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특집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6월09일 제513호
“당신의 임금인상, 우리의 고통”

대기업의 비용부담을 중소기업에 모두 전가하는 전근대적 기업간 관계… 양극화 점점 더 심화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해마다 초여름이 되면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임금인상폭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고민에 빠진다. ‘대기업의 임금인상분만큼 우리 종업원들의 임금을 올려줘야 할 텐데…’ 같은 걱정이 아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건 중소기업 사장뿐 아니라 종업원들도 마찬가지다. “거래하는 대기업으로부터 납품단가 인하 요구가 들어오는 주기가 있다. 임금인상 비율만큼 납품단가 인하 요구가 들어오는데 대기업 임금협상이 끝나고 한달 정도 지나면 반드시 단가 인하가 들어온다.”


△ 지난해 7월 9년 연속 임금협상 무분규 타결을 기념하며 축배를 드는 현대중공업의 노사간부들. 대기업의 임금인상은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인하를 촉발한다.(사진/ 연합)

기업규모에 따른 임금의 양극화

대기업이 자체 임금인상분을 납품단가 인하를 통해 만회하는 것으로, 대기업 사용자와 노동조합이 독과점적 지대를 나눠갖고 그 부담을 하청 중소기업이 떠안는 셈이다. 중소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납품단가 인하를 통해 대기업으로 넘어가는 가치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기업이 비용부담을 중소기업에 모두 전가하는 전근대적 기업간 관계 속에서 “대기업이 성장해야만 중소기업이 함께 살 수 있다”는 논리는 금방 깨지고 만다. 물론 새해가 되면 대기업마다 “중소 협력업체와의 동반 성장”이란 구호를 내걸고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을 앞다퉈 발표한다. 그러나 철저한 주종관계로 형성된 불평등 구조에서 대기업의 사상 최대 실적은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갉아먹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다. 중소기업을 성장의 원동력이자 고용창출원이라고 하지만, 이 말은 불공정 거래관행을 바로잡지 않는 한 헛된 구호에 그치고 만다. 중소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가 ‘납품관계’라는 통로를 거치며 대기업으로 흡수되는 구조에서는 중소기업이 성장을 위해 자본을 축적하거나 수익을 내부유보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당면하고 있는 중소기업 문제는 혁신주도형 중소기업 모델을 발굴하는 것 이전에 ‘사회적 분배’의 왜곡부터 풀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항상 배고픈 이유는 원-하청 종속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한국 경제를 주도하고 있지만, 고용과 지역균형 발전 등 여러 측면에서 중소기업의 역할은 여전히 크다. 중소기업 종사자는 1038만명(대기업은 159만명)으로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86.7%를 차지한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완성차업체의 고용규모는 1996년 10만2천명에서 2001년 7만1천명으로 계속 줄어드는 반면, 부품 중소업체의 고용규모는 1998년 9만1천명에서 2001년 12만3천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100명 이하 소기업을 보면, 전체 자동차산업에서의 고용 비중이 1988년 20% 초반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급속한 고용 증가를 보이면서 2001년 30%대에 육박했다. 따라서 ‘신음하는 중소기업’은 “중소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를 넘어 중소기업에 속한 수많은 노동자의 소득과 고용이 걸린 문제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에 허덕이면서 지급 능력이 떨어지고 임금소득은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종업원 5∼9명 사업장 노동자의 평균임금(161만7천원)을 100으로 했을 때 500명 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연평균 임금수준은 2001년 172.1에서 2002년 185.4, 2003년 197.2로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자동차산업만 보면, 2002년 10∼29명 중소기업의 시간당 임금이 5536원인 반면 1천명 이상 대기업은 1만3958원으로 나타나 절대적 임금격차가 무려 8400원이나 났다. 30명 미만 중소기업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이 1천명 이상 대기업 노동자의 39%에 불과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산업의 월평균임금 역시 1천명 이상 대기업은 월 262만원인 반면 100명 이하 중소기업은 121만원에 그쳤다.

그렇다면 학력·노조유무 등 다른 요인은 모두 같다고 보고 순수하게 기업규모에 따른 임금차이는 얼마나 될까?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에 따르면, 100명 미만 중소기업을 기준으로 볼 때 단지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사실만으로 300명 미만 기업 노동자는 10%, 1천명 미만 기업 노동자는 20%, 1천명 이상 사업장 노동자는 30% 안팎의 추가임금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기업규모에 따라 고임금을 받을 기회가 다른 건 불평등한 도급 구조에 따른 지불능력 격차에서 비롯된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자동차산업에서 기업규모간 임금격차는 도급 단계별 임률(시간당 평균임금) 분포와 매우 유사해 임금격차가 도급 구조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중소업체 임금인상 여력이 없다

납품단가를 결정하는 핵심 기준인 임률을 살펴보자. 완성차업체의 단가 인하는 중소업체 노동자들의 임률을 고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기업은 부품별로 자체 원가표를 갖고 있는데, 중소기업이 실제 임률 등을 반영한 견적서를 제출하면 이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원가표에 맞추도록 강제한다. 결국 턱없이 낮게 책정된 임률을 근거로 납품 단가를 후려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부품업체의 임금지급 능력은 취약해지고,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대기업에 의해 자연스럽게 억제되고 만다. 특히 단가 계약 때 한번 결정된 임률은 계속 고정되기 때문에, 중소업체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받아줄 여력이 아예 없어진다. 부경대 홍장표 교수는 “정례적으로 실시되는 단가 인하는 완성차업체가 부품업체 생산성 향상의 성과를 흡수할 뿐 아니라 부품업체의 임금상승을 억제하고 임금격차를 심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률은 또 납품 단계에 따라 차별적으로 설정된다. 홍장표 교수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자동차산업에서 1차 도급업체 A사는 임률이 1만800원, 2차 도급업체인 B사는 7천원, 3차 도급업체인 C사는 4500원으로 책정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하청 단계가 내려갈수록 중소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은 바닥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하청구조의 말단에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분포하는 것이다. 실제로 하도급업체의 노동소득분배율(생산된 부가가치 중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몫)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자동차부품 중기업의 경우 노동소득분배율은 1994년 63%에서 2002년 무려 42%로 떨어졌다. 특히 자동차산업 평균임금이 제조업의 전체 임금 수준보다 높지만, 100명 미만 자동차 부품기업의 임금은 제조업 전체의 같은 규모 기업에 비해 96%, 30명 미만 자동차부품 소기업은 90%에 불과했다. 불공정 도급 구조에서 끊임없이 아래로 비용부담이 전가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금과 인력은 대기업으로 몰리고…

원-하청간 불공정 거래에 따른 양극화는 산업은행의 ‘기업재무분석’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매출액이 10억원 이상인 제조업체(2만7천여개)의 영업이익은 42조6천억원인데, 300명 이상 대기업(670여개)이 가져간 몫은 72.1%에 이른다. 절대 다수인 나머지 중소기업들이 나눠가진 몫은 고작 27.9%에 불과하다. 산업은행 김성현 산업분석팀장은 “최근 3년간 초대형 기업의 평균영업이익은 높아지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나빠지는 등 대기업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익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가 벌어질수록 자금과 인력은 더욱더 대기업으로 몰리게 된다. 다수의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을 갖고 있어서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로 꼽히는 독일은 우수한 기술자나 연구자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자발적으로 취업해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기반 구실을 하고 있다. 이는 동일 직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은 “고임금 완성차업체의 임금인상률을 낮추고, 이에 따라 이윤이 더 증가하면 지급 능력이 높은 대기업에게 ‘임금평준화 기금’이나 ‘복지기금’을 출연하도록 해 중소기업과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끊임없는 희생을 강요해 중소기업이 몰락하면 대기업도 위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