는가. 우리가 직접 나서서 종부세 통과 얘기를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집값 300배 상승 얘기를 하는 식이다. 사람들이 어떻게든 집값만은 잡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그게 바로 콩트의 기술이다. 하고 싶은 얘기를 슬쩍 포장해서 질러놓고, 우리는 도망가는 거다. 난 아무 얘기도 안 한 셈이지.
찬혁= 치고 빠지는 것은 우리도 똑같다.
경덕= 성동격서다. 그럴 때 사람들은 피식하고 웃어주는 거다.
사회= 가장 애착이 가는 코너가 있다면.
경덕= ‘돌도사’다. 가장 오래된 꼭지다. 1987년부터 해왔다. 코너가 힘이 있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법칙은 살아남아서 힘이 있는 거다. ‘돌도사’는 무시무시한 코너다. <싱글벙글쇼> 코너 가운데 가장 힘있는 코너라고 믿고 있다. ‘돌도사’엔 텀(여분)이 많아, 진행자가 애드리브(즉흥 대사)를 칠 곳이 많다. 김혜영씨가 나름대로 애드리브를 잘한다. <싱글벙글쇼>의 밥이 김혜영이라면 반찬은 강석이다. 밥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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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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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혁= ‘3김퀴즈’가 때론 지겹기도 하지만, 우리 프로의 간판이다. ‘3김퀴즈’나 ‘대충토론’에 최양락이란 존재가 있으니까 배칠수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김학도와 배칠수를 같이 붙여보면 별로 재미가 없다. 최양락이라는 존재감과 배칠수라는 좋은 그릇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내용물을 담을 수 있었다고 본다.
사회= 군부독재 땐 아예 보도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는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외부의 압력도 많이 받았을 텐데.
경덕= 20년 동안 보도지침이란 것은 없었다. 다만, 이런저런 분위기가 있으니 참고 좀 해달라는 얘기는 들리곤 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 검찰한테서 제작진이 전화를 받았던 적은 있다. 그때 딱 한 번이다. 누군지는 모르겠다. 나한테 직접 전화했다면 내가 가만히 있었겠는가, 더 써댔지.
찬혁= 바깥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지 않겠나 싶지만 그런 건 전혀 없다.
우리는 정치색을 벗은 야당
경덕= <싱글벙글쇼>는 늘 힘없는 사람의 편이다. 여당은 힘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정치색을 벗은 야당이라고 할 수 있다.
찬혁= 요즘 문화방송을 ‘노빠’ 방송이라거나 ‘빨갱이’ 방송이라고 모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는 서민의 편일 뿐이다. 방송에서 슬쩍 한마디를 던지는 것 같지만, 의미심장한 것을 담을 때가 많다.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만들어낸 날은 정말 뿌듯하다. 최근 ‘대충토론’에서 이회창씨가 나와 요리 얘기를 하면서 ‘요새 간보고 있는 중이에요’라고 얘기하게 한 것은 정치 복귀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담은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팍 떠버리면 그 다음날 청취자들은 기대감을 갖고 더 귀를 쫑긋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여간 재미있지 않으면 망친다.
사회= 개인적으로 애정이 많이 가는 캐릭터가 있을 텐데.
경덕= 안타까운 캐릭터가 있다. 13년 동안 써왔던 ‘똘이 엄마’다. 없어진 것이 너무 안타깝다. 방송사에서 만나는 어떤 분들은 ‘아직도 저 코너야’라고 쉽게 묻는다. 그런데 오래된 친구가 물리지 않는 법이다. 물론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오래된 코너도 있겠지만…. 어쨌든 무조건 없애라는 얘기가 나와, 할 수 없이 ‘돌도사’와 김혜영씨가 하는 ‘똘이 엄마’를 딜(거래)했다. 결국 ‘똘이 엄마’ 캐릭터가 사라졌다.
찬혁= 3김 가운데 DJ다. 배칠수씨도 가장 잘 묘사하는 것 같다. DJ는 캐릭터가 풍부하고 언변이 좋다.
사회= 다매체 시대에 라디오 시사콩트가 설 자리가 줄어드는 것 아닌가.
경덕= 뉴스가 홍수다. 나는 청취자들에게 맛있게 한입에 쏙 들어갈 수 있게 가공해주고 싶다. 청취자들은 만들어져 나오는 모든 뉴스의 진실이 뭔지 모른다. <싱글벙글쇼>는 뉴스를 원고지 5매 안에 다 녹여야 한다. ‘<싱글벙글쇼>를 들으면 신문을 안 봐도 된다’고 어느 애청자가 한 얘기는 내가 이제까지 받은 최고의 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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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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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혁= 시사콩트가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싱글벙글쇼>는 낮 12시대의 간판 프로다. 교통방송의 <9595쇼>나 SBS의 <배칠수, 전영미의 와와쇼>도 비슷한 포맷이다. 낮 시간대에 가내수공업을 하거나 운전을 하는 청취자들은 음악보다 누군가 옆에서 계속 떠들어주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 나도 옛날 어렸을 때 라디오에서 뭔 말을 저렇게 많이 하냐고 투덜거렸지만, 이젠 혼자 운전할 때는 누군가 얘기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이가 든 걸까.
경덕= 라디오는 정보매체가 아니라 ‘정’의 매체다. 한국방송의 <사랑의 리퀘스트>를 1시간 방송해야 1억원이 모이지만, 라디오에서 15분 방송하면 1억원이 모인다. 그게 라디오의 힘이다.
사회= 어디에서 아이템을 주로 얻나.
찬혁= YS, DJ에 관한 옛날 얘기들은 다 찾아 읽어봤다. 때론 소재를 찾으려고 남들이 읽기 싫어하는 인터넷의 댓글을 빠짐없이 다 읽을 때도 있다.
경덕= 우리가 늘 쓰는 아이템은 오늘 먹고사는 것과 밀접한 게 최고다.
쉬면 불안, 그게 직업병
사회= 둘 다 한 프로를 오랫동안 맡아왔는데 쉬고 싶지는 않은가.
경덕= 이게 내 생활이다. 한 3일 동안 안 쓴 적이 있는데 그때 뭔가 불안해지더라.
찬혁= 마찬가지다. 그게 우리 직업병이다.
경덕= 작가라는 것은 다 똑같다. 만화작가나 음악 작곡가나 요리사나 다 누군가를 위해 뭘 만드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이들의 가슴이 뜨거워야 한다. 가슴이 차가우면 원고가 잘 나오지 않는다.
찬혁= 가장 큰 것은 늘 웃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사든 뭐든 간에 청취자들에게 웃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음을 통해서 감정을 해방시켜야 한다. 오버해서 얘기하자면 웃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사회= 결국 우리의 얘기가 웃음으로 끝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