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5월07일 제458호 

고객을 묶고 사원을 엮어라!

기업의 디지털 경영전략에 따라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가는 회사원 구보씨의 하루

어젯밤 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미국의 배우 겸 작가인 마이크 데이지가 아마존닷컴에서 근무한 3년을 기록한 책인 <21 Dog Years:Doing Time @ Amazon.com>을 덮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그 이어’(Dog year)는 정보통신의 눈부신 기술 혁신 속도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개의 1년이 인간의 7년에 해당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는 걱정스러웠다. 개의 성장 속도로 기술 발전이 이뤄지면서 ‘개 같은 인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기에. 힘 없고 빽 없는 ‘개털’ 신세인 그로선 하루가 다르게 디지털 사무 환경이 일상에 스며드는 것을 거스를 도리가 없었다. 어쩌면 어둠 속에 사는 농노보다 나을 게 없다는 허탈함이 그를 불면으로 이끌었다. 네트워크를 통하지 않는다면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는 아침에 주차장으로 가며 하루를 일주일처럼 살아가는 회사인간의 숙명을 즐길 것을 다짐한다.

회사 안팎에 다양한 네트워크 구축


사진/ 기업들은 네트워크 환경에서 새로운 경영전략을 세우고 있다. 기업은 외부와의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고 내부에서는 지식 공유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김종수 기자)


디지털 시대에 온라인 기업과 오프라인 기업의 구별은 의미가 없었다. 그의 회사도 네트워크 조직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였다. 경쟁기업·공급업체·고객 등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었다. 그가 속한 경영지원본부에서는 회사를 다양한 네트워크로 묶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원재료나 부품 생산·연구개발·조립·판매 등의 가치 사슬상에서 핵심역량을 가진 기업들과 제휴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의 회사에서도 핵심 부분에 자원과 역량을 집중했다. 예컨대 나이키가 ‘에어 시스템’(Air System)을 핵심기술로 삼아 개발과 마케팅에 전념하는 것처럼. 다른 기능은 협력업체와 장기공급계약이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사업 기반을 다져나가야 했다. 그는 전략적 제휴를 맺을 만한 기업을 물색하려고 오전 내내 인터넷을 누비고 다녔다.

이런 네트워크에 의한 디지털 경영은 수평적 네트워크를 확산한다. 40대 초반의 중견사원인 그가 핵심일꾼 노릇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오정’(45살 정년 퇴직)이라는 말이 회자되더라도 속수무책이었다. 가진 사람들의 부를 키우는 자본의 유동은 쉽다는데 그가 노동의 유동을 경험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정보기술이 정신적·육체적 노동을 대체하면서 특단의 경쟁력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정보기술에 의한 일자리 창출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캐나다 토론토대학 홍성욱 교수의 <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을 떠올렸다. “네트워크 혁명시기에는 지식경영에도 변화가 필수적이다. 지식이나 학습의 핵심은 단순한 정보의 습득이나 보관이 아니라 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상호작용해 경쟁과 협동의 변증법을 실현하도록 한다.”

더 이상 디지털 시대 기업의 화두인 지식경영의 일상화를 외면하기 힘들었다. 지식을 만들도록 독려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일단 내부에서 인맥의 토대를 쌓는 것이다. 인터넷 채용정보 업체인 ‘잡링크’(www.joblink.co.kr)가 160여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47.5%가 멘토링 제도(Mentoring Program)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머지 기업도 멘토링 제도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그의 회사는 여지껏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었다. 멘토링 제도는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떠나며 자신의 아들을 친구인 멘토에게 맡긴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기업별로 후견인·벗바리·빅브라더·가디언 등으로 불리는 ‘멘토’(mentor)는 현장에서 구성원인 ‘멘티’(Mentee)를 1대 1로 지도해 잠재력 개발을 돕는다. 그는 멘토링 제도가 정착돼 학습하는 사내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제안서를 서둘러 작성했다.

한동안 그는 사외 네트워크 조직을 구축하고 있었다. 마케팅 수단으로 브랜드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삼성전자가 ‘하우젠클럽’을, LG전자가 ‘1124클럽’을 운영하고 것을 본떴다. 이런 브랜드 커뮤니티는 고객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한편으로는 고객을 확보하는 효과까지 거두고 있었다.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등을 생산하는 그의 회사에서는 브랜드 커뮤니티와 함께 지자체·연구소 등과 협력하는 환경 관련 지식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한다. 커뮤니티를 통해 기업 경쟁력 강화를 꾀하면서 국가 경쟁력에도 이바지하려는 것이다. 몇주 전 인터넷 동호회인 ‘마케팅 실무자 모임’에서 미국 하버드대학 마이클 포터 교수의 경영전략 관련 토론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포터 교수는 “유사성 혹은 보완성 등으로 연결된 기업들이 묶이면 인력·기술·자금 등을 조달하는 게 유리한 인프라를 제공한다”며 네트워크 시대에는 ‘집단 경쟁’(Cluster Competition)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정녕 디지털 강자가 되어가는 것일까


사진/ 박승화 기자


이렇듯 네트워크 커뮤니티는 디지털 시대에 필수적이었다. 그는 스스로의 경쟁력을 생각하며 네트워크에 기반한 디지털 인맥을 만들려고 했다. 비즈니스 인맥을 만들려고 6개월 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오프라인 모임까지 참석하고 있었다. 40대의 나이에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다행히 어색함을 무릅쓰고 참석한 첫 번째 오프라인 모임에서 용기를 얻었다.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2주마다 한번씩 모여서 토론하는 게 일상의 활력소로 작용한다. 나아가 그는 유목민처럼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인맥이 새로운 활로를 찾는 나침반 구실을 할 것으로 믿는다. 그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세미나 교재로 쓰이는 책을 읽기 위해서다. 격주 금요일마다 그는 인맥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실감한다.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려고 칼퇴근하면서 그는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챙겨들었다.

그는 네트워크라는 신천지에 인맥의 씨앗을 뿌리면서 다시금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이전에 한계로 느껴졌던 게 요즘에는 절호의 기회로 느껴지기도 한다. 키보드만 누르면 국경을 초월한 비즈니스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에 의한 절대적 입김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선택, 스스로의 표현 등이 중심적 가치관으로 자리잡게 마련이다.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간 그는 대중매체의 브로드캐스팅을 통한 획일적 개털이 아니었다. 다변적 시각을 내세우는 내로케스팅에 의해 스스로가 취사선택의 권리를 누리는 ‘디지털 강자’가 된 것이다.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그의 자산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디지털 인맥의 홍수 속에서 내용 없는 하루를 일주일처럼 살아가는 것은 고역일 수밖에 없겠지만. 퇴근한 그는 다시 인터넷 동호회 커뮤니티에 들어가 세미나 후기를 남긴다. ‘방가방가’로 시작하는.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약한 연결’이 직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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