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가 예정된 결과라면 극복하는 게 쉬울 리 없다. 하지만 환경에 따른 결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생존의 방법을 바꾸면 영원한 수명에 다가설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관심을 모으는 이론은 환경론에 바탕을 둔 ‘유해 산소설’이다. 이는 몸의 대사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이 있는 산소가 세포막이나 유전자 등을 손상시켜 노화를 유도한다는 가설로 ‘미토콘드리아 손상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연료삼아 영양분을 에너지로 바꾸는 세포 내 발전소 구실을 한다. 그 과정에서 노폐물이 나오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노폐물 가운데 가장 큰 골칫거리가 ‘자유 라디칼’(free radical)이라는 산소성 분자다. 자유 라디칼은 필요에 따라 분자를 빼앗고 상처를 내는 일종의 ‘분자 깡패’다. 이것은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된 DNA를 수선하지 못하도록 한다. 다른 분자와 결합해 종양을 비롯해 주름, 관절염 등 노화의 일반적인 증상들을 일으키는 것이다.

인체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히는 자유 라디칼. 그것에 대항해 인체 방호벽을 치는 게 항산화제다. 분자 깡패를 잡는 ‘경찰’을 동원하는 것이다. 자유 라디칼에 의해 미토콘드리아 분자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항산화제는 당근의 뿌리를 비롯해 녹색잎 채소와 과일 등에 함유된 ‘카로티노이드’(carotinoid)이다. 마치 유전자라는 인체의 궁궐에서 독성물질의 침투를 막는 근위부대 같은 구실을 한다. 하지만 이 물질은 인간의 수명연장에 획기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아무리 샐러드바를 들락거려도 흡수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설령 흡수가 되어도 하루 10억여개씩 생성되는 분자 깡패가 드나드는 길목을 모두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실험에 따라 종양을 줄이기도 하지만 질병을 유발하기도 경우도 있었다.

세포대사 과정에서 생성되는 또 다른 2차 생성물인 당화물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칠면조·빵·캐러멜 등이 가열될 때 단백질이 당(sugar)과 결합해 음식물 표면이 검게 그을린다. 어떤 경우에는 부드러워지고 끈적끈적해지기도 한다. 1970년대에 생화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이 당뇨병 환자의 몸에서도 일어날 것이라고 추측했다. 당과 단백질이 결합할 때 생성되는 캐러멜화 현상으로 인체 연결부위가 딱딱해지고, 혈관이 막히면서 백내장 같은 질병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노화과정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난다. 연구자들은 당화 작용의 최종 생성물의 용매가 될 만한 약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뉴욕의 의학연구소인 피카우어의 연구원들은 ‘피마게딘’(pimagedine)이라는 약물을 개발했다. 단백질들 사이의 연결부위를 용해해 캐러멜화 현상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피마게딘은 동맥경화의 원인이 되는 콜레스테롤의 전구체인 지질단백질의 혈중농도를 줄였을 뿐이다. 동물실험에서 심장질환에 특효가 있었지만 사람에게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

김수병 기자hellios@hani.co.kr