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공갈’ 혐의 수사 밀어붙인 경찰… 건설업체의 ‘노조 죽이기’ 계략인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지난해 10월 대전 중부경찰서는 민주노총 산하 대전·충청지역 건설일용노조위원장 이아무개(44)씨 등 노조간부 6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건설업체의 약점을 트집잡아 노조 전임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낸 혐의를 받았는데, 이 사건을 지휘한 대전지검 공안부는 상습공갈죄를 적용해 이들을 기소했다. 수사결과만으로는 노조간부들이 노조원의 권익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만 혈안이 됐던 것이다. 보수언론들은 이들을 파렴치범으로 몰아갔고, 천안·아산지역 건설일용노조(간부 2명 구속)와 경기서부지역노조(노조원 11명 지명수배) 등 다른 지역의 건설노조들도 경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

△ 2월12일 열린 건설노조 탄압 관련 진상조사단 기자회견. 민주노총은 경찰과 검찰이 건설노조의 정당한 노조 활동을 협박·공갈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건설노조진상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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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강력반이 수사에 나섰나
민주노총과 전국건설산업노조연맹은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경찰과 검찰이 건설노조의 정당한 노조 활동을 협박·공갈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구속된 노조간부들은 건설업체에 단체협상을 요구하고 단협에 따른 전임비를 받았을 뿐 협박이나 공갈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상당수 현장소장들은 “구체적인 협박 행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 밖에도 경찰 수사에 허점이 있음을 입증하는 사실이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과거 건설노조가 대대적인 파업을 벌였을 때도 노조간부가 구속된 일이 없었다”며 “경찰이 단협을 요구한 건설노조 간부를 구속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이처럼 무리한 수사를 강행한 이유는 뭘까.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연맹은 건설업체들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건설노조의 세력 확대를 우려하는 건설업체들이 노조를 견제하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보고 있다. 건설노조연맹 관계자는 “건설업체들이 초기에는 건설노조의 활동을 정당한 노조 활동으로 판단하고 단협에 응했다가, 건설노조의 세력이 점차 확장되니까 이를 견제하기 위해 경찰 수사를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경찰의 수사 착수 과정을 살펴보면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는 단서를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사건을 처음 수사한 대전 중부서 관계자는 “건설노조 간부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첩보가 입수돼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건설업체의 고소·고발에 의한 수사가 아니라 경찰의 자체 정보수집에 의해 시작된 수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노조연맹은 이 사건의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한 부서가 강력반이라는 데 의문을 제기한다. 노조에 대한 첩보수집 활동은 정보과에서 담당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건설노조연맹 관계자는 “이 사건이 터졌을 때 정보과 형사들은 강력반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강도, 살인 등 강력사건을 수사하는 강력반이 어떻게 건설노조와 관련된 첩보를 입수하게 됐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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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업체들은 건설노조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난 2002년부터 ‘건설노조 무력화’에 나서고 있다. 건설현장의 노동자들.(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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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경찰서의 수사 착수 배경은 더욱 의심스럽다. 천안서의 수사보고서에는 충남지방경찰청의 지시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돼 있다. 실제로 충남지방경찰청은 수사과장 명의로 지난해 9월18일 천안서와 보령서에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련 피해사례(갈취) 긴급 파악 지시’라는 제목의 공문을 내려보내 “대전 중부서에서 건설노조 협박 사건을 수사 중이니 관내 유사한 피해사례를 취합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 공문에는 대전 사건의 ‘갈취’ 액수와 ‘수법’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건설노조 간부들이 ‘공사 도급액 500억원 이상인 업체는 월 50만∼70만원을, 그 이하는 월 20만∼40만원을 전임자 활동비 명목으로 받는 등 총 11개 업체로부터 2800여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문이 천안서 등에 전달된 지난해 9월18일은 대전 중부서의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시점이었다. 대전 중부서는 9월17일부터 이틀 동안 노조간부들의 계좌 추적에 필요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을 뿐 아직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이 노조간부들의 ‘혐의’를 확인한 뒤 체포에 나선 것은 10월1∼7일이다. 결국 충남지방경찰청은 아직 혐의가 확인되지도 않은 대전 사건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던 셈이다.
혐의 확인하기도 전에 전모 알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한겨레21>은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13일 당시 충남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이었던 양아무개 총경과 통화를 했으나, 그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수사과 직원들에게 물어보라”고 답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누군가 경찰에 사건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면 이처럼 여러 경찰서가 동시에 수사를 진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설업체 인사관리 담당자들로 구성된 건설인사관리자협의회(건인회)가 지난해 8월 공동으로 노조전임비 반환청구소송을 준비하다가 취소한 것도 의혹을 사고 있다. 건인회는 지난해 8월26일 열린 회의에서 한 법무법인에 의뢰해 소송을 준비하기로 결의했다가 같은해 10월 돌연 이를 취소했다. 건인회 관계자는 “전임비 소송은 개별적으로 준비하는 게 좋다고 판단해 소송 계획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건설노조쪽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건설노조연맹 관계자는 “건인회가 민사소송을 준비하다가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소송을 취소한 것”이라며 “당시 법무법인이 소송 제안서에서 주장한 법적인 논리와 검찰이 공소장에서 밝힌 논리가 거의 똑같다”고 주장했다.
건설업체들은 건설노조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난 2002년부터 ‘건설노조 무력화’에 나서고 있다. 건설업체 대표들로 구성된 한국건설경제협의회는 정기적으로 노무담당부서장 회의를 열어 건설노조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건설일용노조에 대한 법망이 허술한 점을 이용해 건설노조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 건설업체가 지난 2002년 작성한 ‘건설노조 현황 및 대처방안’을 보면 △건설노조의 단체교섭 요구가 있을 경우 현장에 일용노조원이 있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한 뒤 조합원이 있을 경우 탈퇴·회유 노력을 하고 △건설노조가 단협 대상이 아님을 주장하면서 회사 노조와 분쟁조정위원회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건설노조연맹 관계자는 “산별노조에 해당하는 건설노조와 기업노조의 미묘한 관계를 이용해서 건설노조를 고립시키려는 공작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질적 비리 구조 유지를 위해
이처럼 건설업체들이 ‘건설노조 죽이기’에 필사적인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비리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건설노조연맹 백석근 부위원장은 “건설노조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건설업체들이 그동안 저질렀던 비리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돼 재벌의 비자금 생산기지 역할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건설업체들은 그동안 일용직 노동자의 인건비를 부풀려 비자금을 마련해왔는데, 단협을 통해 퇴직금 공제와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하면 일용직 노동자의 인건비가 정확히 드러나기 때문에 비자금을 마련할 여지가 없게 된다. 건설노조가 정치권과 재벌의 비자금 수수 관행을 없애는 데 최고의 처방인 것이다. 백 부위원장은 “정부가 재벌의 비자금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건설노조를 적극 지원해야 하는데, 오히려 탄압하고 있으니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