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10월16일 제430호 

“대선보다 총선을 계산한다”

민주당 내분과 정치권의 합종연횡 감상법… 후단협 의원들의 방황이 시작됐다

“모든 국회의원들의 소원은 ‘국회장’을 치르는 것이다.”

국회의원 보좌관들 사이에 흘러다니는 농반 진반의 얘기다. 국회장은 의원 재직 중 사망했을 때만 적용되는 장례식이다. 따라서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것이 국회의원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의원들은 거의 모든 정치 행위 목표를 자신의 ‘재선’에 맞추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보좌관들은 얘기하곤 한다.

절대가치는 ‘자신의 한 자리’


사진/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한 민주당 내 반노·비노 의원들. 이들은 현재의 지역대결구도가 다음 총선에서도 유지될 것이라 판단한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이번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각종 합종연횡도 마찬가지다. 대선에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승리보다는 1년 반 뒤인 2004년 총선에서 자신의 당선에 유리한 선거구도를 형성하는 데 주안점을 맞추는 것이다. 최근 여러 갈래로 나뉘어 어지럽게 움직이는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각자가 지지하는 노무현 후보나 정몽준 의원이 대선에 실패할 경우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계산을 뽑아본 상태다.

노무현 후보 선대위에 참가한 의원들은 이른바 ‘선명 야당론’을 다들 염두에 두고 있다.

노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최선이겠지만, 지더라도 노 후보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강력한 야당을 구축하고, 그 울타리에서 자신의 당선이 보장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노 후보가 “대권 도전에 재수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대선 뒤 당권을 쥐거나 자신들의 든든한 후원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이번 대선과정을 통해 지역대결 구도가 끝나고, 다음 총선부터는 계층과 세대 간의 대결로 선거구도가 재편될 것으로 본다. 이럴 경우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한나라당에 맞설 유일한 대안은 대척점에서 개혁의 기치를 드는 것뿐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노 후보 선대위의 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해찬 의원은 “민주당이 분당돼 한 30~40명만 남더라도, 향후 정치구도 속에서 보수세력은 한나라당 중심으로, 개혁세력은 민주당 중심으로 뭉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몽준 의원쪽으로 간 의원들은 양쪽으로부터 각개격파당할 수밖에 없다. 과거 개혁세력은 김대중 대통령의 그늘 아래서 보호를 받고 자랐으나, 이제는 자생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셈이다.”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홍보위원장인 김경재 의원이 “차라리 패배를 각오하고 정정당당하게 한판의 신선한 승부를 벌이는 게 옳다. 우리는 이제 이념과 사고방식 등에서 정체성이 맞는 사람끼리 새 정치를 할 것”이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부분 재야 출신이거나 개혁 성향의 소장파 의원들이 여기에 해당하지만 ‘색채’와 관계없이 자신의 역량에 자신 있는 의원들도 같은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당의 지원이나 정치구도보다는 자신의 경쟁력이 당선에 주효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굳이 노 후보의 정통성을 거스르면서까지 자신의 경력에 흠집을 내지 않겠다는 뜻이다. 법조인 출신의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대선에서 지면 다음 총선에서는 민주당이나 노무현 후보 간판이 아닌 내 이름으로 당당하게 심판받을 것이다. 이에 대비해 얼마 전부터 각종 언론매체에 신경을 쓰고 지역구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현행 비례대표제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것도 개혁 성향 의원들의 선택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2004년 총선에서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1인2표제가 도입되는 만큼, 영남·호남 등 특정 정당에 대한 쏠림현상이 강한 지역에도 진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갖춰진 셈이기 때문이다. 또 헌법재판소가 2004년 총선부터 선거구 인구편차를 줄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만큼, 도시지역의 의원 정수가 늘어나는 점도 개혁 성향 의원들에게는 유리하다.

그러나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소속 의원들의 처지와 판단은 딴판이다.

지역대결 구도는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


사진/ 지난 9월18일 노무현 후보의 대선선대위 출범식. 노무현 지지세력은 이른바 '선명야당론'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먼저 이들은 안정희구 성향의 여당 지지층을 토대로 당선된 경우가 많다. 김경재 의원의 표현을 옮기면 “정통 민주세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며 ‘야당은 배고파 못하겠다’는 비즈니스맨”인 것이다. 이런 의원들에게는 노무현 후보의 개혁 성향이 자신들의 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연히 “노무현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게 돼 있다.

또 이들은 현재의 지역대결 구도가 다음 총선에서도 여전히 유효할 것으로 파악한다. 서울의 한 지구당 위원장은 “우리 지역구 주민들을 원적지별로 보면 호남 22%, 충청 18%, 영남 15%다. 충청표가 영남쪽으로 붙어버리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구도다. 정치적으로 선진화돼 있다는 영국도 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 등 변방지역은 노동당을, 잉글랜드는 보수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우리나라도 그런 지역대결 구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이상적 탈출구는 정몽준 의원이 호남과 충청 연합 구도를 복원해주는 것이다. 정 의원이 충청권에서 가장 지지도가 높은 만큼 중부권의 대표성이 있고, 여기에 민주당의 호남 출신 중진 의원들이 가세하면 5년 전 ‘DJP 연합’의 위력을 재현할 수 있다고 보는 논리다. 정 의원이 대선에서 실패하더라도 이인제 의원 등이 정 의원의 뒤를 이어받아 지역연합 구도를 존속시킬 수 있으리라는 것이 후단협 의원들 상당수의 희망 섞인 기대다. 그리고 이렇게 판을 짜야 자신의 재선가도에 푸른 신호등이 켜질 것으로 내다본다.

더 나아가 ‘후단협’이 정통 야당의 적통을 이을 것으로 자신하는 견해도 있다. 박상규 의원의 측근은 “최근 자체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의 정몽준 대 노무현 지지도가 58 대 42로 나타났다. 이는 한나라당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정몽준 의원으로라도 단일화를 이루라는 압력이다. 이를 거부하고 ‘지더라도 노무현으로’를 고집하면 분열주의자로 낙인 찍혀 다음 총선에서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특히 노 후보가 3등이 되면 도저히 재기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후단협-정몽준 진영, 지분 놓고 신경전

하지만 문제는 후단협 의원 상당수가 이런 ‘길’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데 있다. 본격적 검증과정을 거치고도 정 의원의 지지도가 상승할 수 있을지도 예측 불허지만, 더 큰 관심사는 선거에서 질 경우 ‘정몽준당’이 과거 ‘정주영당’처럼 공중분해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이러다 보니, 후단협과 정 의원 진영은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지분’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0월8일 후단협 회장단 회의에서는 신당창당 때 후단협 지분이 60%여야 되는지 50%만 돼도 충분한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으며, 정 의원은 후단협의 연대논의와 관련해 “정치가 한 걸음 진전하려는 데 도움을 주려는 것인지, 개인적으로 건수를 올리려는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옥석 구분론’을 펼쳤다. 더 나아가 이철 조직위원장은 “함께할 거라면 살신성인 또는 백의종군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후단협 의원들에게 백기투항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듯 상황이 불투명하니, 후단협 의원들의 방황도 깊어졌다. 충청권 출신 몇몇 의원들은 “나 자신도 내 갈 길을 모르겠다. 지역구에서는 차라리 한나라당으로 가라는 의견도 상당하다”고 한나라당행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후단협을 주도하는 최명헌 의원은 “상황이 유동적이라 모두들 불안해한다. 그나마 서로 모여 있을 때 불안감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해 모여들 있는 것”이라고 후단협의 분위기를 전했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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