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던 뭄바이 일주일의 기록… 곳곳에서 만난 가난한 민중들의 삶
“어, 이게 뭐야?”
세계사회포럼 개막식이 열렸던 지난 1월16일 저녁, 뭄바이 외곽의 행사장 광장 근처에서 일행을 기다리던 중에 갑자기 목덜미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가려운 듯하면서 따갑고, 따가운 듯하면서 콕콕 찌르는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꽃가루인가 싶어, 물에 휴지를 적셔 열심히 닦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이상한 가루는 닦아낼수록 더욱 피부에 달라붙어 괴롭혔고,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무렵 옆에 앉아 있던 인도 남자가 말을 건네왔다. “휴지로는 안 닦인다. 물로 바로 씻어내는 게 좋다”며 “옷이 물에 젖으니 가방과 웃옷을 내려놓고 씻어내라”고 조언(?)했다.
도난, 환상은 날아가다
순진(?)하게도 옆에 메고 있던 작은 가방과 웃옷을 내려놓고 목 뒤에 연신 물을 끼얹어 닦아내고 있는데, 또 다른 인도 남자가 “돈이 떨어졌다”며 옆구리를 쿡 찔렀다. 우선 돈을 주웠다. 이상했다. ‘돈을 흘렸을 리가 없는데….’ 불길했다. 고개를 돌리니 가방이 없었다. 600루피(약 1만6200원)가 들어 있던 지갑과 여권, 그리고 홈쇼핑에서 무이자 8개월로 구입해 아직 할부금의 절반도 갚지 못한 디지털 카메라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손을 떠나버렸다.
선현들의 나라, 다양한 종교의 나라, 국민 모두가 명상하는 도인(道人)일 것만 같았던 나라에 대한 환상이 이렇게 어이없이 한방에 날아갔다.
다음날은 토요일. 어차피 영사관은 주말에 ‘영업’을 안 하니, 애써 가벼운 마음으로 행사장을 찾았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올해 세계사회포럼은 그동안 ‘비싸고 멀어’ 브라질 포르토알레그레까지 발걸음하기 어려웠던 ‘가난한’ 아시아 활동가들을 대거 포럼장에 불러 모았다. 사실 행사장을 메운 것은 대부분 인도인이었지만, 스리랑카, 네팔, 타이, 필리핀, 티베트 등 인도 주변 국가에서 온 참가자들도 주목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문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뙤약볕 아래서 행사장을 몇 바퀴씩 돌고 있었다. 중국의 박해를 받고 있는 티베트에서는 1천여명의 참가단이 행사장을 찾았다. 이들 대부분은 승려인데 ‘티베트를 평화의 땅으로’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조용히 행진하거나, 촛불시위를 벌였다. 열살도 채 안 돼 보이는 인도 어린이 노동자 수십명은 ‘아동노동 반대’를 외치며 가냘픈 팔뚝을 쳐들었고, 인도의 가난한 과부들은 초라한 사리(인도 전통의상)에 맨발로 행진하며 과부들에 대한 차별 철폐를 외쳤다. 행진 대열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바깥 세상’에서 온 참가자들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으며 눈살을 찌푸렸고, 인도 참가자들은 그 옆에서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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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국증명서를 받기 위해 인도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서류를 점검하는 모습. 여권을 읽어버리면서 ‘남들 안 가는’ 곳을 두루 섭렵했다.(김박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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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 관심을 끈 것은 불가촉천민(untouchables)인 ‘달리트’ 권리 운동이었다. 달리트는 힌두교 문화에 엄존하는 카스트 제도의 산물로, 이들은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로 이어지는 계급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최하층민’을 의미한다. 세계사회포럼이 열린 뭄바이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빨래터라는 ‘도비가트’가 있다. 관광객들은 뭄바이 관광 코스로 으레 이곳을 지나며 사진을 찍어대지만, 사실 ‘도비’라는 말은 ‘빨래를 하는 달리트’를 부르는 말로, 도비가트는 ‘빨래하는 달리트들의 빨래터’라는 뜻이다. 이들이 모여 병원이나 호텔 등에서 나온 옷가지를 손빨래하고 있는 모습은 사실, 인도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이처럼 달리트들은 교육과 취업 등의 권리를 박탈당하면서도 자신들의 숙명을 묵묵히 받아들여왔다. 몸에 닿는 것조차 거부당하는 ‘모멸감’을 감내하던 달리트들은 이제 자신들의 권리에 조금씩 눈을 떠가고 있었다. 현재 인도 국민의 25%로 추산되고 있는 달리트들은 인도 최대의 운동집단이 되었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에는 네팔과 스리랑카 등 힌두문화권인 국가의 달리트들이 ‘원정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올해 사회포럼은 ‘길거리 포럼’
세계사회포럼의 큰 줄기인 ‘반세계화’는 여전히 여러 주제에서 유효했다. 세계화가 인권과 여성, 환경, 노동, 빈곤 문제 등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적·정치적·인권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부각됐다.
하지만 올해의 세계사회포럼은 ‘반미’와 ‘반전’이라는 거대한 정치적인 주제가 부각되면서, ‘사회포럼이 아니라 정치포럼’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한 사회단체 관계자는 “지난해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미군의 이라크 침공 직전이라는 분위기를 타고 반전 분위기가 고조되더니, 올해의 경우 전쟁 뒤 첫 세계사회포럼이라는 점이 반영돼 극에 달했다”며 “올해 세계사회포럼이 앞으로의 진로에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올해 세계사회포럼은 ‘길거리’ 포럼이었다. 브라질의 세계사회포럼은 대학 건물을 빌려 ‘쾌적한’ 건물에서 토론과 논쟁 중심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세미나장으로 쓰인 임시 천막 120여개 대부분은 50~100여명의 수용인원 절반 이상을 채우지 못했다. 언어와 지식이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텔리’ 참가자들이 세미나장에서 빈곤문제와 차별문제, 여성문제를 외치는 동안, 실제 그 세미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민중들은 퍼포먼스와 거리행진, 공연 등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호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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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18일 인도 달리트들이 그들의 호소를 담은 100개의 초를 켜고 있다.(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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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등 각국에서 10만여명이 몰려들었지만, 세계사회포럼의 목소리는 행사장 담장을 넘지 못했다. 세계사회포럼 행사장을 벗어나면, 곧바로 고가도로 밑에서 거적 하나 깔아놓고 가족 단위로 사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호기심이 발동한 몇몇 어린이들이 행사장 입구를 기웃거리다 경찰에게 몽둥이로 맞고 쫓겨나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행사장 안팎에서 나타나는 모순과 서구 중심의 이슈 제기, 구체적인 계획 없이 반복되는 토론회 등 이런저런 문제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번 세계사회포럼은 큰 무리 없이 마무리됐다.
그 와중에 나는 여행자증명서와 출국확인서를 만들러 다니느라 인도 경찰서와 한국 영사관, 인도 출입국관리소, 심지어 항공권 발급을 위해 캐세이퍼시픽 뭄바이 지점까지 웬만해서는 ‘남들이 안 가는’ 곳을 두루 ‘섭렵’해야만 했다. 여권분실 확인서를 작성하기 위해 경찰서에 가니, 행사장에서 물건을 소매치기당한 이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잃어버린 물품도 노트북,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등 다양했다. 도둑들에게 세계사회포럼은 ‘대목’이었다. 지금쯤 뭄바이 장물시장은 일대 호황을 누리고 있을지 모른다.
초이 히에 지엉, 여권 찾아가요!
어느덧 폐막식 날이 다가왔다. 브라질과 아프리카에서 온 가수들의 공연을 보며 지난 엿새간의 마음고생과 기사에 대한 부담을 털어버리고 있었다. 다음 공연으로 이어지기 직전, 대회 관계자가 연단에 올라왔다. 분실된 여권 4개가 조직위쪽에 들어왔으니, 찾아가라고 했다. 첫 번째 여권은 한국인의 것이었다. ‘동지의식’과 함께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두 번째, 세 번째 여권은 서양인의 것이었다. 네 번째 여권. “South Korean again”(또다시 한국인입니다)라고 했다. “초이 히에 지엉”(Choi Hyejeong·최혜정) 내 이름이 ‘영광스럽게도’ 폐막식장에 울려퍼졌고, 난 조용히 가방을 챙겨 여권을 찾으러 갔다.
뭄바이=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